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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Dec 22. 2015

<왔다 장보리> 가난한 자를 악녀로 만드는 흔한 방정식



작품 개요
작품명: <왔다 장보리>
작가: 김순옥
연출: 한국 지상파 드라마에서 연출이 누구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왔다 장보리>는 알랑방귀를 끼는 드라마

다음의 세가지 이유로 이 드라마는 기득권에게 알랑방귀를 낀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다리를 타고 올라가려는 '을'을 '악녀'로 만들었다. 둘째, 그 '악녀'가 갑들이 계승하는 위치를 노력(?)을 통해 획득하려하는 행위가 악한 것으로 표현된다. 셋째, 갑들이 선한 입장으로서 그 '악녀'를 때려잡고 정의로운 척을 한다. 그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에 이러한 묘사는 소름끼친다. 만약 '악녀'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지 못했다고하더라도 권선징악인양 묘사하지 않았다면 소름이 끼치진 않았을 것이다.


김순옥 작가가 '악녀'에게 주는 교훈

악녀는 사다리로 올라가는 것을 실패하고 디자이너였던 그녀의 손이 망가진다. 드라마 작가 김순옥은 '악녀'에게 교훈을 준다. 디자이너인 그녀에게 상처를 주면서 "두번 다시는 사다리를 오를 생각은 하지 말거라"라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악녀가 만약 사다리를 오르는 도중에 떨어지고 드라마가 그녀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면 기득권의 잔인함을 표하는 드라마로 해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김순옥 작가의 충고는 비단 '악녀'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을들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을'에 속할 것으로 생각되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왔다 장보리>를 보고 그 여자를 '악녀'라 부른다. 손을 다친 악녀를 보고 '꼬시다'고 말한다. 이 부분이 가장 소름 끼치는 부분이다. 이로써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는 이를 비난하는 을들이 탄생한다.


김순옥 작가의 각본은 그런 의미에서 꽤나 성공적이다. 갑들의 지위를 지켜주고, 갑들의 지위를 넘보는 을들을 악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을들인 시청자들 조차 사다리를 오르는 을을 비난하게 만들었다. 어찌 성공적이지 않을 수 있겠나? 다만 악녀를 비난하는 을들이 스스로를 을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은 비극이다. 김순옥 작가에게는 승리겠지만.


왜 하필 악'녀'인가?: 여성가족부, 김순옥 작가

왜 하필 악녀인가? 왜 남자가 아니고 여자인가? 왜 그 추하게 묘사되는 인물이 굳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여야하는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이 작품은 여성들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보고 즐긴다고 이 작품이 '여성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영화의 빌런이 굳이 여자이며, 꽤나 추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못생겼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유리는 겁나 이쁘니까)



김순옥 작가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은 여성가족부가 여성 이슈를 대하는 태도와 꽤나 유사하다. 여성가족부는 '여성'을 조직명에 달고 있긴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기득권에 충성한다. 여러 국회의원과 의장, 차관 등이 여성들을 성추행을 할 때 항상 입을 싹 닫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창녀촌은 빡시게 단속하려하면서 기득권들의 놀이문화인 룸살롱과 요정 등에 대해선 이렇다할 발언을 안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김순옥 작가도 비슷하다. <왔다 장보리>는 기득권층의 재산을 지켜주기 위한 영화다. 기득권들의 재산을 탐내는 이를 악당으로 몰아 성공적으로 물리친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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