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어야한다는 강박
광고 천재 이제석이라는 광고 제작자는 스스로의 이름 앞에 광고 천재라는 타이틀이 붙게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닉값은 충분히 한 것 같다. 비아냥이 아니다. 개인 브랜딩을 이렇게 한 것도 하나의 성공적인 포트폴리오로 봐야하니까.
실제로 그의 작품들 중에는 인상적인 것들이 많다. 파격적이고, 생각지도 못한 발상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번 안철수 포스터도 이제석의 작품답게 파격적이다. 대부분 포스터들이 후보의 얼굴부터 가슴까지의 모습만 보여주고 후보의 이름을 포스터 하단에 두는 것과 달리 안철수의 포스터에선 후보의 양팔이 보이고,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보여준다.
게다가 안철수라는 개인을 부각하려는 것인지 당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고, 이름 "안철수" 중 "수"의 일부와 후보의 손 일부가 잘려나갔다. 이름이나 후보자의 손은 당연히 포스터에 '안전'하게 담겨있어야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안철수가 얼마나 혁신적인 후보인지 포스터에서부터 알려주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게 아닌가 마 그렇게 생각을 해본다. (의도가 어쨋건 포스터를 보면 답답해서 숨이 막히긴 한다. 글씨조차 숨을 못쉬고 있다)
예전에도 이런 파격을 보여줬던 포스터가 있었다. 정몽준과 박원순이 서울시장을 두고 선거를 할 때 정몽준의 포스터는 전형적이었지만, 박원순의 그것은 전위적이었다. 상체만 보여준다는 점에선 흔하지만,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등짝을 보여줬고, 칼라도 별로 없는 사실상 흑백 사진에 가까운 사진을 썼다. 게다가 "박원순"과 기호 "2"는 구석에 숨어있어서 처음 포스터를 접하면 찾기 어렵다.
박원순은 저런 전위적인 포스터로도 선거에서 이겼다. 포스터가 전위적이어서는 물론 아닐 것이고, 박원순이 해놓은 게 있고, 정몽준이 워낙 오바를 해서 그렇다는 게 필자의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서울시장 선거 당시에 박원순은 딱히 선거에서 질 것 같지 않은 지지를 받고 있었고,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포스터에서 '파격'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캠프의 오만이랄까 과신을 지지자들도 느껴졌는지 "니들 그러다가 진다"라는 불만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안철수의 포스터가 주는 느낌은 다르다. 그의 지지율이-박원순 후보가 정몽준과 겨룰 때와 달리-이렇다하게 나오지 않아서 안철수 캠프의 의도를 오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만'이 느껴지기보다는 '다급함'이 느껴진다. 당의 이름을 포스터에 기재하지 않은 것도, 폰트의 이름이 잘린 것도, 폰트의 양옆에 숨쉴 틈을 주지 않은 것도 파격으로 느껴지기보다는 뭐라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다급함으로 느껴진다. 달라야한다는 집착과 압박감이 느껴진달까?
포스터가 가지는 힘이 있기야하겠지만, 포스터 때문에 지고 포스터 때문에 이기겠나. 더 강력한 변수들은 널려있을 거다. 안철수의 포스터가 관심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선거를 승리나 패배로 이끌어갈거란 기대나 불안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말그대로 특이해서일 것이다. 딱봐도 눈에 띄잖나.
포스터 때문에 승패가 갈릴 거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해당 포스터는 안철수 캠프의 현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로서 기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튀어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고, 당명을 숨기며 호남 기반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숨기면서까지 좌우의 유권자들을 포섭하려하고, 두 양팔로 V를 그리고 숫자3을 보여주면서 무료 배포했었던 V3를 기억해달라는 메세지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다. 상당히 불안하고 여유가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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