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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Dec 14. 2016

<낭만닥터 김사부>: 원칙은 중요치 않다고?


1. 어정쩡해진 시골 병원 컨셉

드라마의 배경인 돌담 병원은 시골 병원이고, 환자도 얼마 없다는 식으로 드라마 내에서 컨셉 잡았는데, 어째 매번 화려한(?) 환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시골 병원이란 컨셉은 이 지점에선 더이상 무의미하다. 10화까지 온 지금 돌담 병원이라는 외딴 곳에 있는 병원은 김사부라는 의사가 '도망쳐온 공간'으로서만 의미가 있게 되었다.


게다가 장비들까지 이사장의 도움으로 최신식으로 교체가 되었다. 시골 외딴 병원에서 실력있는 의사가 구식 장비로 의술을 펼쳐보이는 무엇을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낭만닥터 김사부>에선 그런 걸 볼 수 없으리라. 


흔한 한드

그저 배경만 병원으로 바뀌었을 뿐 흔한 지상파 한드의 요소들은 다 갖추고 있다(tvN의 드라마들은 지상파의 그것과 달리 특별하다). 남녀가 연애를 하고, 의사들은 죽음의 위기에 처한 환자들을 살리고(환자가 죽을 위기에 처해야 드라마에 나오는 티켓을 얻는 건가?), "널 이 바닥에서 묻어버리겠다"라고 말하는 놈이 있고, 그에 대항하는 주인공과 그를 도와주는 큰 손이 있다. 왜 흔하다고 하는 지 알겠나?


2. 적은 배우 돌려막기, 우연 남발

한국 드라마는 시즌제가 아닌 지라 소수의 배우들이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우연'을 가장해서 배우들 간에 관계를 만드는 개연성 말아먹는 우연이 많이 동원된다. 최근에 필자가 본 <괜찮아 사랑이야>를 예로 들자면, 공효진이랑 성동일이 맡은 배역들은 선후배 사이다. 그리고 공효진은 조인성과 사귀게 된다. 어느 날 정신과 의사인 성동일이 우연히 맡게된 환자가 있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은 조인성의 형이었다. 뭐 이런 식의 말도 안되는 우연이 한국 드라마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인력이 적은 시골 병원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위에서 언급한 식의 '돌려막기식' 배우 활용은 상대적으로 적게 형성되었고, 배우들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할 때 굳이 우연을 들먹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적을 뿐이지 <김사부>에 말도안되는 우연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돌담 병원에 수술할 의사들이 없었을 때, 우연히 현장에 있는 타병원에서 온 의사가 수술을 집도하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의사가 김사부가 겁나 싫어하는 의사의 아들. 뭐 이런 식.


3. 세계관

주인공은 헬조선에 사는 흙수저 청년이다. 여기에 몇가지 컨셉이 더 추가되는데, 작가가 의도한 지는 모르겠다만, 찌질함도 추가된다. 주인공 색히는 감정 컨트롤도 안되고, 불평도 많다. 작가의 메세지는 흔한 꼰대들과 다른 듯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다르진 않다. 다른 듯한 건 "세상이 잘못되었다"라는 건 인정한다는 거고, 비슷한 건 "니가 나은 사람이 되어야 바뀐다"라고 하며 흔한 꼰대들처럼 조언한다는 것.


4. 원칙을 개차반으로 여기는 드라마와 주인공

원칙들이 있고, 그것들은 필요하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원칙을 지켜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 원칙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원칙들을 깨야할 상황들을 많이 배치해놓고, 그 원칙들을 깨야 환자를 살릴 수 있게끔 해놓았다. 작가가 아나키스트인가 싶을 지경. 


작가와 마찬가지로, 혹은 작가의 분신인 주인공도 이런 막가파식 경향을 그대로 실천한다. 멸균실도 아닌 곳에서 환자의 배를 째는 상황을 배치해놓고 '지금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식으로 메스로 환자의 배를 짼다. 말도 안되는 상황을 배치해서 드라마의 극적 요소를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만, 결과적으로 드라마가 내보이는 메세지가 '원칙을 깰 때는 깨야한다'로 집중되는 모양새가 영 불편하다. 


이런 게 불편한 이유는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원칙을 지켜서 문제가 발생하는 나라라기보다는, 정해진 룰을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는 곳이다. 세월호 내에는 필요한 만큼의 평형수가 채워져 있지 않았고, 해경들은 정해진 원칙대로 구조 작업을 하지 않았고, 해경들에게 명령을 내려야할 지휘자들도 원칙을 내버리고 소위 VIP의 지시만 기다렸다. 


최근 의료계에서 이슈가 된 건 뭐였나? 의사 면허도 없는 사람이 성형외과를 돌면서 성형 수술을 해왔다. 그 전에는 성형외과 의사가 치과 의사를 동원해서 수술을 해서 돈벌이를 하기도 했다(기사). 이 나라가 그런 나라다. 그런데 이런 아주 기초적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는 이런 나라에서 김사부같은 인물을 동원해서 '원칙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하면, 아, 이게 박근혜가 "규제 철폐에 명운을 걸겠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솔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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