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메인 토픽은 "나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어"라고 믿는 사람이다. 한편으론, "너는 날 사랑하면 내 모든 걸 이해해줘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글의 메인 토픽이 아니다. 전자는 자신의 의지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타인에게 어떤 사랑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 둘 사이에 교집합은 있을 수 있겠지만, 반드시 겹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A가 현재 사귀고 있는 B의 행동들에 대해선 이해 못하고 구박하면서 반대로 B가 잔소리를 할 때는 "날 사랑안해?"라고 줴칠 수도 있는 게다. 잔소리도 내가 하면 사랑인거고 상대가 하면 사랑이 아닌 상황이랄까. 이 케이스는 교집합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 글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자를 다룬다.
0. 외로움은 항상 문제다
이별 후에, 우리는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당신이 차였건, 찼건 그런 사소한 디테일은 무관하다. 한 때 함께 했던 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이별 후에 살을 찢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별 직후에나 그 이후에 외로움이라는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외로움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감정 컨트롤을 어렵게 한다. 그리고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게 만든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외로움은 사람에게 굉장히 해롭다. 최근 TED 영상에 따르면 사람에게 인적교류가 없을 때 무언가에 중독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즉, 헤로인에 중독되는 것은 그 사람이 헤로인의 화학적 요소 때문에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사람 간의 교류가 없는 것이 중독의 원인이라는 것. 한 예로, 당신이 큰 수술을 할 때는 마취제와 함께 불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마약보다 질 좋은 성분의 마약을 투여받는데, 퇴원을 해도 그 약이 없다고 약쟁이가 되진 않는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포르노에 중독됐다고? 그건 포르노가 중독적이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인적교류를 하고 있지 않아서다.
여튼, 외로움이 사람에게 해롭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그것만 이해하면 된다. 외로움은 우리의 삶에 완전 겁나게 해롭다. 그러니 외로움은 질병으로 생각하고 하루빨리 퇴치(?)해야한다. 고독의 의미? 물론 고독도 좋은 점도 있긴 하지만 이 글에선 그런 거 취급 안할 생각이다.
1.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
외로움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해로운지 모른다고 해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외로움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빈곤하게 만드는 지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여러 시도를 한다. 길거리나 카페에서 번호를 따거나 따이고, 또는 여러 인맥을 동원하여 소개팅을 한다. 당신이 매력이 넘치면 가만히 앉아있어도 소개팅은 들어올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발품을 좀 팔아야될 것이다. 인생사가 원래 그렇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또한, 외로움으로 마인드가 '온전한' 생각을 못하는 이들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주문에 홀린다. 외로운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성으로 안보던 이들까지 이성의 바운더리 집어 넣는다. 예를 들어 단 한번도 이성으로 생각했던 적이 없는 "아는 친한 여동생"을 "사귈 수도 있는 여성"으로 재분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에는 "별로"였던 사람까지 "괜찮은" 사람으로 재분류하기도 한다. 가령,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은 무조건 연애 대상에서 제외했던 사람이 "그 정도는 이제 괜찮아!"라고 하며 연애 대상을 넓히는 것. 왜? 외로우니까 누구라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2. 나와 정말 맞지 않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만용
최근에 기고받은 K의 연애칼럼에서는 연애의 기준을 다뤘다. K는 무조건 무교인 사람과 연애를 한다고 했다. K에게 있어서 종교는 그런 의미다. 포기할 수 없는 어떤 조건 중에 하나가 종교인 것이다. 이런 기준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떤 이는 종교는 상관없지만 키나 몸무게를 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연봉을 볼 수도 있다.
용기가 과하면 그것을 만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외로움에 압도당한 어떤 이들은 자신의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을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객기를 부린다. 외로움이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K가 외로움에 압도당한다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를 만나도 괜찮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해서 연애가 시작되면 오래갈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썸 자체도 오래갈 수 없다. 포기할 수 없는 기준은 포기할 수 없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잠깐의 외로움으로 기준이 완화된다고 해도, 외로움이 다시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는 순간, 혹은 사랑(?)으로 간신히 감당하고 있던 상대의 결점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으로 바뀔 것이다. 그럼 또 이별의 아픔을 감당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