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국가란?
뉴욕서 한국을 오며 본 영화
미국 JFK 공항에서 한국 인천 공항으로 가는 OZ221 비행기편에서 본 영화다. 내가 굳이 이 영화를 본 배경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어차피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나중에 내가 훗날 보기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오른쪽에 있는 아줌마는 앞 좌석의 사람이 의자를 뒤로 땡긴다고 신경질적으로 손으로 좌석을 미는 천박한 짓을 하기도 했고(저런 거 안본 눈 삽니다), 뒷 좌석의 꼬맹이는 내 좌석을 계속 발로 차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의자를 최대한으로 뒤로 밀어내주며 소오심한 복수를 했다. 아직 비행은 10시간 28분이 더 남았는데 꼬맹이가 더 빡치게 하면 쫌 무섭게 말을 할 생각이다. 옆자리에 너네 아빠가 있다고 형이 친절하진 않아. (결국 몇마디했다2016.01.31)
어째, 뮤지컬을 보건 뭘 하건, 뒷좌석의 아해들은 발로 내 의자를 찬다. 내 엉덩이가 너무 예민한가 싶기도 하다. 뭔가를 보는데 누가 건드리면 말그대로 살인 충동이 일어난다. 뭔가에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집중할 때 건드리면 폭발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그것 떄문인지도 모르겠다. 운전 중에 싸움이 많이 일어나는 것도 이것 때문이라고 하더라. 과부하가 걸려있는데 거기에 추가적인 자극이 생겨서 빡치는건가? 게임할 때 애들 건드리면 애들이 짜증내는 것도 비슷한 거일 듯 하다. 이게 아시안의 특징은 아니더라. <펜텀 오브 오페라> 뮤지컬을 보는데 옆자리의 백인 커플이 어찌나 떠들던지. 남자놈은 존나 센스있는 척을 하며 여친에게 뭐라 개드립을 쳐댔다. 내가 "헤이, 익스큐즈미" 하고 입에 손가락 대니까 그 이후엔 조용하더라. 미쿡인들은 공연 문화가 남다를거라고 믿었지 뭐람. 걍 사람은 다 똑같은 듯 하다. 결국 이런 문화는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 문화의 문제라는 게 내 생각이다. 본문과 전혀 상관없는 사족은 여기까지만 하겠다.
국가에 대한 이야기
이 영화는 한 변호사의 협상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는 영화이기에 한 개인의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는 게 목적인 것처럼 읽힐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스필버그의 기획이었을까? 이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어떠해야하는가?”같은 질문들이다. 이 질문의 답들은 영화가 미국과 소련과 동독 민주공화국 등의 국가들을 대조하면서 더욱 구체화된다.
자국민을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미국과 소련 당국
<스파이 브릿지>에 등장하는 미국과 소련(with 동독 당국)은 디테일한 부분에선 다르지만 큰 틀에선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미국 당국인 CIA는 포로가된 미군-파워스를 그저 ‘소모품’, ‘수단’ 정도로 여기며, 이는 소련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미국이나 소련 당국이 포로가 된 각자의 군인들을 교환하려는 이유도 그들이 그 자체로 소중해서라기보다는 기밀을 노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기 때문이다.
민간인 도노반 변호사
이러한 국가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오는 인물이 민간인 도노반 변호사다. 도노반은 미국이 광기로 인해 소련의 스파이를 적절한 절차도 밟지 않고 죽이려할 때 저항한 1인이다. 그는 국가는 그래선 안된다고 말하며, 소련 스파이를 죽이지 않음으로써 국가는 더욱 더 존중받을만한 영광스러운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절차가 있어야 소련과 구별되는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국가에 대해 노래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필버그가 요즘엔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듯 하다. <링컨>도 그렇고. 스필버그의 국가론과 그의 가족론을 비교분석하는 작업도 재밌을 것 같다.
<스파이 브릿지>에서 표현되는 ‘국가정의론'
<스파이 브릿지>에서 도노반 변호사는 미국 당국과 부딫힌다. 원래는 미국 스파이와 소련 스파이를 교환하려하는 것이 미국 당국의 목적이었고, 그게 미국 당국이 소련 스파이를 변호하고있던 도노반에 접촉한 이유였다. 그런데 도노반은 그 협상을 진행하는 도중에 미국 스파이 외에 미국인 대학생도 동독에 붙잡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대학생까지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게된다.
이는 CIA를 빡치게 만들었는데, 대학생까지 끌어들이면 미국 스파이를 데려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대학생을 따로 구하려는 계획이 있지도 않았으니 <스파이 브릿지>에서 미국이 어떻게 표현되는 지는 더 말하면 입 아프다.
도노반은 CIA가 싫어하건 말건 소련 스파이 한명을 통해 미국 스파이와 대학생 모두를 조국으로 귀환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결국 도노반은 그 일을 수행해낸다. 이를 통해 미국 당국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은 어떠한 이도 버리지 않고 모두 조국으로 무사 귀환시켰다.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떠오른다면 이는 우연이 아니다. 톰 행크스 형님은 이 때도 총대를 메고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그럼에도 한명의 미국인이기에 소중한 라이언을 구출하러 떠났었다. 스필버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미국은 단 한명의 미국인도 버리지 않는다"라는 메세지를 보냈고, <스파이 브릿지>를 통해서 "미국은 그래선 안된다"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이는 9.11로 촉발된 미국의 소위 '안보 광기'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메세지로 읽히기도 한다.
조국으로 돌아온 자에게 해주는 포옹
영화 말미에 소련과 달리 미국은 조국으로 돌아온 자에게 따뜻한 포옹을 해준다. 미국만 포옹해주는 부분은 영화적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미국 영화니까 미국을 더 따뜻하게 그렸겠지. 게다가 감독이 스필버그잖나. 미국뽕의 선두주자인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라는 걸 감안하고 봐야한다. 따라서 포옹장면에선 ‘미국’과 ‘소련'을 거세하고 그 장면만을 봤으면 좋겠다. 그저 이 영화에는 ‘살짝’ 대조되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할 뿐이다. 국가란 어떠해야하는 가? 라는 질문으로 이 영화에 접근할 때, 이 영화에는 마땅히 멘토로 삼아야할 국가’와 ‘반면교사 삼아야할 국가'가 있을 따름이다.
조국으로 돌아온 자에게 따뜻한 포옹을 해주는 건 이유를 불문하고 당연히 있어야할 미덕이다. 애초에 조국으로 들일 생각을 했다면, 수용할 생각을 했다면 조국은 두 팔을 벌려 그들을 환영해야한다. 소련은 미국에서 소련으로 돌아온 스파이에게 어떠한 포옹도 해주지 않는데 그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의심할 것이라면, 애초에 그를 조국에 들이지 말아야했으며, 들였다면 신뢰해야한다. 이는 헤어진 연인을 다시 받아들일 때 그(녀)를 영혼을 다해 믿어주어야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믿지 않을 것이라면 재회도 하지 말았어야지. 쌍방이 행복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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