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처음이란 게 있다. 처음 그것을 하고나면 다음부턴 훨씬 쉬워진다. 다만 첫 경험이 말만큼 쉬운 게 아니고,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 지하철을 타는 것은 내게 그런 일이었다. 부모님과 바깥을 나갈 때는 부모님의 차를 타거나, 지하철을 탔다. 그러니까 내게 지하철은 항상 어른들과 타는 무엇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지하철을 처음 타게됐다. 그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데, 아, 할 수 있구나, 같은 거였다. 막상 해보니 별 거 아니었던 거지. 또 별 거 아닌 경험을 하면서 뿌듯했던 적이 있었는데 라면을 처음 스스로 끓였을 때다. 나와 생일이 9월 22일로 똑같은, 지금은 캐나다로 이민을 간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였던가? 그 집에서 라면에 물을 받고 혼자 처음으로 라면을 요리(?)했다. 생각보다 쉬웠다. 물을 끓이고, 나머지들을 넣고 또 끓이면 끝이다. 이게 이렇게 간단한거였다니.
대체로 이런 식으로 하나씩 배워갔던 거 같다. 컴퓨터 조립도 마찬가지다. 난 컴퓨터 조립을 스스로 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업체가 조립해준 것을 쓰거나, 친구에게 부탁해서 조립을 했었다. 어느 날 그래픽카드에 대한 갈증을 느껴서 GTX970이란 그래픽카드를 샀는데, 이 그래픽카드가 내 케이스에 들어가질 않았다. 그래서 케이스를 새로 샀다. 새로 산 케이스를 사용하기 위해 기존 본체에 부착되어있던 다양한 장비들을 본체에서 해체했다. 파워, 메인보드, 그래픽카드, SSD, 하드, 램 등등. 해체 작업은 순조로웠다. 막상 해보니 쉬웠다.
해체된 장비들을 이제 새로운 케이스에 부착할 일만 남았다. 이는 내게 약간의 멘붕을 안겨줬는데, 해체 작업과 달리 좀 더 복잡해보였기 때문이다. 해체 작업은 드라이버만 쓸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였는데, 조립 작업은 뭔가 더 많은 스킬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또 그렇지도 않았다. 파워, 메인보드 등이 장착될 장소는 명확했다. 유일하게 애매했던 것은 파워에서 나온 가닥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였는데, 이것도 그냥 매뉴얼대로 하니까 간단했다. 해보기 전엔 굉장히 두려운 작업이었는데, 막상해보니 간단했다.
이런 경험들을 조금씩하다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일단 직접 해보는 경향이 좀 생겼다. 해보다가 시행착오에 부딫히면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문제들을 해결한다. 아예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파워의 팬이 너무 소음을 내서 파워의 팬을 파워로부터 해체했다. 그 팬을 용산에서 새로 사온 팬과 교체를 하려했다. 파워의 검은선과 빨간색 선이 팬에 동력을 주고 있었는데, 기존 팬을 해체할 때 나는 그 선을 니퍼로 잘라냈었다. 새로 산 팬을 연결하기 위해 새로 구매한 팬의 전선의 피복을 벗겨냈다. 검은색과 노란색과 빨간색이 있었다. 내가 해야될 건 파워의 검은색, 빨간색 선과 새로 산 팬의 검은색 빨간색 선을 서로 잇는 거였다.
각각의 검, 빨 선들의 피복을 벗겨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프라모델 작업으로 단련된(?) 니퍼 스킬이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각각의 선들을 연결하고 팬을 파워에 넣는 작업도 완료했다. 이제 내가 할 건 파워를 켜서 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지를 확인하는 일 뿐이었다. 전원선을 파워에 연결하고,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퍽!
갑자기 퍽!하는 소리와 함께 암흑이 펼쳐졌다. 말그대로 내 방의 모든 불이 꺼졌다. 순간 멘붕하고, 다른 방의 불을 확인해봤으나 다행이도 다른 방들은 아무 문제도 없었고, 내 방도 두꺼비집을 확인해보니 멀쩡했다. 과전압이라 전기를 차단한 모양이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물으니 문제가 바로 나왔다. 검은선과 빨간선이 서로 닿지 않은 상태로 전류가 통해야하는데, 닿아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만약 친구를 통해서 했다면 멀쩡한 파워가 나가지도 않았을 거고 용산에서 사온 15000원짜리 팬도 사온 그날 고장나지 않았을 게다. 그래도, 다음엔 실수를 안할 게다. 하나씩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