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OZ221을 탑승하고 한국을 가는 길에
뉴욕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가는 길
1월 초에 뉴욕 여행을 끝내고 한국의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아시아나 OZ221편을 탔다. 한 승무원이 눈에 띄었다. 내 쪽 라인으로 계속 승무원 두 분이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다. 말투와 행동을 보아하니 한 분은 짬밥이 좀 있어보이셨고, 나머지 한 분은 입사한지 얼마 안되보이셨다. 편의상 선임과 병아리로 부르겠다.
내가 콜라를 달라하니까 병아리 승무원이 콜라를 따서 컵에다 따라 줬다. 그러자 선임 승무원이 말했다. "캔 따서 주지마세요." 그게 룰인 듯 했다. 땅콩을 봉지째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했다(#조현아). 그런데 아시아나에서 승무원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듣자하니 '룰'은 캔을 따서 주는 것이라고 했다. 선임이 유도리를 발휘했겠거니 생각해본다.
고객과 응대할 때 병아리 승무원은 다나까로 응대하는 데에 반해서 선임 승무원은 '요'자로 끝내면서 응대했다. 다나까에 유도리를 발휘하는 것을 보고 군대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아마 병아리 승무원이 탑승객을 '요'자로 응대했으면 뒤에서 쿠사리 먹었을 것이다.
연락처를 묻지 않은 이유
병아리 승무원은 내 눈에(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웠고 상냥했으며 승무원복을 벗어도-직업인이 아닌 자연인이 되어도 여전히 상냥할 것 같았다. 해서, 그 병아리 승무원에게 연락처를 물어볼까 고민했으나 곧 접었다. 접은 이유에 대해 속으로 나름의 이유를 적었다.
-내가 저 분을 좋게보는 이유는 저 분이 승무원복을 입고 내게 친절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직업상 불가피한 것이고 실제 모습과 직업상의 모습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를 혼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잘되서 만난다 하더라도 '환상'이 깨지면 관계는 혼돈에 휩쌓일 수도 있다. 제복 페티시 때문에 눈이 돌아갔을 가능성도 있다.
-비행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괜히 연락처를 물으면 그쪽이나 나나 남은 비행시간이 불편해질 수 있다. 굳이 연락처를 묻는다면 비행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를 노리는 게 도의에 맞다.
-손님에게 무조건 친절해야하는 한국형 승무원에게 연락처를 묻는 것은 그에게 선택권이 있다고할지라도(그에겐 물론 선택권이 있다)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다. 연락처를 받는다고 해도 뭔가 죄짓는 기분이 들 거 같고, 연락처를 못받으면 못받으므로 썩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에 사는 지를 모른다. 롱디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저 분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아마도 항공서비스학과를 나왔을 것이고, 수많은 남정네들의 대쉬를 받았을 것이고, 본인이 이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만가지고는 정보가 부족하다. 연애라는 걸 하면서 알아가는 부분도 있긴하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런 게 좀 귀찮다. 상대에 대해 충분한 만큼 알아낸 뒤에 리스크를 줄이고 연애를 하고 싶은 요즘이다.
-그는 아마도 나같은 승객에게 수많은 대쉬를 받았을 것인데(라고 나는 추측한다), 이는 그에게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처럼 행동한다면 이 역시 그에게 불쾌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이대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내가 그에게 마음을 전할 거라면 그에게 자연반사적으로 발현될 '불쾌'를 감수할 정도로 내 마음이 강해야한다. 하지만 처음 본 여성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리 강하지 않다. 나는 스스로 '그들'과 다르다고 자위하겠지만, 그의 입장에서 나는 여전히 '그들'과 동일하게 보일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도 그게 진실과 더 가깝게 닿아있을 것이다. 따라서 괜히 마음을 전하며 그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와 나 사이에 남는 감정은 결과적으로 '불쾌'만 남게될 가능성이 다분히 높기 때문이다.
-
그래도 고민하느라 13시간 비행 시간은 생각보다 훅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