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센에 사는 남녀노소들은 인생사가 무거우므로 간만에 가벼운 글이나 써보도록 하자. 이 글은 소개팅에서 평타를 치는 방법을 다루게 될 것이다. <여성편>은 다음에 쓰기로 하고, <남성편>을 먼저 쓰겠다. 이 글은 가이드일 뿐이므로 참고만 하시고 알아서 재량껏 하시길 바란다. 이 글대로 해서 소개팅 망쳐도 나는 책임지지 않는다.
전제
여러분은 상대의 연락처만 받았을 수도 있고, 주선자와 함께 3자 대면을 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여러분이 주선자를 통해 상대의 연락처를 받은 상황을 전제로 할 것이다.
연락은 미리 할 것
연락은 만나기 전에 미리 하는 게 좋다. 연락처를 주고받은 상황에선 사실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연락이 아예 전무한 상태다. 이때 한쪽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소개팅한다는 걸 잊어먹었나?'하는 생각을 상대가 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여성인 상대가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먼저 하길 바란다. '소개팅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라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연락이 됐다면 아마 "반가워요~^^" 따위의 평소에 친구들에겐 절대 안 쓰는 오글거리는 인사를 시작으로 호구조사가 시작될 게다. 어떤 이야기를 다루거나 상관없지만 상대의 '코어'를 건드리는 질문은 삼가는 게 좋다. 코어를 건드리는 질문은 만나고 나서 서로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뒤에 던져도 늦지 않다. 메신저 따위로 깊은 관계를 이루려고 하진 말길 바란다. 괜한 질문을 던졌다가 서로 불편해질 수 있다. 호구조사가 허례허식이라 생각한다면 바로 "언제 만날까요?"라는 질문을 들이밀어도 된다.
약속 잡기
날짜는 상대도 좋고 본인도 만족하는 날짜를 선택해야 된다. 무리하게 약속들 취소해가며 소개팅을 할 필요는 없다. 이 여자가 마지막 소개팅 상대라는 생각은 접자. 상대를 존중하되 스스로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서로 날짜가 안 잡히면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여자는 많다.
요일은 금요일 오후나 토요일 오후가 좋다. 다음날이 주말인 게 당신에게나 상대에게 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 바이 사람(이하 케바케 사바사)이므로 상대가 주중이 편하다고 한다면 주중에 만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주중에 만난다면 짧게 서로를 보고 빠질 수 있어서 서로에게 좋다. "프로젝트 맡은 게 있어서 내일 회사에 일찍 출근해야 돼서요"라는 핑계거리(=뻥구라)를 만들면서 서로 어색하지 않게 오늘의 소개팅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길게 만날 거면 금요일이나 토요일 오후가 좋고, 짧게 볼 거면 주중도 괜찮다.
식당 정하기
날짜와 장소를 정할 때 식당을 정했다면 문제없다. 하지만 날짜와 만나는 장소를 정했는데 식당은 서로 합의하지 않았다면 식당을 미리 정해둬야 한다. (즉흥적으로 엽기떡볶이를 갈 수는 없잖는가?) 소개팅은 혼자 하는 게 아니므로 상대의 취향을 고려해야 한다. 상대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에선 배제되어야 하는 음식이 몇 가지 있으며 추천되는 음식들이 있다. 아래를 참고하시라.
냉면- 냉면은 안된다.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게 될 수 있다. 그리고 냉면집들의 인테리어는 소개팅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친구들과 가시라.
닭갈비- 첫 만남이다. 각자의 그릇으로 음식이 세팅되는 곳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샤브샤브도 대략 좋지 않다.
도미노피자, 미스터피자, 피자헛- 친구들과 가시라.
무스쿠스, 바이킹스, 애쉴리 등의 뷔페- 뷔페는 음식 먹는 속도가 서로 비슷하지 않다면 배제되어야 한다. 한 명이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에 한 명이 외로워질 수 있다. 그건 대략 좋지 않다. 친구들과 가시라.
샤브샤브- 각자의 그릇으로 음식이 세팅되는 곳이 좋다. 친해지면 가시라.
뼈 있는 닭- 소개팅 시엔 뼈 있는 닭다리를 붙잡고 물어뜯기가 어렵다. 따라서 닭은 필연적으로 낭비되며 이는 닭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또한 닭을 먹을 때 일정 정도의 집중력이 요구되기에 소개팅 시에 이루어지는 대화로 집중이 안될 가능성이 있다.
찜닭- 먹기 불편해서 서로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심하면 손에 묻을 수도 있다. 닭고기를 먹는데 사소하지만 집중력이 요구되므로 대화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찌개류- 부모님이랑 가시라.
스시-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음식이 좋으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한 곳이 좋다. 예를 들어 당신이 냉면을 먹는데 면이 끊기질 않아서 쩔쩔매는 걸 상대가 본다고 해보라. 최악이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음식이 좋다.
스테이크-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음식이며, 스테이크를 하는 곳들의 인테리어는 고급진 경향이 있다. 필요하다면 사전탐방을 하시라. 그리고 가격도 적당한다.
카레- 카레도 좋다. 그렇다고 코코 카레를 가지는 말길 바란다. 거기는 친구들이랑 가시라. 잘 찾아보면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은 카레 집은 많다.
파스타- 파스타가 소개팅계의 강자로 군림하는 이유는 소개팅에 이만한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이상하게도) 파스타가 고급스러운 음식이 되었기에 음식을 선택함으로써 상대에 대한 존중을 표현할 수도 있고(가격은 곧 존중이다), 스시와 마찬가지로 면을 돌돌 말아서 한 입에 쏙 넣을 수도 있다. 또한 파스타를 다루는 곳들은 대체로 인테리어가 고급 지며 조용하기에 소개팅을 하기에 좋다. (혹자는 서로 어색하지 않기 위해 시끌벅적한 T.G.I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 주장이다. 그런 곳은 친구들과 가시라)
뼈 없는 닭- 굳이 닭을 먹어야 한다면 뼈 없는 닭이 있는 곳을 가시라. 치맥을 한다면 1차만으로도 함께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뷔페처럼 시끄럽긴 하겠지만, 치맥 집들은 조명이 좋다. 어둡잖나. 어두운 조명은 좋다. 촛불은 더 좋다. 어두운 게 좋다 했다고 첫날에 <어바웃 타임>에 감흥을 받고 블라인드 카페를 가는 건 좋지 않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으면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면 된다. 블라인드 카페로 소개팅 약속을 잡는 바보는 없다.
다시, 식당 정하기
스시, 스테이크, 카레 집이 좋다고 했다고 무작정 거기를 가면 안 된다. 상대가 교정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생선에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다. 상대에게 "스시 괜찮으세요?"라며 의향을 묻는 정도의 절차는 있어야 한다. '묻기' 절차가 있어야 소거법을 통해 최선의 식당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묻기' 절차를 통해 음식이나 장르가 정해졌다면 검색을 통해서 맛집을 찾자. 만약 여성이 가고 싶어 하는 식당이 있다면 그곳을 가도 된다. "여자가 가자고 하는 곳을 가다니!"라며 자존심 상할 거면 애초에 소개팅은 하면 안 된다. 야동이나 보시면서 혼자 사시라. 그게 당신 스스로에게나 인류에 이롭다.
맛집 검색을 통해 식당을 정했다면 예약을 하자. 예약이 필요 없는 곳이라면 예약을 안 해도 된다. 다만 "토요일 6시쯤에 붐벼요?"라는 정도의 질문을 종업원에게 던지면 사전에 위기관리를 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라. 식당을 정해놨는데 막상 줄이 길면 난감해진다. 줄 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플랜 B를 세워두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만남
만남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길거리에서 만난 뒤에 식당(or 카페)을 가는 방법이 있고(1), 식당에서 바로 만나는 방법이 있다(2). 이 부분에선 뭐가 좋다, 나쁘다 말하기 어렵다. 편한대로 하면 된다.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면 메뉴는 알아서 고르게 하던가, 못 고르면 추천은 하되 선택권을 주시라. 남자답게 보이려고 메뉴를 제멋대로 고르는 아재 같은 짓은 금물이다. 전혀 남자답지 않으며 추하다.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식당에 들어오게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소개팅이 시작된다. 이때 잘하면 상대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고, 호감을 잃을 수도 있다. 한편, 당신이 상대에게 호감을 가질 수도 있고, 상대에게 매력을 못 느낄 수도 있다.
이 시점부터 중요한 건 대화다. 그런데 대화라고 해서 막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걸 상상하면 안 된다. 인터넷에서 이상한 유머 모음 따위를 외우는 짓은 절대 하지 마시라. 그런 건 군 입대 직전에 군가를 외우는 것보다 더 쓸모없다. 전혀 도움이 안 되며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기본적인 말빨이 없다면, 아니 말빨이 있다고 해도 여성과 소개팅을 할 때의 기본적인 태도는 질문과 경청이다.
질문과 경청
질문과 경청은 당신이 그 사람과 메신저를 할 때부터 지켜져야 할 태도다. 또한 식당에서 자리를 잡은 뒤에도 당신은 그녀의 메뉴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질문과 경청은 굉장히 쉬운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런 태도가 애초에 함양되어있지 않다면 당신은 여자가 하는 말을 끊을 수도 있고, 대화를 제대로 이끌어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이 <남성편>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남성이 대화를 리드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게 더 나은 태도라는 것을 말할 뿐이다. 나는 곧 쓸 <여성편>에서도 똑같이 질문과 경청을 하라고 쓸 거다. 애초에 남녀 문제가 아니라 대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질문과 경청을 통해 대화를 리드해나갈 수 있으며 질문과 경청을 통해 대화는 더욱 풍성해진다. 질문을 통해서 상대가 앞으로 할 말을 유도해낼 수 있고, 질문을 던진 뒤에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상대를 더욱 깊이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 많이 알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질문이 생산된다.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면 "XX 씨는요?"라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그때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상대도 경청하는 걸 볼 수 있다. 질문과 경청만 해도 대화는 풍성해지고 깊어진다.
대화가 깊어지면 당신은 상대를 더 잘 알게 돼서 더욱 매력을 느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학을 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확신에 찰 수록 좋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굳이 애프터를 할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날의 대화가 어설프면 뭔가 아쉽고 켕길 수가 있다.
2차는 상대에게 보내는 신호
내가 전수조사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소개팅은 보통 2차까지 간다. 그리고 첫날의 삘이 좋으면 3차도 가고 모텔을 가서 성관계를 가지는 남녀도 적지 않다. 그러니 상대가 마음에 든다면 2차를 가시고, 3, 4차는 알아서 하시는 게 좋다. 그런데 상대에게 2차를 못 간다고 말한다면 상대는 그걸 일종의 '우린 안 맞는 것 같아요'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 그러니 2차를 안 가는 것을 신호로 활용할 것인지 여부는 당신이 선택하면 된다. 시간이 정말 없어서 2차를 못 간다면 약속을 잡기 전에 미리 말을 하시거나 애프터를 그 자리에서 해버 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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