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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n 20. 2016

'연애가 나를 구원해줄 것이다' 라는 환상

정말 연애는 구원인가?

Mark Rothko, Mellon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하는가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행복 기준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많은 사람에게서 인정을 받으면 스스로가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거라 생각하고, 또 어떤 이들은 어떤 물건을 소유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이는 일종의 믿음이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행복해질거라는 믿음. 그 믿음은 합리적으로 구성되기보다는 '나는 그렇더라' 혹은 '나는 그런 것 같아'같이 주먹구구식으로 합리화된다.


근거도 없이 만들어진 행복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일종의 신앙이 되었기에  원했던 것을 손에 쥐어도 행복은 간데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애초에 우리가 만든 그 믿음이 어떤 객관적인 데이터 등을 통해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설령 객관적인 데이터로 어떤 행복 기준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 기준이 '나'에 부합할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행복할 의무를 지닌 우리가 해야할 건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라는 믿음이 일종의 환상일 수도 있다는 자각을 하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거지. 정작 그토록 원했던 비싼 핸드백을 사도, 매력적인 여자친구가 생겨도, 공모전에서 우승해도 여전히 불행이라는 놈은 스물스물 저쪽에서 기어온다. 


대부분의 갈망은 결핍과 관련있다. "목표를 가지고 싶다"라고 말하는 이에겐 목표가 없고, "공부를 잘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이는 자신의 공부나 성적에 딱히 만족을 하지고 못하고 있는 상태다. "연애를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이는 너무도 당연하게도 애인이 없겠지만 또 한편으론 그가 그런 종류의 결핍에 꽤나 예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표나 성적표 따위는 그의 행복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애인이 없다는 것, 그건 아마 그에게 꽤나 치명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랑의 결핍, 사랑에 대한 갈망

나는 애정결핍을 일종의 '병'으로 인지한다. '병'은 사람을 아프게 하고, 피로하게 만든다. 그리고 애정결핍 역시 그러한 기능을 한다. 한편, 애정결핍은 병이기에 다른 병들처럼 치료가 가능하다. 애정결핍을 가진 자들은 연애를 하게 되면 자신의 인생이 완벽하게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가 나타나면 인생이 180도 바뀔 거라고 보는 거지. 그러니까 그들에게 '애인'은 아직 맞춰지지 않은 마지막 퍼즐조각이다. 그 퍼즐조각만 있으면 퍼즐은 완성되고 내 인생은 더 없이 행복해지리라.


이런 이들은 사랑에 있어 조급하다. 그래서 이들은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상상할 때 상대가 얼마나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선 관심이 있지만, '나'가 얼마나 상대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조급하기 때문에 재빨리 쇼핑을 마치려고 한다. 물건에 하자가 있는지, 나에게 맞는 지는 보지도 않고.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상대'라고 크게 착각한다.


애정결핍을 가진 자들은 사랑에 목이 마르고 혼자 우뚝 서지 못한다. 스스로 온전히 독립적인 존재이지 못하기에 그들은 '타인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들은 '타인의 사랑'이 있어야 스스로가 완성된다고 믿는다. 그런 그들이기에 타인이 자신을 좋아하기만해도 '우오!!'하면서 발정난 상태가 된다. 


타인의 사랑이 구원을 가져다줄 거라는 믿음

그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으면 행복해질 것이다, 연애를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라는 믿음은 진실일까? 일시적으론 그럴 수 있다. 일시적으론 연애가 스타트를 끊었을 때 기쁨의 쾌재를 내지를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의 사랑만으로 이루어진 연애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우선, '나'가 상대를 사랑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나를 사랑하니까'이기 때문에 상대의 사랑이 식으면 애초에 이 관계를 개선될 여지가 없다. 연애는 두 사람의 일이고,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해야 성숙해진다. 그런데 애정결핍자가 가지는 관계에선 일방의 노력 뿐이 없다. 한 쪽의 의지에 좌우되기에 위태로운 관계다.


또한, 이런 믿음을 가진 이들은 오로지 사랑받기 위한 제스처만을 취하면서 "연애하고 싶다"는 노래만 부르고 정작 스스로가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기에 사랑받기 어렵다. 여기서부터 그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된다. 타인의 사랑에 목을 매는 매력없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불행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자기최면일 뿐이다. 연애 안해도 얼마든 지 행복할 수 있다. 


타인의 사랑이고 나발이고, 가장 중요한 건 자립이다. '온전한 나'가 되고, '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나'에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때, 그 때 자립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될 때 타인의 제안(propose)도 거부할 수 있고, 타인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이유만으로 발정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온전한 내가 되었을 때만이 '나의 취향'이 도드라져서 진정한 사랑,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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