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연애할 때가 아니다."
연애 포기 현상
고삐리였을 때 머릿속을 지배하던 여러 문장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연애할 때가 아니다'가 그 중 하나였다. 딱히 나 좋다는 여자도 없었고, 짝사랑만 하는 인간이었어서 연애할 기회가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저 명제는 당연하다는 듯 머리에 자리를 잡았었다. 생각해보면 나만 그랬던 것 같지도 않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연애를 방해물로 여겼다. 고삐리들은 수능 외에 것들에 관심을 줘선 안된다는 생각들이 고삐리들의 머리를 지배했다. 그렇다고 연애하는 고삐리들이 없었냐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할 놈들은 한다.
수능을 준비하던 당시에 '연애를 하면 안된다'라는 말이 돌았던 이유는 '수능'이란 놈이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믿음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수능으로 인생이 결정날 수도 있다는 믿음은 수능 외의 것들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었다. 믿음들은 고삐리들을 긴장시켰고, 고삐리들은 수능에 모든 것을 걸어야한다고 믿었고, 어떤 이들은 그 믿음에 압도당해 스스로 생을 끝내기도 했다(현재도 진행 중이다).
선생들은 이 믿음이 수능 점수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거라고 다들 합의라도 한 듯 학생들이 요구하지도 않았음에도 멘토 역할을 자임하며 학생들에게 일장연설을 하곤 했다.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나? 지진이 났는데도 선생이란 자가 자기가 책임지겠다며 야자를 계속 시켰다는 걸 보아하면 2016년의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지진이 일어나는데 일개 인간인 선생 따위가 뭘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지는 모르겠다.
2~30대의 연애 포기 현상과 고삐리들이 연애 포기 현상 간에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지금은 상황상 여의치 않으므로 연애를 포기할 뿐, 상황이 개선되면 연애를 할거라는 점에서 통한다. 즉, 조건부 임시 포기다. 둘 간의 차이도 존재한다. 내 또래들이 주로 경제적 이유로 연애나 결혼을 포기하고 경제적 상황이 개선되면 연애를 할 거라는 의견들을 보이는 반면, 고삐리들은 수능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연애를 포기하고, 선생들도 대학을 들어가면-지금 니들이 사귈 수 있는 못생긴 것들보다-이쁘고 잘생긴 것들 천지라며 공부나 하라고 닥달한다.
"정상적인 연애"라는 프레임
한국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프레임에 꽤나 익숙하다. 정상은 정답에 비정상은 오답에 대응시킬 수 있다. 이런 프레임에 익숙하기 때문인지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못한다. "다르다"를 써야할 상황에 "틀리다"를 쓰는 사람들을 잘 관찰해보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정확히 쓴 경우가 많다. "저 생각은 틀리다"라고 할 때 발화자는 실제로 저 생각이 "틀리다(incorrect)"고 판단해서 하는 말이다.
생각은 다를 수는 있되 틀릴 수는 없는 대상이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이들은 생각에 대해서도 '틀리다'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한다. 심지어 어떤 생각에 대해서도 팩트팩트 거리면서 '확고하게 옳기 때문에 비판받을 수 없는 생각'이란 게 실존한다는 듯 말한다. 사실(fact)과 생각(think)는 엄연히 구분이 되어야하는데 한국에선 이 둘 간의 구분이 꽤나 모호한 것이다. JTBC의 <비정상회담>이란 프로에선 각국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나와서 어떤 현상 하나를 두고 정상과 비정상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뭔 말인지 알겠나?
연애를 일종의 삶의 장애물로 여기는 시선을 좀 더 들여다보면 삶에 '정답(only correct answer)'을 들이대려는 시도가 보인다. 연애를 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놓은 뒤 그 조건에 부합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포기하는 것이다. 연애는 많은 이들에게 '어떤 삶'을 위해선 포기해야하는 무엇이 되었으며 '그런 연애'를 못할 바엔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옵션이 되었다. '그런 연애'를 할바엔 차라리 혼자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3이 끝나며 수능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많은 청년들은 미지의 수능을 치루고 있는 듯 하다. 그만큼 청년들은 긴장하지 않고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번은 누가 "생존조차 야망이 된 시대"라고 말했고, 또 누구는 "우리는 그 말은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연애, 결혼
연애포기현상, 결혼포기현상과 개인의 열악한 환경은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연애를 포기하는 이유는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해서이고, 결혼을 포기하고 연애를 안하거나-연애를 한다쳐도 동거 생활에 만족하는 이유는 타인과 한 가족이 되어서 살아야할 이유가 명백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하기보다 동거를 하는 이유는 개인간에 속박되지 않지 않기에 이별이 보다 편리하고, 그러면서도 부부들이 할 건 다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게 있다. 우선, 결혼. 프랑스에선 일찍이 동거 문화가 발달해서 출산양육제도에 있어서도 그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프랑스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두가지 정책을 실시하였다. 첫째는 가족법의 폐지이며 둘째는 팍스(PACTES)의 도입이다. 가족법은 2006년 폐지되어 결혼출산과 혼외출산의 구별을 사라지게 했다. 이로 인해 혼외출산을 한 자들은 결혼출산을 한 자들처럼 국가의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동거 남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의 커플 형태로는 결혼과 동거 그리고 합법적 동거인 팍스(PACTES)가 있다. 팍스는 1999년에 도입되었으며 동거남녀는 간단한 절차만으로 결혼에 상당하는 사회적 권리를 부여받는다. 결혼한 커플과 마찬가지로 의료보험, 자녀 양육, 집 계약, 사망 시 재산 상속 등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동거가 법적으로 인정되자 30만 명에 이르는 커플이 결혼이 아닌 팍스를 신청했다. 결혼과 비결혼에서 탄생한 아기 사이의 법적 불평등이 사라지자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개선되었으며 프랑스의 출산율은 급격히 상승했다. 1970년대만 해도 혼외 출산이 10%였는데 2008년에는 52%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1993년에 1.65명이었던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을 2012년에는 2.01명까지 끌어올려졌다.
이렇듯 프랑스는 정부가 먼저 나서 결혼출산과 혼외출산 간의 차별을 없애려 노력했다. 한국의 연애 포기,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법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현재 결혼출산과 혼외출산에 대한 법적 지원을 달리하고 있으며, 동거 남녀에 대한 지원도 하고 있지 않다. 동거 남녀의 경우 아이를 낳고 싶어도 경제적 문턱에 막혀 아이를 낳지 못한다.
연애를 안하는 청년들에 대한 국가의 대책은 훨씬 광범위하게 접근해야되는 이슈가 아닌가 싶다. 차라리 "출산"이라는 목표는 구체적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국가들이 달려들고 있으니 벤치마킹할 수 있는 정책들도 널려있다. 그런데 연애 문제에 대해선 이렇다할 가이드라인이 없다. 돈 없어서 연애를 포기하는 현상은 전세계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만들며 청년들이 돈을 만질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건 사람 간의 관계에서 오는 희열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비극적인 현상에 관심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서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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