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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Aug 29. 2016

이별 뒤, 재회가 어려운 이유

Blue and Gray, Mark Rothko


이별을 수용하는 문제

이별을 '잘' 수용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이전의 연인을 깔끔하게 잊는다는 걸 '잘'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다음의 연인을 재빨리 사귀는 것을 '잘'이라 표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이전의 연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며 그 관계가 왜 종말을 고하게되었는 지를 이해하게되는 것을 이별을 '잘' 수용하는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별을 '잘' 수용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들이 있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이고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이별을 잘 수용하지 못하는 케이스는 이전의 연인을 잊지 못하는 경우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전의 연인을 잊지 못하는 자들을 두고 "이별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말을 하곤 한다. 이별은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이전의 연인에게 마음을 품고 있을 수도 있으니 이들을 두고 "이별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는 않을 수도 있으나 여튼.


왜 잊지 못하는가?

왜 잊지 못하는가, 에 대해서도 여러 말들이 있다. 아직 충분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그렇다는 <시간 이론>도 있고, 새로운 연인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다는 <새로운 연인 이론>도 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을 만나봐도 이전의 연인만하지 못하ek는 <지나간 벤츠 이론>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이론들은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지언정(그조차도 의심스럽다), 이별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냥 시간이 지나길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전의 연인을 잊기 위해 새로운 인연을 급하게 만나는 것이나 과거의 영광(?)에 취해있는 것이나 권장할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회를 꿈꾸는 자들

잊지 못하는 자들 중 일부는 이전의 연인과 다시 연애를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하기에 이른다. 그것만이 이 오랜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옵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이전에 함께했던 자가 지금도 '나'와 사귈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는 꽤나 위험한 오해인게, 이별이라는 이벤트는 모든 이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히고, 그 타격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나'를 사랑했던 그 사람이 지금도 '나'를 사랑할지는 알 수 없고, 설사 그 사람이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나'가 사랑했던 그 존재가 여전히 예전과 같은 존재자인지는 알 수 없다. 즉, 그 사람과 다시 관계를 가진다고 할 지라도, 그 관계는 이전 관계의 연장선상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사람과의 새로운 연애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나' 역시 이별이라는 이벤트를 겪으며 '새로운 나'가 됐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제는 그 사람도 '새로운 나'를 만나야한다.


재회를 꿈꾸는 이들은 '나'가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또 지나간 그 사람도 예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관계의 파국을 겪었고, 그것은 두 사람 사이를 유지해주는 유대감까지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시켰을 것이다. 이 부분이 재회를 어렵게하는 부분이다. 설사 재회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당사자들은 지금의 연애를 이전의 연애의 연장선상이라 생각하지 새로운 연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똑같은 이유로 또 이별을 겪으며 재회는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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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싶을 때는 실패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질러야하지 않겠나.

한번사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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