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우 Mar 24. 2016

거침없이 올바르게 살고 싶다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난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내 나름대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판단내릴 수 있다. 이렇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한 때는 많은 사안에 대해 "뭐가 옳은 지 모르겠다"라며 판단을 보류했다. 예를 들어 낙태에 관한 수많은 논쟁에서 나는 갈팡질팡했다. 양쪽의 주장이 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양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또 토론 동아리나 토론 대회에서 여러 토론을 거치다보니 무엇이 옳고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예전보다는 쉽게 내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의 주장'이 생긴 것이다. 내 나름대로는 꽤나 치열한 고민을 거친 결과다. 


내가 여전히 판단을 보류하는 영역은 많다. 난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을 유지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은 "모른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아는 척을 하거나 전문가를 자임하는데, 그들에 대한 역겨움이 지금의 태도에 밑바탕이 되었다. <부러진 화살>에선 그런 자칭 전문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문가가 어딨어? 사기꾼 빼고"


무엇을 '옳다'고 할 것인가?

물론 무엇이 옳고 그르다라는 건 내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누군가는 옳지 않다고 할 수도 있으며, 그런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도 많을 수 있다. 여기에서 '나'의 과제는 무엇이 진짜 옳은가를 판단내림에 있어 '다수'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다수'가 항상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다수'가 항상 옳다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옳다고 할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논쟁이 발생한다. 언제부턴가 이어지고 있는 PC(Political Correctness)함에 대한 논쟁의 지점도 바로 여기다. 어떤 사람은 이게 옳다고하고 어떤 사람은 저게 옳다고 한다. 그 둘 사이에 접점이 없는 경우는 꽤나 많다. 그럼 이때 '나'의 입장은 무엇이 되어야하는가? 


그것을 믿는 사람의 수와는 무관하다.

앞서 말했듯이 단순히 '다수'가 지지한다고 해서 무엇이 옳은 것은 아니므로 다수의 주장에 이끌려가선 안된다. 그렇다고 소수가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므로 소수의 주장에 이끌려서도 안된다. 어떠한 주장의 옳고그름은 그 주장을 신뢰하는 사람의 수와 무관하기 때문이다(학자들에 의해 행해진 실험을 통해 나온 결론을 보면, 다수의 추론은 소수의 추론보다 사실과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는 옳고그름과는 다른 맥락의 이야기이므로 생략하겠다). 


가장 논리적인 것이 가장 옳은가?

가장 논리적인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논리와 옳음 간의 관계가 엄밀하게 입증된 적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논리적인 것은 그저 가장 논리적일 뿐이고, 논리적이라고 해서 옳거나, 진리에 가깝다고 볼 이유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가장 많이 동원하는 도구가 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논리적인 것이 옳은 것이다"라는 명제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그 논리라는 것을 통해서 옳지 않은 것을 옳은 것인 것처럼 장난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걸 할 수 있고 해봤으며, 토론대회 좀 나가본 애들은 다 이걸 할 수 있으며, 많은 정치인들이 이런 짓을 한다. 즉, 논리적으로 '옳지 않은 것'을 응원할 수도 있다. 


물론 논리적으로 옳지 않은 것을 지지할 때 '더 논리적인 주장'으로 그것을 반박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주장은 '더더더더 논리적인 주장'으로 재반박이 가능할 수 있다. 이러면 끝이 없고 '논리'만으로는 '옳음'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방정식에 무한한 수를 대입해서 원하는 결과를 입증해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편의를 위해 이 문단에서 말하는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은 나의 판단에 기반한 것이라 전제하겠다) 


무엇이 '옳음'을 결정하는 지는 여전히 찾아가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무엇이 옳은 가에 있어선 확답을 내리지 못한다. 개별 사례에 있어서 "그건 이게 맞는거지"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 주장이 옳은 주장이 되게하는 근원적인 변수는 확실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사람의 수'와 '논리'를 언급한 것은 그것들은 옳음을 판단함에 있어 적절한 변수가 될 수 없기에 그것들은 '옳음'을 판단함에 판단근거로서 소거해야한다는 의미다. 


옳은 것을 실천하는 문제

난 개별사례에 대해선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옳은 것은 그것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일 땐 실천해야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람의, 지성인의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옳은 것을 실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생각하는 대로 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건 비단 옳고그름 이슈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운동을 해야한다"라고 생각해도 운동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럼 옳은 것을 실천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인건가? 


비단 의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나는 무엇이 옳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정신적으로 감당이 안될 경우 '옳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네이버 블로그와 티스토리, 브런치,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꽤나 많은 유저들을 차단하고 댓글을 삭제했다. 


삭제하는 행위가 옳아서? 단언컨데 아니다. 심지어 댓글에 욕설과 모욕이 가득하다고 해도 그 댓글들은 작성자가 아닌 자들에 의해 삭제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들을 삭제하면서 "내 블로그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 내가 대통령도 아니고 일일이 들어줄 필요 없지"(정작 대통령도 안드는 건 함정)라고 정신승리했으나, 그렇다고해도 나의 행위가 자랑스럽지는 않다. 누군가는 욕설 댓글이나 모욕 댓글들을 삭제하는 것은 옳은 행위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삭제 행위는 적어도 나의 소신에는 위반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들을 삭제할 것 같은데, 그런 것들에 일일이 반응해주는 것이 나를 꽤나 번거롭고 피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주장들이 나의 공간에 자리잡고 있으면 보기 싫어도 보고 있어야하는데, 그런 부분들은 내게 짜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내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일종의 죄책감(?)을 감수하고 삭제할 것이다. 삭제 행위에는 여기서 잠깐 언급한 것들 외에도 더 많은 이유들이 있다. 가령, 해로운 밈(meme)을 죽인다던가(...)

-

거침없이 올바르게 살고 싶다. 그런데, 아직 수양이 부족한 것 같다.

더 단단해져야.

-

브런치, 매거진 구독해주세요~

카카오톡- funder2000 

제보,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은 사랑입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lalaldalala1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Hellchosunnews

매거진의 이전글 아우디를 사줄 수 있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