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라는 말은 어느 새 고유명사처럼 되어 버렸다. 어느정도냐면,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자니?"라고 밖에 안썼는데 많은 이들은 내가 어떤 글을 쓰려는 건지 벌써부터 감을 잡았을 것이다. 난 두 글자밖에 안썼는데도!
"자니?"는 남자가 헤어진 뒤에 전 여친(들)에게 보내는 문자다. 보통 새벽 2시 이후에 보낸다고 알려져있으며, 술에 취한 상태일 때 이런 문자를 보낸다고들 한다. 문자면 차라리 다행(?)인데 전화를 하는 놈들까지 있다고 한다. <72초 TV>가 시즌1에서 다루기도했었다. 그 짧은 드라마의 주인공은 전여친에게 "자니?"라는 문자를 보내놓고 오만가지 상상을 한다. 하지만 스스로도 왜 그 문자를 보냈는 지 이해하지 못한다.
찌질한 방식이긴하지만 술의 힘을 빌어 "자니?"를 보내는 그 의도에는 분명 재회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 있을 거란 게 내 생각이다. 오랜만에 문자를 주고받으면 예전처럼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는 게 아닐까? 하지만 정말 재회를 원한다면, 새벽에 보낼 게 아니라 낮에 보내는 게 좋다. 새벽에 문자를 보내면, 정말 마음이 있어서 문자를 보낸다는 느낌보다는 밤에 취해서 문자를 보낸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떄문이다. 그녀가 올빼미건 아니건, 사귈 때 새벽에 주로 놀았건 말건 그런 건 상관없다. 아무리 옛 연인이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게 좋다. 헤어진 이상 남이니까.
여성분들은 전 남친놈이 새벽에 이런 문자를 보내오면 무시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 그놈이 정말 진심이라면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로, 밤에 취하지 않은 상태로 다시 연락을 할 것이다. 새벽에 문자를 보내서 환심을 사려는 남자놈은 그저 당신의 마음을 확인하려는 것이지 당신에게 어떤 고백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문용어로 간보기. 이런 식으로 간을 보는 남자와는 오래가기 힘드니 새벽 문자로 하루종일 고민하는 일은 없어야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자는 게 피부미용에 좋다.
서로의 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전 연인이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몸을 섞은 존재일테니까. 그리고 육체적으로가 아니더라도 가장 어떤 의미에선 편한(?) 사람이기도 하다.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언제든지 섹스 아우라를 풍길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소설 원작의 영화를 보면 남자가 헤어진 전여친인 손예진에게 연락을 한다. 그런데 그 때 손예진의 대답이 꽤나 인상적이다. "왜 연락했어? 보통은 섹스가 하고싶어서 연락하는데 오빠는 아닌 거 같네."(정확한 대사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캐치해야될 대사는 "보통은"이다. 그러니까 영화 속 손예진은 전 남친들에게 "자니?"를 받았을 때 대체로 전 남친들에게 그런 섹스하자 뉘앙스를 받았다는 거지.
이건 영화 속 이야기긴 하지만, 연애상담 글이 많이 올라오는 연애 커뮤니티(?)인 감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감친연)의 글들을 훑어보면 전 연인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섹스 파트너가 되는 경우는 흔히 발생한다. 서로의 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섹스의 만족도가 높으며, 섹스의 만족도와 무관하게 한쪽이 여전히 상대에게 마음이 있는 경우 "섹파"라는 명목을 빌어 계속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 섹파의 시작은 "자니?"라는 문자 하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섹파의 끝은 결코 좋지 않다. 한 떄 사랑을 주고받던 사이였다면 더더욱 섹파의 끝은 낭떠러지일 가능성이 높다. 몸을 섞으면 마음도 섞이게 되어 있다. 차라리 다시 만나는 거면 모를까 섹파는 아니올시다. 한편, "자니?"로 시작해놓고 대놓고 섹파를 요구하는 남자놈도 그냥 버리시면 된다. 섹파가 정말 필요하다면 전남친보다는 클럽 남자가 좋다. 거기에는 감정이입을 상대적으로 덜 하게 되거든. 다만, 콘돔은 하시고 술에는 취해서 하진 마시라. 요즘 원나잇하면 몰래 동영상 촬영하거나 여자가 잠들었을 때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쓰레기들이 범람하니까.
여전히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건 재회와는 조금 다른 문제다. 재회할 생각은 없이 여전히 마음이 있다는 것만 전달하는 케이스다. '현재 여자친구는 있지만 여전히 니 생각은 하고 있다' 라는 의미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건 없다. 여전히 마음 속에 당신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있을 따름이니까. 그 남자의 여자친구가 들으면 겁나 빡칠 일이긴 하겠지만, 이런 문자를 받는다고 불쾌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이런 문자가 왔다고하더라도, 굳이 일일이 보고할 필요는 없다. 남친은 겁나 흥분하거나 흥분을 안한다면 당신을 의심에 눈길로 쳐다볼테니까 다크 리틀 시크릿으로 간직하며 "역시 내 매력에 헤어나오질 못하는군"이라며 자위하는 게 멘탈상 이롭다.
이런 사례 역시 결코 적지 않다. 심지어 결혼을 한 유부남이 첫사랑에게 이런 식의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난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너를 잊지 않고 있다"라는 식의 문자. 딱히 뭘 원해서 던지는 문자는 아니고, 딱히 온 몸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어서 던지는 문자도 아니다. 그냥 줴치는 문자다. 해석하자면 이렇다. '나는 여전히 니 생각이 나고 너가 좋고, 너를 상상하며 와이프랑 섹스를 하지만, 딱히 다시 너를 만날 생각은 없는데, 이런 내 마음을 너가 알았으면 좋겠네. 하지만 너가 날 원한다고 해도 나는 너를 만날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이런 식의 "자니?"를 받아도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된다. 보내는 사람도 딱히 엄청 신경써서 보내는 게 아니니까. 확실한 건 당신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도 하지 않는 소심한 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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