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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l 31. 2016

한 여자 만나서 평생 재밌게 놀고 싶다

Melissa D. Johnston
다양한 경험

흔히들 일찍 결혼하는 자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너무 일찍 결혼하면 아쉽지 않냐는 것. 일찍 결혼을 하면 다양한 사람들과 더이상 연애를 못하게될텐데 그건 너무 아쉽지 않냐는 거다. 


결혼을 상대적으로 일찍한 친구에게 물었다. 그는 일찍 결혼하는 게 좋기는한데 그래도 한편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했다. 다른 여자들은 어떤 지 궁금한데 이젠 '그 세계'를 탐험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여자인 친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당시 짝이 없었던 그는 다양한 남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운동만 한 남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지만, 운동만 한 남자는 그저 그녀의 연애 버킷 리스트의 한 줄을 차지하고 있을 뿐, 운동만 한 남자 외에도 다양한 군상들이 그녀의 리스트에 자리를 차지고 있었을 게다. 하지만 운동을 조금도 하지 않은 남자는 그녀의 리스트에 없으리.


연애 관계라는 필터를 통해 접하는 '그'

연애는 한 우주와 한 우주가 가장 온전한 상태로 서로를 마주하는 특수한 관계다. 연애 관계를 제외한 관계에 돌입할 때 '나'는 그 상황에 필요한 가면을 준비하지만, 연애 관계에 진심을 다해 진입하는 자들은 그 가면을 최소화하거나, 때로는 벗어던진다. 그렇기에 '나'가 연애를 할 때 마주하는 '그'는 다른 이들은 본 적이 없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그'를 만나며 '나'도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는 스스로를 확장해나간다. 이는 다른 관계를 통해선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연애를 할 수록 다양한 '그'를 만나고 또 다양한 '나'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다양한 경험은 유혹적이다

다양한 경험은 그 자체로 유혹적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또 그의 비밀을 하나 둘 알아가는 건 꽤나 즐겁고 이는 또한 희소한 경험이다. 이런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한다면 거기에도 흥미로운 일들이 가득할 것만 같다.


이것이 유혹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경험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애 관계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시간이란 자원이 동반되어야한다. 그리고 만약 "한 번엔 한 사람만 만나야지"라는 사회적 룰을 지지하고 실천한다면 한 사람을 만날 때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없으니 연인A를 만날 땐 미지의 연인B를 만날 수 없다. 미지의 연인B를 만났다면 생겼을 지도 모를 미지의 기쁨은 연인A와 연애할 땐 기회비용이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A를 만나고 말고는 단순히 연인A를 만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미지의 연인B와의 만남이 과연 '나'가 추구하는 연애 관계가 될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한 번에 한 사람만 만나야지"라는 사회적 룰을 실천하지 않는 이들에겐 이런 기회비용이 발생하지 않을까? 글쎄, 모든 걸 잃을 수도 있기에 이 부분은 복잡하다) 


또한 매력 자본이 점점 차감되어간다는 믿음도 다양한 경험을 유혹적으로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지금의 젊음을 통해 유혹할 수 있는 자들을 나중에도 유혹할 수 있을 것인가? 나중이 안된다면 지금이 바로 적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젊을 때 가능한한 많은 사람을 만나야하지 않나? 시간이 촉박할 수록, 두뇌는 빠르게 회전하고 행동은 빨라진다. 하지만 급하면 자빠지기 마련.


오래된 연인들

오래된 연인 간에 매너리즘이 생기는 이유는 서로에 대해 더이상 흥미로운 점을 찾으려 들지 않기 때문일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연애 관계는 쌍방의 노력 없이는 굳건해지기 어려운 관계다. 내 주위에 한 남자와 5년 넘게 사귄 여사친이 하나 있는데, 그는 남자친구 몰래 다른 남자와 썸을 타고 있다. 그녀는 남친에게서 더이상 매력적인 부분을 찾기 못하고 있다. 아는 형 중 하나는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연애와는 별개다'라며 성매매를 하곤하는데, 나는 그 형도 오랜 연애로 인해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왜 이들이 흥미도 없는 상대와 계속 관계를 꾸려가는 지, 여자친구에게 흥미를 잃었다고 성매매를 하는 게 옳은 지는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들의 관계에서 집중하고 싶은 지점은 연애 상대에게서 더이상 매력적인 부분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게으름과 '다른 사람'을 통해선 '다른 경험'을 할 거란 미신이다.


연애는 쌍방의 노력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는 관계다. 그렇기에 남탓만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한다고 해도 '다른 경험'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연애 관계의 실패를 두고 남탓만 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돌아볼 줄 모르기에 '다른 사람'을 통해 '다른 경험'을 설사할지라도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장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을 만나도 지금까지의 연애 경험을 반복하고 또 이별을 하며 남탓을 할 뿐이다. "걔 진짜 쓰레기였어"라면서.


다양한 사람을 통해 얻는 경험에 관심을 끈 이유

나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 사람의 모든 부분을 알고 이해해주고 존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와 그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도 우주고, 나 역시 우주다. 교집합이 있겠지만 여집합도 당연히 있다. 이런 한계를 인지하기 때문에 나는 전선(?)을 넓혀서 다양한 사람을 접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방식의 사랑을 추구하기로 했다.


한 여자를 만나고 또 헤어지고, 이별 뒤 그 관계를 곱씹어보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했던 사랑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것이다.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위해봐야, 거기에는 채울 수 있는 빈틈들이 있었다. 또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나는 그녀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 역시 착각이었다는 거다. 즉, 다양한 경험은 한 사람과의 깊은 연애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 우주를 완전히 탐험하는 건 불가능하고, 아무리 길게 연애를 한 연인들도 서로에 대해 모르는 점들은 가득하다.


이런 관점에서 연애 관계를 돌입한다면 이별의 원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즐거울 것 같아서 이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과의 연애가 앞으로 행복해질 수 없을 거라는 자각 혹은 더이상 상대를 사랑할 여력이 없다는 자기 반성이 동반될 때 이별을 하게 된다. 즉, 이별은 '다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출구전략이라기보다는 '나'와 '그' 사이의 관계가 더이상 발전가능성이 없음을 인정하는 행위다.


앞에서 나는 기회비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인A를 계속 만나게되면 미지의 연인B를 만났을 때 발생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기쁨은 기회비용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연인A과 헤어지는 대신 미지의 연인B를 만난다고 해도 기회비용은 발생한다. 미지의 연인B를 만난다면 연인A를 더욱 오랫동안 깊이 만났을 때 생기는 대체불가능한 감정과 경험은 기회비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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