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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Mar 19. 2016

아우디를 사줄 수 있는 사람


돈, 돈, 돈

난 돈이 많지도 않고 현재 수입원도 없지만,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은 주위에 꽤나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냥 그렇게 되었다. 딱히 이걸 '인복'이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들이 돈이 많다고 해서 나한테 득이 될 건 조금도 없으니까.


난 그들에게서 돈을 빌릴 생각도 없고, 그들의 재력을 통해 돈을 벌 생각도 없다. 존심이 허락을 안한다 존심이.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이유로 인복이 많다라는 건 어불성설이고, 차라리 그런 사람이 '많다'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인복'이 '많다'라고 할 수는 있을 거 같다. 내가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하면 저들이 '인복'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만, 난 돈도 없지만 빚도 없어서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딱히 생길 거 같지가 않다. 그런데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기도 하고.


돈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서 돈을 구해낼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돈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돈이 많은 사람'이 한 어떤 행위를 봤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란 생각을 하게됐다. 내게는 꽤나 감명깊은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 우선 그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 전에 산을 타보자.


경제적 위치를 추측할 수 있는 지표


누군가의 경제적 위치를 추측할 수 있는 몇가지 지표들이 있다. 나는 주로 그 사람의 취미생활과 자가용을 통해 이를 추측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SNS로 충분히 스눕(snoop)할 수 있다. 굳이 각 잡고 누군가를 관찰할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의 생활을 보면 자연스럽게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두드러짐은 굉장히 중요하다. 누가 빌딩 50채를 가지고 있다고해도, 이는 서류로만 증명될 뿐이다. 허름하게 옷 입고 있는 빌딩 부자 할배의 재력은 두드러지지 않기에 직관적으로 그의 부를 알아차릴 수 없다. 그의 취미생활도 마찬가지다. 그의 취미생활을 알기 위해선 조사(research)를 해야한다. 직관적으로 팍 오는 게 없다. 그나마 직관적으로 그의 경제적 위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 옷과 자가용인데, 옷은 비싼 옷을 알아보는 눈이 없으면 알아볼 수 없기에 이 역시 특정 사람들에게만 두드러진다. 그러면 남는 게 자가용 정도다.


지표들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자가용이다. 일단 브랜드의 이름만으로 얼마나 여유자금이 있는 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눈으로만 봐도 딱 감이온다. 물론 외제차 중에서도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또 '끕'(급이 아니라 끕)이 갈리겠지만, 전문지식이 필요없다는 점에서, 딱히 조사가 필요없다는 점에서 '나의 부'를 어필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건 누가 뭐래도 자가용이다. 예를 들어 누가 마이바흐를 끌고다닌다면 그 사람은 이건희급의 부자일 게다(이건희이거나).


국산차를 끌던 사람

국산차를 끌던 분이 계셨다. 그 분이 국산차를 몰고다닌 건 간단하다. 국산차를 샀었고, 그 차가 고장나지 않았으며, 계속 주행을 하는 것에 있어서 전혀 문제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즉, 고장이 안나서 계속 그 차를 몰았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중년 여성들 모임에서 그 차로 인해 부끄러운 일을 당한 모양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중년 여성들 특유의 예의차리면서 놀리는 어투로 무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국산차를 끌던 분은 도곡동 타워펠리스에서 살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타워펠리스 아줌마들 모임이 아니었을까 싶다.


놀렸던 중년 여성들은 모두 외제차를 끌고다니지 않았을까? 그런 그들의 눈에 국산차는 '수준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였을 게다. 앞서 말했듯이 자가용은 두드러진다. 그 차를 통해 경제적 위치를 추측하고 무시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남편이 전해들었고, 이에 빡친 남편은 그 날 곧장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는 나의 상상) 아우디 매장을 가서 바로 결제를 했다. 국산차를 몰고다녔던 건 그저 차가 고장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우디를 구매한다는 것

그 남편이 아우디를 구매한 것은 내게 단순히 '나는 돈이 많으므로 이 따위건 얼마든지 사줄 수 있어'로 보이진 않았다. 그것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이 그에게 많은 것처럼 보였다. 오직 돈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엔 꽤나 많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똑같은 일을 당했다면 나도 그 사람처럼 할 수 있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존심을 시켜줄 수 있는 수단이 내게 충분히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돈 욕심이 강렬하게 생긴 것 같다. 물론 멀쩡한 차를 몰면서 아줌마들의 세상을 보는 천박한 관점을 무시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천박한 자들을 그들의 삶의 논리로 깨부수는 일만큼 즐거운 게임이 또 어딨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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