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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Oct 08. 2016

<어떻게 살 것인가?>: 미니멀리즘

집착

스스로를 평가하기에 나는 욕심이 많은 인간이다. 물건, 사람, 시간-순간에 대한 집착 등을 가지고 있다. 시험 문제를 풀 때면 아리까리한 문제를 붙잡고 있다가 다른 문제를 풀 시간이 부족한 상황을 맞이한다. 여행을 갔을 때는 항상 조급하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제한적이고, 또한 여행지에서 찍을 수 있는 사진은 지금 이곳에서만 찍을 수 있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이번 중국 여행은 9월 3일부터 11일까지 다녀왔는데 사진은 8500장 정도를 찍어왔다. 가장 완벽한 사진을 얻기 위해서 수천번도 넘게 셔터를 누른다. 대부분의 사진쟁이들이 나와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을 거다. 우린 만족할 때까지 찍고, 만족한 샷이 나와도 더 나은 샷이 나올 거란 희망을 가지고 또 찍는다. (찍사들 커뮤니티를 돌아다녀보면 나는 많이 찍은 것도 아니다) 


사람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맺고 끊는 것을 잘하지 못해서 생명이 다한 관계에 인공호흡을 하곤했다. 지금은 사람에 대해선 맺고 끊는 것을 잘하는 편인 듯하다. 아니, 잘한다기보다는 인공호흡을 안하게되었다는 건조한 표현이 더 적절할 거 같다. 생명력이 다 했다고 판단되는 관계에는 굳이 에너지 쓰지 않는다.



페라리에 관한 오랜 속담(?)이 있다. 

"페라리에 관해서는 두번의 즐거운 경험이 있다. 페라리를 살 때와 처분할 때." 

이는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에 대한 그럴듯한 통찰을 보여준다. 페라리라는 드림카를 살 때는 기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는다. 비싼 몸에 기스가 났는 지 매번 신경써야하고, 기름돼지의 밥 값도 계산해줘야되고, 항상 아름다운 상태로 유지해줘야하니 세척도 자주 해줘야한다. '나'에게 비싼 물건일수록 그 물건은 내게 강한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페라리를 처분할 때는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굳이 삐까뻔쩍하고 살면서 몇번 보지도 못할 페라리를 교훈으로 삼을 것도 없다. 법정은 <무소유>에서 난을 선물받는 일화를 이야기한다. 난이란 놈은 알다시피 꽤나 예민한 식물인지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법정은 외출을 했을 때 난을 햇볕에 놓고왔다는 것을 알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오지만 난은 생기를 잃은 뒤였다. 법정에게 난이 없었으면, 혹은 난에 그리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다면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법정은 난을 버렸다. 난 따위에-소유욕 따위에 흔들렸다는 것이 난을 버린 이유일 것이다. 


완벽주의

집착이라는 감정 혹은 행위는 완벽주의와 관련있다. 모든 것을 한치의 잘못도 없이 완벽한 상태로 만들고자 하는 태도가 집착을 부른다. 어떤 학벌을 가지지 못하면 인생이 망할거라고 생각하는 고3들의 경우,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닥으로 떨어질거란 망상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하나의 '결핍'으로 모든 게 결정날 것이라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100점을 맞으려는 수험생이 긴가민가한 한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 완벽한 여행을 만들려는 이가 여행 계획에 집착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완벽주의- 물건 소유를 통한 완벽주의

쇼핑중독도 완벽주의의 일환이다. 쇼핑중독자들은 물건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하려하고, 쇼호스트들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다. 저 물건을 사지 못하면 '나'는 미완성된 존재로 남을 거란 생각에 물건을 주문하고 또 주문한다. 하지만 '완벽한 나'라는 이데아는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고 그것이 설사 가능할지라도 돈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으니 소모적인 행태 끝에 남는 건 자멸 밖에 없다. 이게 소유를 통한 완벽주의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삶의 태도로서의 완벽주의

완벽주의가 완전히 잘못된 태도라는 것은 아니다. 완벽주의는 그저 하나의 태도일 뿐이고, 실제로 완벽주의가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일들은 적지 않다. 나는 한국과 일본의 장인, 명인들을 좋아한다. 한치의 실수나 오차도 인정하지 않는 경지를 추구하는 멘탈리티는 결국 최상의 물건들을 세상에 내놓는다. 다만, 완벽주의는 그만큼 멘탈을 피로하게 만든다. <드래곤볼>의 계왕권, <베르세르크>의 광기, PC기기의 오버클록 같은 느낌이랄까? 어떤 이슈에 집착하고 완벽을 추구하면 아웃풋이 나오긴한다. 그런데 그만큼 에너지가 빨린다. 


한편, 어떤 목표를 추구할 때의 완벽주의목표를 지났을 때의 완벽주의는 구분되어야한다. 어떤 목표를 추구할 때 한치의 실수도 용서치 않겠다는 태도는 아웃풋을 달성할 때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목표 달성을 실패한 뒤에 "완벽하지 못하다"면서 스스로를 자학할 때의 완벽주의는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악마일 뿐이다.


비우는 즐거움과 채우는 즐거움

난을 버렸던 법정의 결정이 가장 최선의 결정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소유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법정은 그저 법정이 최선으로 생각하는 결정을 했을 뿐이다. 난을 키우면서 얻는 즐거움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고, 난을 키우는 많은 이들이 그런 유희로 난을 하나둘 집에 들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즐거움은 누가 부정한다고 부정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비우는 즐거움도 누가 부정한다고 부정되는 무엇이 아니다. 각자에게 맞는 각자의 선택이 있을 따름이다. 모두에게 최선인 답은 없으니 관건은 '나'에게 어떤 선택이 좋으냐는 거다. 



비우는 즐거움

나는 요즘 비우는 즐거움에 취해있다. 말은 그럴듯한데 남들이 보기엔 "그게 뭐냐"싶은 것들일 수 있다. 최근 포맷을 했다. PC 바탕화면에 <내 컴퓨터>, <휴지통>만을 뒀다. 항상 쓰는 프로그램들은 작업표시줄에 고정해놨고, 간혹 쓰는 프로그램들은 시작에 고정해놨다. 바탕화면은 크린하다. 크린한 화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크린해진다. 스마트폰도 상황은 비슷하다. 쓰지 않는 어플, 듣지 않은 음악들은 다 삭제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사랑이시다. 소유하지 않아도 음악을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구독하는 유튜브의 채널이 900개에 달했다. 유튜브 화면에서 '구독'을 누르면 온갖 동영상들이 떴다. 허나 생각해보면 그 중에 내가 클릭하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내 관심사에 해당하긴했지만 클릭한 일은 별로 없었다. 모든 것들을 섭렵하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노가다를 했고 지금은 구독하는 채널이 181개다. 800개 정도를 구독 취소했다. 


혹여나 내가 구독 취소하는 채널에서 내 관심사의 어떤 동영상을 업로드할 수는 있으나 그 동영상을 보지 않아도 문제될 것은 없다. 어떤 주제의 동영상에 관심이 가면 그때 검색을 해서 다양한 동영상을 봐도된다. 굳이 채널이 동영상을 업로드할 때 수동적으로 그것을 받아볼 필요는 없다. 같은 이유로 페이스북에서는 팔로우 취소를 밥 먹듯 하고 있다. 보지도 않은 페이지에 좋아요를 때려박아놔서 내게 딱히 도움도 안되는 포스트들이 무지하게 많이 뜨기 때문이다.


버리는 즐거움

미니멀리스트들이나 미니멀리즘을 다루는 서적에선 물건들을 버리는 행위를 미니멀리즘의 대표격 행동인양 설명하는데,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곤 집에 물건들을 두지 않았다.



그가 아이폰을 만든 이유도 아마 비슷할거다. 아이폰을 만들면서 그는 세가지를 통합했다고 말한다. 아이팟, 전화기, 인터넷 커뮤니케이터. 그가 아이폰을 통해 여러 기기들하나로 '통합'을 하려고했던 이유는 집에 들이는 물건을 하나라도 더 줄이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 물건들을 버리려고 하는 중이다. 보지 않는 책을 따로 한 박스에 분류해놓고 있다. 이 책들은 따로 리스트를 작성해서 판매하거나 나눔할 생각이다. 아직 나는 이 책들에 집착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이 책들을 펼쳐본 적도 없지만 10년 뒤에 갑자기 이 책들을 보고 싶어할 수도 있잖는가?(이게 버리지 못하는 인간들의 커다란 망상 중 하나다) 


버리는 행위를 떠나 언제부턴가 물건들을 잘 구매하지 않고 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물건을 사지 않는다. 같은 돈을 쓰더라도 물건을 구매하기보다는 어떤 경험을 살 수 있을 때 돈을 쓴다. 예를 들어 예전엔 물건을 샀다면 지금은 그 돈으로 음식을 사먹거나 여행을 가거나 공간(space)을 차지하지 않는 게임을 구매하거나 게임 내의 스킨을 사거나 애플 뮤직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IT서비스를 구매한다. PC에 저장해놓은 여러 분야의 논문들은 에버노트에 저장한 뒤 삭제하고 있다. 왠지 그냥 삭제할 수는 없으니 에버노트를 보험으로 삼아놓고 있다. 집착남의 마지막 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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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것은 PC의 공간이 부족해져서 시놀로지의 NAS를 장만할까 고민하고 있다는 거다. 더이상 하드에 파일을 채울 수 없다보니 하드를 뒤지면서 '무엇이 필요없는 파일인가'를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데 이는 내게 낭비다. 나스를 구매하면 그런 고민 따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거다. 가장 좋은 건 파일들에 집착하지 않는건데 그 파일들은 삭제하면 다시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다시 구할 수 없다고해도 사실 내게 문제될 것은 없긴하지만 그럼에도 삭제는 쉽지 않다. 미니멀리즘 완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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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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