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데 사랑받는 쪽이 그것을 모를 때, 그것을 짝사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랑받는 쪽이 사랑받는 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때, 그것을 외사랑이라고 한다.
무엇이 더욱 슬픈 사랑인가를 따지자면 후자인 외사랑이 아닐까 한다. 짝사랑은 아직 결판(?)이 나지 않은 상황인데 외사랑은 어느정도 결과가 나와있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랑받는 쪽에서 알고도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거나, 이미 고백을 받았으나 거부한 상황일 수 있다.
외사랑을 하고 있어도 아직 고백을 하지 않은 상황이라 둘의 관계가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일 수는 있다. 사랑받는 쪽이 자존심 때문에 고백해주길 기다리는 걸지도 모른다. 진리의 케바케사바사는 여기서도 통한다.
짝사랑이나 외사랑을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있다. 짝사랑이나 외사랑은 일방적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 감수해야될 게 아무것도 없다.
'나'가 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에 대해 제멋대로 상상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 사람이 좋아하지 않을 것도 좋아할 것이라 되레 상상하는 등 그 사람의 취향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나'에 대한 호감이나 불호도 제멋대로 상상하고 제 풀에 지쳐 좌절하거나 혼자 상상에 빠져 승리의 기쁨에 취하기도 한다.
그러니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 그 온도가 아무리 뜨겁다고 하더라도 막상 연애를 시작하면 연애가 오래 가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는 짝사랑의 기간이 길면 길 수록 더 그러하다. '내가 상상했던 그'는 그저 상상 속의 존재에 불과하고, 짝사랑의 기간이 길 수록 '내가 상상했던 그'의 모습은 점점 더 구체화되어 '그'의 본모습과 멀어져간다. 이런 상황에선 연애를 시작하면 '내가 상상했던 그'와 '그'의 본 모습 사이에 괴리를 발견하게 되고, 오히려 짝사랑을 시작했던 이는 그 괴리를 못 견뎌내고 제 풀에 지쳐 연애에 종말을 고하게 된다.
만약 그 두 사람이 사귀었다면, 그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맞춰가며 여러 희생들을 감수했을 것이고, 나는 그런 희생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입증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짝사랑이나 외사랑에는 이러한 희생이 아직은 없다. 그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일방적인 방식으로 '사랑'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란 건 연애를 시작한 뒤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그전까지는? 아이돌 따라다니는 학생들의 오빠 사랑과 딱히 다를 게 없다. 혼자 상상하고 혼자 좋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괴로우면 사랑인가?
짝사랑이나 외사랑도 '사랑'의 범주에 넣어야한다는 주장을 누군가가 한다면 그는 아마 고통을 이야기할 것이다. 확실히 짝사랑이나 외사랑은 고통스럽다. 내가 보내는 사랑이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외사랑의 경우, 그것은 거의 확정적이다. 아무리 '그'를 사랑해도 '그'는 '나'에게 사랑을 돌려주지 않고, 그저 받아먹기만 한다. 이것은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좌절케 한다. 그러니까 짝사랑을 하는 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데 이렇게 힘들리가 없다"="내가 힘든 것을 보니 나는 그를 사랑한다"
누군가에게 되돌아오지 않을 사랑을 보낼 때, 그것은 확실히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가 상상하는 '그 사람'이 실제하는 지도 불분명하고, 설사 상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의 온도가 지극히 낮다는 것은 인정해야한다.
짝사랑을 함에 있어 감수해야될 건 별로 없다. 짝사랑을 할 때의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도 상관없는 상태고, 짝사랑을 거둬도 딱히 문제될 게 없다. 즉 자유롭다. 그리고 짝사랑을 하는 자들은 그 상태를-의도했건 안했건- 유지하고 있다.
짝사랑을 하는 자들의 사랑의 온도가 높았다면 그들은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정환이는 택이한테 뺏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갔다고 아쉬워할 건 없다. 애초에 자유를 만끽했다는 건 그 정도로 뜨겁게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니까.
그 사람은 자신을 더 사랑해주는 사람의 곁에서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그의 행복을 축복해주고 마음 편히 다른 사람을 찾아가면 된다. 그게 짝사랑의 특장점이다. 속박되어있지 않은 자유로움. 다만, 자유의 맛에 중독되면 평생 솔로를 면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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