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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Aug 02. 2016

3.3만 좋아요 페이스북 페이지의 영향력에 대한 단상



어떤 콘텐츠가 흥하나?

좋아요 3.3만개 정도 찍으면 뭐 대단한 영향력이라도 있는 줄 아시는 분들이 간혹 계신다. 확실히 어떤 글들을 퍼뜨리는 데에 있어서 영향력은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도 한계는 있는게 콘텐츠의 흥함은 구독자의 니즈와 원츠에 부합 여부와 상당히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김영란법에 대한 최근의 게시물들은 좋아요 1000개 이상을 받으며 널리 퍼지고 있지만, 대한동물약국협회 페이지의 게시물을 공유한 것은 좋아요를 하나 받았다. 말그대로 하나. 설문조사 요청이 가끔와서 그걸 공유해도 이런 게시물들은 좋아요 10개를 채 넘기지 않는다. 페이지의 좋아요가 높아봐야 구독자들에게 아웃 오브 안중인 건 여전히 아웃 오브 안중으로 남는다는 말이다.


선동이 가능한가?

"선동이 가능하냐?"라고 물으면 "네버"라고 밖에 답을 할 수 없다. (다른 페이지는 어떤 지 모르겠다만) 헬늬 구독자들은 다들 자기 주관이 강하다. 그래서 내가 뭔 이슈를 들이대면서 내 주장을 펼치면 케바케로 리액션을 보인다. 여혐 이슈를 다루면 어떤 이들은 동의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동성애 이슈에서도 마찬가지고 노동 이슈에서도 마찬가지고 집회 이슈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때 어떤 이들은 내가 메갈을 비판했다면서 팔로우를 끊었고, 또 어떤 이들은 내가 메갈을 옹호한다면서 팔로우를 끊었다. 참고로 나는 메갈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낸 적도 없고, 일베와 동급으로 여기며 비판했던 적도 없다. 지금도 나는 그들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도 않고, 일베와 동급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적어도 이 글에서 중요한 지점은 내가 메갈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건 간에 구독자들은 그 입장에 좌우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다. 


이건 비단 헬늬만의 이슈는 아닐 것이고, 구독자들을 상대하는 모든 페이지들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한다. 특정 게시물로 인해 독자들의 비판에 직면하는 현상이 증명해주는 건, 특정 글로 선동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거다. 조선일보는 <간장 두 종지>로 까이고, 보수들 텃밭이었던 성주 사람들은 조선일보를 보면 좀비가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도 요즘 김영란법에 관한 여러 글들로 인해 탈탈 털리고 있다. 그런 시대다. 


경향신문과 미디어오늘은 메갈 이슈를 다루면서도 정치적으로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함인지 여러 입장을 실은 글들을 기고 받아 기재하고 있다. 이렇게하면 지금 개판인 이 이슈를 다루면서도 분노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장사는 이렇게 하는거다.


결국 페이지를 통해서 "구독자들"이 "이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렵다. 만약 내가 선동을 하려면 <인셉션>의 인셉션을 해야되는건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솔직한 생각으론 이게 가능한 지도 잘 모르겠다. 


차라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그 생각을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걸 손에 잡히게 해주는 건 내가 좀 재주가 있으니까. 응원한다면서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은 내가 어떤 생각을 들게끔 해줘서 나를 응원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을 보다 분명히 해주어서, 즉 공감을 이끌어내어줘서 응원해주는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결코 미디어의 내용만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진 않는다. 특히나 개인주의가 점점 퍼지고 주관을 가지는 이들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선동'이라는 작업은 어려워진다. 괴벨스 할배가 돌아와도 프랑스에선 선동 못한다. 선동도 까라면 까는 멍청이들이 많아야할 수 있는거거든.


선동은 애초의 언론의 덕목

선동이란 단어는 "남을 부추겨 어떤 일이나 행동에 나서도록 함"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언론은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언론은 원래부터가 선동을 위해 만들어진 무언가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객관적인 언론이란 말은 형용모순적인 말이고. 


언론이란 조직이 인류에게 주어진 이후로 '객관적인 언론'은 나타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나타날 수 없다. 나는 언론인 손석희를 꽤나 좋아한다. 그가 객관적이라서 좋아하는 것이라기보단 그의 시선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그를 비판할 수는 없다. 왜냐면 객관적인 언론인 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사진 한 장을 찍어서 보여주어도 거기엔 주관이 개입되고, 이슈의 순서를 매기는 것에도 주관이 개입되고, 어떤 이슈를 다루느냐 여부에 있어서도 주관은 개입된다. 객관적이고 모든 면에서 공정한 언론 따위는 유토피아처럼 그저 개념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선동을 하는 것 자체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여론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한다는 게 내 생각이고, 헬늬같은 유사(?)언론(?) 페이지도 같은 태도로 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지점에서 언론이나 유사 언론 페이지 관리자들이 주의해야할 점은 사실에 기반한 선동구라에 기반한 선동을 구분해야한다는 거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주진 않기에 목적이 정당하다고 구라를 쳐서도 안된다.


선동의 씨앗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동(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의 씨앗이 발견되긴 한다. 나는 헬늬에 젠더 이슈에 관한 글들을 꽤나 많이 썼다. 물론 해당 글들은 많은 남성과 몇몇 여성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글들을 통해 생각을 바꾼 이들도 존재한다. 


이걸 내가 어떻게 아냐면 해당 글들 때문에 자신이 생각을 바꾸게되었다는 메세지들이 간혹 수신되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런 메세지가 페이지로 도착했다. "저도 뭐 김치며 혐오하다가 헬조선 늬우스보고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했단 거 알게됐습니다." 이 구독자가 여전히 한국 여성들을 "김치녀"로 부른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 메세지가 증명하는 건 인셉션이 성공하는 사례가 있긴 있다는 거다. 인셉션이 된 이들이 모두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기에 얼마나 인셉션이 성공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쨋건 되긴한다는 거. 가능성은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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