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출산율 #고스펙
약 2년전인 2015년에 필자는 <인구토론대회>라는 토론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인구토론대회는 보건복지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콜라보해서 진행하는 토론대회다. 해당 대회에서 주로 다루는 토픽은 당연하게도 인구에 관한 것이었는데, 참가한 대학생들은 주어진 논제에 맞춰서 출산율과 관련한 정책에 대해 공부를 하고 대회에 참여했다. 예선을 통과하기 위해선 "입장문"이란 걸 작성해서 제출을 했어야했는데, 그 때 필자가 속한 팀이 주최측에 제출한 "입장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만혼완화만으로 초저출산 극복 불가능하다.
저출산의 심각성을 절감한 정부는 2006년 "저출산 고령사회 위원회"를 열어 저출산 극복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저출산 부양 정책은 기혼자들의 출산장벽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예비부부들의 결혼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세임대주택이나 신혼부부용 주택을 지원하거나, 주택자금지원 제도 등을 만들고 있다.
최근 관계부처합동으로 내놓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수립방향"을 살펴보면 가족형태의 다양화를 인지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적극적인 시행책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당국은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을 만혼화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정책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만혼화는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초혼연령은 남성이 32.4세 여성 29.8세다. 스웨덴의 평균 초혼연령은 남성 35.6세, 여성 33.1세로 우리나라보다 높지만 합계출산율이 1.9명에 달한다. 프랑스 역시 우리나라와 초혼연령이 비슷하지만 합계출산율 2.08명으로 우리나라 1.23명 보다 높은 수치를 보인다. 만혼화와 출산율은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
("입장문"은 다른 논의도 담고 있으므로 전문을 이 포스트에 올리지는 않겠다) 2015년에 우리 팀은 "만혼 완화만으로는 초저출산 극복 불가능하다"라는 주장을 꽤나 크게 할애해서 썼다("입장문"의 글자수는 제한되어있다).
논문들을 많이 보다보면 학계의 유행처럼 번지는 주장을 찾아낼 수도 있다. 학자들은 워낙 신중하고 그래서인지 보수적이다. 기존에 타당하다고 평가받는 주장에 살을 얹는 논문들이 대부분이며, 참신하다고 해봐야 기존 주장을 비판하는 논문들인데, 그런 논문들은 소수다.
출산율과 관련한 각종 아티클들을 접하다가 유독 한국의 학자 및 연구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어떤 입장들이 포착했다. 많은 한국 학자들은 출산율이 미진한 이유를 "만혼"으로 봤다. 한국 사람들이 아이를 적게 낳는 이유를 "결혼을 늦게 해서"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입장을 가진 이들은 출산율 부흥을 위해서 "결혼을 일찍하게끔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만혼이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라면 그 변수를 제거하는 것이 그들의 입장에서 합리적이다.
만혼은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 아니다.
그런데 만혼-늦게 결혼하는 것은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 아니다. 만혼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얼마나 출산-아이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증상일 뿐이다. 그리고 이 주장에는 생략되어있는 굉장히 큰 착오 혹은 전제가 있다. 출산을 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결혼한 사람들 뿐이라는 것이라 본 것이 그것이다. 논외이긴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동거 커플들에 대해서도 출산율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이를 PACS 팍스 제도라고 한다. 만혼을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봤다면 프랑스는 팍스 제도를 상상도 못했을 거다. 지금의 한국처럼. (이에 대해선 나중에 풀던가 하겠다)
만혼이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은 2015년, 아니, 그전부터 계속해서 존재했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체 지금까지 생존, 아니 연명해왔다. 여성가족부를 포함한 국가부속행정처는 물론이고, 소위 자타칭 연구자, 학자들의 글에서도 비슷한 주장들을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만혼이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라는 멍청한 주장의 2017년 버전을 확인하게 된다. 보건사회연구원 인구영향평가센터장 원종욱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그는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고학력이면서 고소득계층 여성이 선택결혼에 실패하고 있다. (중략) 초혼연령을 낮추려면 인적자본 투자기간을 줄이거나 남녀가 배우자를 찾는 기간을 줄여야 한다.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소득과 학력 수준이 낮은 남성과도 결혼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유배우율을 상승시킬 수 있다"
위의 주장 중에 독자분들이 가장 주의깊게 봐야하는 부분은 "초혼연령을 낮추려면"이다. 초혼은 처음하는 결혼을 말하는 것이고, 초혼 연령은 처음 결혼하는 연령을 말한다. 원종욱은 "초혼연령"을 낮춰야 출산율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만혼"을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본 주장들의 2017년 버전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만혼이 저출산의 원인이다!"
2017년 버전의 특징
2017년 버전의 가장 큰 특이점은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만혼"에만 두지 않고 더 나아가 여성의 탓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만혼화 관련 아티클들은 여성의 급격한 사회 진출이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라고 말하긴했지만 여기에는 여성을 탓하는 어떠한 뉘앙스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원인이고, 출산율 저하는 그로인한 결과로 보는 건조한 입장이었다면 2017년 원종욱 버전의 "만혼"은 여성이 결혼시에 너무 따지는 것이 낮은 출산율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적자본 투자기간을 줄이거나"라는 말은 스펙을 위해 휴학하거나 졸업유예하는 것을 자제하라는 말이다. 원종욱은 이어서 기왕 스펙을 쌓았더라도 "고학력 고소등 여성이 소득과 학력 수준이 낮은 남성과도 결혼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유배우율을 상승시킬 수 있다."라고 하며 스펙 많은 여성이 스펙 낮은 여성과 만날 수 있게 만들어야한다고 했다.
이 부분은 두가지로 이유로 역겨움을 자아낸다. 하나는 고학력 여성이 저학력 남성을 만나게끔 해야한다는 발상이다. 고학력 여성이 저학력 남성을 위해 희생하게 만들어야한다는 저 발상은 여성을 2등 시민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 하나는 "결혼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이라는 부분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한다는 저 발상은 꽤나 거만하고 우습고, "연구"위원의 주장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터무니 없이 어설프다. 이쯤되면 원종욱의 국가관이 궁금하다.
저출산의 진짜 원인?
만혼이 저출산의 원인이 아니라면 무엇이 진짜 저출산의 원인인가? 앞서 필자는 만혼이 저출산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혼하기 힘든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해주는 하나의 증상이라고 말했다. 만혼이 하나의 증상이라면 어떤 원인으로 그런 증상이 생기는 걸까? 여기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있다. 여성의 급격한 사회진출, 결혼 및 출산을 하면 여성의 커리어가 끊기는 문제(일과 가정의 양립이 불가능한 현실), 심각할 정도로 낮은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결혼을 하면 여성이 "슈퍼우먼"이 되어야하는 현실), 형편없는 출산율 부양정책, 남녀 불문하고 돈이 없는 청년층의 지갑 사정 문제 등등.
프랑스 같은 경우에도 여성의 급격한 사회 진출로 인해 출산율이 급감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겪었던 사회들은 모두 이와같은 과정을 겪었다. 한국도 동일한 과정에 들어와있을 뿐이다. 다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사회는 여성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결혼이나 출산을 해도 커리어가 끊기지 않게끔 시스템을 구축했고, 여성은 결혼이나 출산을 할 때 자신의 커리어를 던져버릴 필요가 없어졌다. 그 덕에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해 떨어졌던 출산율은 회복되었다.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이렇게 회복된 출산율이 급감하기 직전의 출산율보다 높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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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혼 타령 좀 그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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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출산율 관련해서 이전에도 많은 글을 썼었습니다. 해당 글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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