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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Dec 22. 2015

<응답하라 1988>: 지상파 드라마와 무엇이 다른가?

<응답하라>는 '우리의 삶'을 다룬다.


지상파 드라마가 일관적으로 다루는 소재

지상파 드라마는 일관적으로 어떤 소재를 다룬다. 많은 이들이 이와 관련하여 적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미 충분히 논의된 내용들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놀라운 점은, 많은 이들이 지상파가 질리도록 다루는 소재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지만, 지상파 드라마 차원에서 딱히 어떤 변화가 시도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지상파 드라마가 일관적으로 다루는 소재는 무언가? 퍼뜩 떠오르는 것은 다음과 같다. 한 인물의 출생의 비밀(알고보니 부잣집 따님이었다던가), 사이즈 큰 기업의 경영 승계권, 돈 많은 사람(들)으로부터 내처진 여성의 복수극(대체로 복수하는 여성은 악녀로 불린다). 


어떤 소재를 다루건 부자들과 연결짓는 관성

흥미로운 것은 지상파 드라마들이 앞서 언급한 소재들을 다룰 때 '굳이' 돈이 많은, 아니, 돈이 '겁나' 많은 집들이 등장하는 플롯을 짠다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데 굳이 출생의 비밀 스토리를 부잣집과 연결시킨다. 기업의 경영 승계권을 다루면, 굳이 어마어마하게 큰 기업과 연결시킨다. 한 여자가 복수를 하는데 복수의 대상은 거의 항상 부자다.


'굳이'라는 지점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시크릿 가든>은 남녀 간의 영혼이 뒤바뀌는 초현실적인 내용을 다루는데, 지상파 드라마는 그때도 굳이 부잣집 아드님을 데려왔다. 그러니까 어떤 스토리를 짜던 간에 부자들이 끼어든다고 보면 된다. 그게 최선인가? 정말 그게 최선인가? 


부자들의 삶을 다루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항상 하는 이야기를 배우들만 바꿔서 계속 반복한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소재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의사 주인공으로 부잣집 이야기를 다루다가 변호사 주인공으로 부잣집 이야기를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돼지에 악어가죽 입히면 악어가 되던가?




여기서 잠시 사족. 이 글에선 반쯤 미쳐서 깽판을 치는 존재가 굳이 여자이며 '악녀'로 그려지는 것에 대해서 다루지 않을 것이다. 문제적이긴 하지만, 이 글이 다루는 주제와 반드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악녀에 대해선 예전에 다뤘던 글이 있으니 그 글로 대신하겠다.




부자들의 삶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부자들도 사람이고 부자들의 삶을 다루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결국은 어떻게 다루냐의 문제다. 그런데 지상파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부자들에게선 인간성을 찾기 힘들다. 그들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이다. 한 예로, 기업의 오너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기업의 오너이면서 동시에 아버지, 남편, 직장 상사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기업의 오너를 제외한 페르소나는 찾기 힘들다. 그는 철저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그렇기에 시청자는 계산적인 기업 오너의 삶의 고민, 아마도 기업 승계 문제를 지켜봐야한다. 그런데 솔까, 시청자 중에 기업 승계 문제에 고민하는 이가 얼마나 있겠나? 내가 1명도 없다고는 말을 못하겠지만, 그 수많은 시청자들 중에 손에 꼽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의 자신의 삶과 별로 관계없는 이야기들을 봐야한다. 


지상파 드라마는 공감하기 어려운 '그들'의 삶을 다룬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나'와 교집합이 없는 삶을 다룬다는 것 역시 문제될 건 없다. 사실 쇼파에 앉아서 영상 매체를 보는 이유가 '내가 현재 사는 세계와 다른 세계관'에 파묻히고 싶어하는 욕망과 관계가 있기도하니까. 하지만 지상파 드라마들이 다루는 대부분의 인간군상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괴리된 현실들을 다룬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부자들의 삶을 다뤄야 새로 나온 냉장고나 에어컨을 개발하는 대기업의 제품 홍보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려나? 나야 모르지. 


이번에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7>도 한국의 지상파 드라마처럼 '내가 현재 사는 세계와 다른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자식을 찾고자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등장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가 등장한다. 그래서 우주선을 타고 다니고 광선검을 휘두르고 다녀도 그 안에는 공감할만한 내용들이 있다. 그런데 지상파 드라마에선 두 사람의 사랑마저 돈과 엮어내는 마술을 부린다. 이쯤되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돈 이야기다. 공감하기 어렵다. 


지상파 드라마의 생존전략- 떡밥

시청자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다루다보니 지상파 드라마는 어떤 이벤트로 인해 생기는 기쁨이나 슬픔을 다루기보다는 '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식의 수준 낮은 떡밥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에피소드 막판에 떡밥을 던져놓고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해결해주면서 시청률을 유지 또는 부양하려한다. 



시청자를 궁금하게 만들어야하니 드라마는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미친놈'과 '미친년'을 만들어서 막장 테크트리를 탈 수 밖에 없다. <내 딸, 금사월>은 심지어 <왔다 장보리>에서 악녀로 포장됐던 연민정을 끌고 와서 드라마 캐릭터를 홍보했다. 이쯤되면 누가 더 미친놈, 미친년을 잘 만드는 지가 시청률을 결정 짓게 된다. 드라마 곳곳에는 마이클 베이의 영화에 나올 법한 웅장한 음악들이 10분에 한번꼴로 빵빵 터지며 별 것도 아닌 것을 엄청난 것인양 선동한다. 괜히 '막장 드라마'라는 트렌드가 생겼겠나? 지상파의 드라마 작가들이 얼마나 게으르고 발전하지 않는 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선정적인 것을 좋아한다며 시청자탓은 하지마시라. 선택권이 없으니 보고 있을 뿐이다. 지상파 3사가 다 똑같은 음식을 차려놓고 처먹으라 하는데 지상파 밖에 모르는 아재들한테 뭔 수가 있나? 나와있는 음식들 중에 가장 맛있어보이는 음식을 고르는 것일 뿐. 


<응답하라 1988>은 '우리'의 삶을 다룬다
김성균(김성균 연기)

<응답하라 1988>은 '우리'의 삶을 다룬다. 이 드라마에도 부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 부자 가족들의 구성원들은 그저 부자로 퉁쳐지지 않는다. 부자 가족의 김성균(김성균 연기)은 부자이기 이전에 가족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하는 가장, 한 여성의 남편, 슈퍼맨이고 싶어하는 아버지,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해 매번 장난을 치는 장난꾸러기다. 


라미란(라미란 연기)

부자 가족의 라미란(라미란 연기)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 남성의 부인이며, 학력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상처있는 사람이며,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는 여성이다. 그들은 단순히 '부자'라는 이름으로 캐릭터가 압축되지 않는다. 그들은 훨씬 복합적이고 인간적인 존재들이며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자식들을 걱정하는 것은 돈이 많고 적고와 상관없기 때문이다. 


가장이자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남성인 존재, 그리고 어머니이자 부인이자 여성인 존재는 지상파 드라마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기업 오너(그는 오너로서만 존재한다)보다는 훨씬 공감하기 쉬운 존재다. 집안의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선우는 이혼한 어머니의 자식이면서 동시에 어머니를 고생시키려 하지 않으려는 자식이며,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성이며 동생에겐 따뜻한 오빠다. 이 다양한 페르소나들은 결국 우리의 삶을 함축하고있다. 자식들은 부모님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하니까. 


떡밥은 그저 거들 뿐


 <응답하라 1988>에 떡밥이 없는 건 아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누가 쟤 남편이 될 것 같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응답하라 1988>에서도 마찬가지다. 덕선(이혜리 연기)의 남편이 누가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드라마 초반부터 던져놓는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응답하라 1988>의 경우 남편 떡밥이 해결되어도 드라마는 여전히 순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출생의 비밀 떡밥이나 기업의 승계 떡밥을 다루는 지상파 드라마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출생의 비밀이나 기업의 승계를 다루는 드라마들은 그 떡밥이 해결되는 즉시 드라마는 생명력을 잃는다. 애초에 그 떡밥에 의존해서 드라마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남편 떡밥이 없어도 <응답하라 1988>은 생존할 수 있다. 남편 떡밥만으로 드라마를 유지해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88>은 남편 떡밥에 추가적인 떡밥을 던지긴하지만, 매화마다 초점을 다루는 이슈가 다르다. 가령, 어떤 에피소드에선 김성균의 부모에 대한 죄책감을 다루고, 또다른 에피소드에선 성동일(성동일 연기)을 비롯한 아버지들의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다루고, 또다른 에피소드에선 언니만 사랑한다고 울분을 터뜨리는 덕선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지상파 드라마들은 오로지 떡밥을 통해 산소호흡 받고 생명을 연명한다. 이쯤되면 대체 무엇을 위해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지 궁금해진다. 대기업 PPL받을라고 그러는걸라나? 나야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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