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친 둘과 왕십리의 드뷔시 산장 카페로 갔다. 왕십리에 이런 곳이 있는데 니들이 아직도 모르는 게 신기하다, 면서 데리고 갔다. 드뷔시 산장은 한양대와 거의 함께하다시피 한 역사적인(?) 카페다. 이 카페는 천장이 낮고 조명은 어둡고, 인테리어는 따뜻하다. 아지트로 삼기에 좋은 카페다.
한 명은 타로를 봤다. 연애운. 한 명이 연애운을 보는 사이에 나머지 한 명은 고향으로 내려가는 교통편을 타기 위해 이야기를 듣다가 카페를 떠났다. 첫번째 타로가 끝나고 나도 타로가 보고 싶어서 타로를 봐주시는 분에게 시간이 되냐고 물었다. 타로는 밤 10시까지만 하는데 내 친구가 타로는 보는 동안 시계가 10시를 넘겼기 때문이다. 가능하다하셨고, 타로를 봤다. 연애운.
좋아하는 사람 있으세요?
아뇨.
마음에 두는 사람 없어요?
네.
어떤 걸 보시고 싶으세요?
생기긴 하는지. 앞으로 평생 없을 거 같아서요.
그 다음 대사는 별로 기억이 안난다. 이상형은 떠올려보라면서 카드를 뽑으라했던가, 지금의 마음을 떠올리며 카드를 고르라했던가? 둘 모두가 아니었던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드는데, 이 글에서 그런 디테일은 별로 중요치 않다.
내가 뽑은 카드를 뽑아서 펼쳐보이더니 요즘 사는 게 힘드냐고 물었다. 매일 운동하고, 자기관리하고 그러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럼 뭐해 속은 완전 썩어가는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분은 내 정신을 두고 "황폐한데"라고 묘사했다. 황폐라니.
난 타로를 재미로 보는 사람 중 하나고, 타로나 사주가 내 인생을 결정짓는다거나, 이미 결정된 운명을 타로나 사주가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주팔자나 타로를 은근히 믿기는하는데, 뒤틀라면 얼마든지 뒤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력도 커다란 변수 중 하나니까.
나의 타로에 대한 인식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황폐한데"라는 말은 예리하게 나를 관통했다. 실제로 지금의 내 삶이 황폐에 가깝다고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 황폐함은 한 때 함께했던 연인과의 이별과 함께 찾아왔고, 나와 함께한지는 곧 2년이 된다. 익숙한 놈이다.
최근 이 황폐함이 떠나갔던 적이 있었다. 한 여성분이 커피 기프티콘을 주며 내게 연락을 해왔고, 이러저런 이야기를 카톡 상으로 나누다가 번개로 강남에서 만나기도 했고 곧 이사를 가는 그 분의 집에 놓을 가구를 탐색하러 함께 가구점에 가서 구경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이것저것하며 몇주를 보냈다. 고백한 뒤에야 알게되었지만 커피 기프티콘이나 그 외의 것들은 내가 짐작했던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그녀의 존재가 나타났을 때와 차인 후 한참이나 황폐함이라는 친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있었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나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그 무엇이다." 나는 그녀가 내게 의미하는 무엇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칠흑 같은 어둠에 내린 한 줄기 빛이었달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녀가 내게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그랬다. 한 줄기 빛.
그녀의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그녀는 나의 절망에 종언을 고한 존재였다. 그녀의 등장 이후 내 삶에 생기가 돌았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렬해졌고 소위 자기관리란 것도 그녀의 등장 이후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녀는 나보다 뛰어난 부분이 많았고, 나는 그녀를 존경했다. 뒤쳐져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등장하기 전의 나는 죽은 인간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황폐를 벗 삼으며.
고백에 대한 결과가 내가 원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고백을 한 뒤에-결과와 관계없이-후련함이 밀려왔었다. 마음을 열어보인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도전이었다. 고백의 결과는 애초에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잘되면 좋겠지만 차여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선 뒤에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이미 결정이 나있었고, 그녀가 나와 마음이 다르다면 각자 갈 길을 가면 되는 거였다. 단순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렇게 되었다.
황폐가 내게 온 시점이 이별의 뒤이긴하지만, 황폐의 원인이 사랑했던 자와의 이별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할 대상, 좋아할 대상이 있을 때 삶에 생기가 돌고 황폐함은 감히 근처에도 오지 못하는 듯 하다. 차인 뒤에도 삶에 생기가 돌았던 건 그녀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날 사랑해줄 사람을 찾고 있지는 않다. 어떤 대상을 찾고 있다. 그때 쯤이면 삶에 생기가 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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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유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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