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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an 21. 2017

한국 무역 회사에서 일본 무역 회사로 이직한 친구

#한국 #이직 #직장인


한국 무역 회사에 입사

이 친구는 애초에 일본 회사를 지망했다. 미쯔비시 상사를 가고 싶어했고, 그 회사가 어떤 일들을 하며 돈을 버는 지 내게 알려주곤 했었다. 허나, 친구는 미쯔비시 상사 대신 한국에 있는 큰 무역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지금 딱 떠오른 한국의 무역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가 맞다. 


호칭의 문제: "이름으로 좀처럼 불려본 적이 없다"

내 친구에게는-당연하게도-이름이 있는데, 회사에서 '짧은 기간'(보안상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있던 동안 이름으로 불렸던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이름으로 안불리면 뭐로 불리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을 해왔다. "야, 신입, 씨발새끼야". 난 나이브하게도 재차 물었다. "엥? 욕을 해?" 지금 생각해도 멍청한 질문이다.


회사에 일을 가르쳐주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보니 일은 주로 "사수"가 가르쳐주는데, 주로 아래와 같은 절차로 이루어진다.

1. 신입에게 자리가 부여된다.
2. 신입이 자리에 앉는다.
3. 선임이 신입에게 "이거 해"하면서 일을 던져준다.
4. 선임은 당연하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자기 할 일을 한다.
5.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은 뭘 해야되는 지 모르는 체 몇시간 째 "주어진 일"을 멍때리며 쳐다본다.
6.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선임은 신입이 잘 하고 있는 지 파악하러 온다.
7.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진행되어 있지 않다.
8. "야", "신입", "씨발새끼야"

혹자는 이 시점에서 물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물어보기 전에 말하는 게 정상적인 작업의 프로세스다. 신입이 갓 회사에 들어왔을 때 가질 수 밖에 없는 압박감을 모르는 건가 모르는 척 하는건가? 하다 못해 간단한 알바를 할 때도 업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지는 지도해주는 법이다.


애초에 프로세스를 진행시키지 않은, 그리고 지 할일이 겁나 바빠보이는 선임에게 "뭘 어떻게 하면 되는건가요?"라고 물어보는 건 갓 회사에 들어온 햇병아리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다. 또한, 그렇게 물어봐도 아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하냐"며 자동반사처럼 핀잔이 돌아올 거라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되는 맥락 아닌가. 


친구는 회사를 다닐 시기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일요일 오후부터는 다음 날 회사에 나갈 생각 때문에 집 밖을 나가지도 못했고, 집에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기 일수였다고 한다. 듣자하니 친구와 가깝게 지냈던 지인들은 그 당시의 그를 보며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월요일이 되어 회사에서 생활을 할 당시엔 그 압박감에서 잠시 피하려 화장실로 도피하곤 했다 한다. 


이렇듯 자존감을 갉아먹는 회사에서 온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회사의 문화가 '당연하다'면서 함께 쓰레기가 되거나(1, 이를 인지부조화라고 한다), 그 문화에 동조하지 않으며 괴로워하거나(2), 탈락되거나(3), 자발적으로 나가거나(4). 친구는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일본 회사, 호칭의 문제

회사를 나온 뒤 그는 일본계 무역상사에 입사했고 현재까지 다니고 있다. 그가 전에 다녔던 회사와 비교해 여러 다른 문제들이 있다. 가령, 다니던 무역회사는 팀간의 경쟁이 치열해서 정보가 공유가 되지 않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는 대부분의 정보들이 경계 없이 공유된다고 한다. 심지어 관련 분야와 무관한 팀이라도 해당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한국의 무역회사를 다룬 <미생>에서 이러한 문화가 나온다. A팀이 기껏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아이템을 선정했는데, 알고보니 그 아이템을 B팀이 하고 있다던가 하는. 이는 비단 A팀의 손해가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손해다. 정보가 공개됐었다면 A팀은 헛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 시간을 다른 아이템에 쓰며 회사에 이바지 할 수 있었을 거다. 조선의 회사는 경쟁에 대한 근거없는 신화를 좀 버릴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는 사족이었다. 이 이슈에 대해선 다른 글을 통해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이러저러한 차이들이 있지만, 그건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이 글에선 호칭하는 문제에 집중하겠다. 친구는 한국 회사에서는 이름으로 불렸던 적이 없고, 그 대신 누구에게나 쓰일 수 있는(?) "야", "신입", "씨발새끼야", "병신아" 등으로 불렸다. 그는 개인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개인(person)은 커녕 아예 제대로된 인간(human) 취급을 받지 못했다. 


한국에 있긴 하지만, 일본 회사이기에 일본인들도 많이 있는데, 일본인들은 그를 선임이건 아니건 성이나 이름 뒤에 "상"자를 붙여서 부른다. 예를 들어 내 이름은 "박현우"니까 내가 그 회사에 들어간다면 그쪽 선임들은 나를 "박상"이나 "현우상"이라 부를 것이다. 한국인들은 "씨"나 "찡"을 붙여서 부른다고 한다. "현우씨", "현우찡". "찡"을 붙인다는 것에서부터 앞서 언급한 회사와 얼마나 분위기가 다른지는 감이 오실거라. "박현우씨", "현우야"같은 호칭들도 쓴다고. 


 "상"은 일본에서 후배나 선배 모두에게 쓰는 말이다. 여기에서 사원들이 사원들을 호칭할 때 두드러지는 특징이 나온다. 하나는 신입이건 아니건 사원들에게 이름을 불러준다는 거고(1), 호칭 자체만으로는 서로 간의 위계를 알 수 없다는 거다(2). 반대로 앞서 소개한 한국 회사에서 누군가를 호칭할 때는 이름이 당연하다는 듯 소거되어있었고 호칭 자체로 위아래를 알 수 있었다. "씨발새끼야"는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아마도-주로 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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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는 일요일이 되어도 더이상 회사에 대한 압박감으로 토를 하지 않는다.

2. 사장을 부를 때도 "상"만 붙인다고 한다. 사장의 이름이 "아베 신조"면 "아베상"이라 부르는 식으로. "아베상"도 사원을 부를 때는 "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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