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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Apr 20. 2017

엄마들은 왜 스타벅스에 오는가?



한 때 기프티콘으로 아메리카노가 자주 왔었는데, 열의 여덟 정도는 스타벅스의 것이었다. 기프티콘을 쓰다보니 스타벅스는 내게 익숙한 공간이 되었고, 지금은 스타벅스 카드에 잔액이 모자랄 때마다 3만원씩 충전하는 충성 고객이 되었다.


한번 자리 잡으면 몇시간이고 테이블을 지키는 나같은 소비자를 스타벅스가 얼마나 좋아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싫어할 거란 생각이 먼저 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딱 나같은 소비자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카페들이 구매한 금액으로 마일리지 등을 쌓아주는 것과 달리 스타벅스는 방문한 횟수로 별을 쌓아준다.



스타벅스는 소비자들이 돈을 많이 쓰게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지만, 그보다는 더 자주 방문해서 스타벅스를 삶의 한 요소로 삼아주기를 더 원하는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스타벅스가 딱 원하는 소비자일지도 모르겠다. 스타벅스를 삶의 일부로 삼고 있으면서 자주 가고 있으니까. 커피만 사고 테이블을 더 짧게 차지하면 더 좋아하겠지만.


근처에 가격이 더 싼 카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를 오는 이유는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몇시간씩 자리를 잡고 있어도 딱히 죄짓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저 스타벅스의 직원들은 내가 주문을 적게하면 적게할 수록 좋아할 것이다. 월급은 정해져있고 일을 더 한다고 돈이 더 들어오는 것도 아닐테니까.


그런데 근처의 지역 카페에서 자리를 한번 잡으면 스타벅스에서처럼 똥배짱(?)을 부릴 수가 없다. 심지어 그 카페에 텅 빈 테이블이 많다고해도 왠지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으면 뭔지 모를 불편함이 생긴다. 그래서 음료를 하나 더 시키거나 간식 같은 것을 하나 더 시켜먹기도 한다. 그리고 그쯤되면 차라리 스타벅스가 싸게 먹힌다.


엄마들은 왜 스타벅스에 오나?

나같이 혼자와서 말도 없이 그저 키보드만 두드리는 글쟁이도 작고 소소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면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는데, 아기나 애들 딸린 엄마들은 오죽할까? 아기들은 필연적으로 시끄럽게 울기 때문에 애기들과 함께 카페를 방문하는 엄마들은 작은 카페에 가기에 애로사항이 있다. 일단 카페가 작다보니 아기와 바로 근접해있는 또다른 소비자들에게 미안하고, 주인장에게도 미안하고.


엄마들이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는 스타벅스 외에 딱히 옵션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애기가 울어도 그 영향(?)이 최소화되는 곳이 스타벅스 같은 대형 카페이고, 유모차같은 커다란 물건을 끌고 들어와도 별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 곳이 또 스타벅스 같은 대형 카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스타벅스들은 1층에 자리하는데, 이 역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들에게는 유인동기가 된다.


유모차를 끌고, 혹은 걸어다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스타벅스에 오는 것은 결코 난이도가 낮은 작업이 아니다. 스타벅스에 오기까지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될 것이다. 씻고, 화장을 하고, 아기를 위한 기저귀나 젖병, 인형 등을 챙기고,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그 유모차를 이끌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꾸역꾸역 이동해야한다. 그 여정을 마쳐야 결국 스타벅스에 다다르게 된다.


그 길고 불편한 여정을 굳이 감수하면서까지 스타벅스에 오는 이유는 아마 스타벅스에서의 휴식이 그에겐 더 없이 필요한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아기가 시끄럽게 울어도, 꼬맹이들이 뛰어다니면서 깽판을 쳐도 딱히 엄마들에게 뭐라고 하지 못하겠다. 안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못하겠다.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공간에선 다들 남을 배려야하는 것 아니냐고, 엄마들은 애를 단속해야되는 거 아니냐는 말은 꽤나 그럴듯하다. 그런데 반대로, 다수가 그 엄마들을 배려할 수도 있는 문제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지 못하면 소수에 해당하는 자의 권리를 누르는 식으로 힘을 행사한다. 일본이 좀 더 극단적인데, 그 동네에선 창문에 커튼을 치지 않아도 욕을 먹는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는 커튼을 쳐야한다는 게 이유다.


밀라노의 한 식당에 방문했을 때, 한 개가 짖었다. 개의 울음 소리보다도 그 개가 그 곳에 존재한다는 것에 깜짝 놀라서 웨이터에게 물었다. "이탈리아에선 식당에 개를 데려와도 되나요?" 당연하다는 듯이 "네"라고 답을 해왔다. 유럽에서 개는 가족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절한 예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 동네에도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거다. 하지만 애견인들의 개를 데려올 권리는 더욱 존중된다. 설사 식당 내에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해도 개들은 주인 곁을 떠나서 행패를 부리고 다니지 않는다. 어차피 목줄도 했으니 문제 생길 일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은 '모두'를 위해야한다. '다수'를 위한 공간이 될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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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원래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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