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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May 01. 2017

결선투표제를 위해서라도 심과 유는 끝까지 남아야 한다.

결선투표제

결선투표제 하에선 여러 후보가 있더라도 1차 투표를 거친 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는 후보가 없다면 상위 몇 명의 후보만 남겨두고 2차 투표를 하게 된다. 결선투표제는 기본적으로 사표를 방지하고자 하는 투표 제도다. 어떻게 제도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디테일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한 유권자가 투표했던 후보가 결선까지 올라가지 못한다면 그 유권자는 뽑힐 가능성이 있는 후보자에게 한번 더 투표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결선제가 아닌 상태에서 유권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뽑고 싶은 후보'에게 표를 줄 수 있다. 유권자가 굳이 전략적 투표(tactical voting)을 할 필요가 없게끔 해주고, 설사 그 필요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해도 상당히 그 필요를 완화해주는 제도가 결선투표제다.


2017 장미대선과 결선투표제

이번 한국 2017년 장미 대선에는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지 않았지만 결선투표제를 지지하는 후보는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유승민이다. 심상정이 토론 중에 안철수에게 결선투표제에 대해 의견을 물었고, 안철수는 당연하다는 듯 결선투표제를 지지한다고 답변을 해서 두 후보의 결선투표제에 대한 입장은 확실히 정해졌다. 


게다가 유승민 역시 과거에 결선투표제에 대해 "도입에는 원론적으로 찬성한다"고 했다. 이번 선거에는 결선투표를 도입할 수 없겠지만, 이 중에서 누군가가 당선이 된다면 결선투표제가 도입될지도 모르겠다. 대통령 혼자서 힘쓴다고 제도가 도입되는 시대는 지났으니(아닌가?) 단언은 할 수 없겠지만.


결선투표제는 지금의 장미 대선판을 보면 유권자 입장에서 상당히 좋은 제도다. 이번 대선엔 역대 가장 많은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15명이 대선에 출마했으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5월 1일)엔 13명의 후보만 남았다. 김정선(4월 21일)과  남재준(4월 29일)이 사퇴를 했으나 여전히 13명은 적지 않은 숫자다.




네이버에서 긁어온 5월 1일자 여론조사다. 어느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문재인이 1위고 그 다음으로 안철수, 홍준표, 심상정, 유승민이 이어가고 있다. 


심상정, 유승민과 결선투표제

심상정의 지지율이 오를 수록 진보쪽, 아니 더 정확하게는 문재인 지지자들의 심상정을 향한 공격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모양새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들이 다수 상주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각종 커뮤니티-뽐뿌, 클리앙, 오늘의 유머에서 그런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심상정을 향한 공격이 전에는 없었는데 갑자기 등장·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비슷하게 홍준표를 지지하는 일간베스트(aka 일베)에서도 유승민을 향한 공격이 시작되고 있다. 홍준표에게 갈 수도 있는 표가 유승민에게 가고 있다고 생각해서 공격하는 느낌이다. 바른정당 내부에서도 잡음이 들리고 있는 판국인데 유승민에게 충성심이 1도 없는 일베들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필자는 심상정의 지지율이 10%도 나오지 않는 것이 그의 인품이나 정책이나 당이나 어떤 프레임 때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저 사람에게 어차피 표를 던져봐야 내 표가 사표가 될 거라는 생각이 있기에 굳이 지지를 하지 않는 것이라 본다. 유승민의 지지율도 비슷하다. 돼지발정제 후보보다야 유승민이 낫다는 건 분명해보이지만 어차피 유승민은 '될 후보'가 아니라는 점에서 유권자들에게 베팅할만한 옵션이 될 수 없다. 결선투표제 하에서는 상황이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결선투표제가 없는 판에선 많은 유권자들이 전략적 투표를 하기에 큰 당에 소속된 후보들에게, 그리고 인지도가 있는 후보들에게 일반적으로 유리하다. '될만한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 때문에 '되지 않을 법한 후보'에게는 애초에 당선 기회가 돌아가기 힘들다.


이번 대선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상황이 어떻게 되던간에 심상정과 유승민은 마지막까지 남아야한다고 본다. 결선투표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후보들의 사퇴 및 양보다. 유권자들은 당연하다는듯이 후보들에게 "사퇴하라"고 강요하고, 정치적 압박에 이기지 못한 후보들은 결국 사퇴를 한다. 자신 때문에 대선에서 졌다는 정치적 책임을 떠맡기 싫어서다.


후보들의 당연한 사퇴가 지금까지 관성처럼 이어져왔기에 결선투표제는 사실상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관행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선 심상정이나 유승민이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버텨야한다.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후보라도 양보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한다면 두 거대 정당-민주당, 자유한국당-도 결선투표제 도입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결선투표제 하에선 거대 정당의 후보들이 유리한데 뭣하러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나?" 리스크 관리 때문이다. 진보 지지자들이 지지하는 두번째 후보가 크면 클수록 첫번째 후보는 위태로워진다. 마찬가지로 보수 지지자들이 지지하는 두번째 후보가 크면 클수록 첫번째 후보는 위태로워진다. 이런 리스크를 때문에 사퇴와 양보를 사실상 강요하는 것인데, 양보 자체가 정치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선투표제만이 리스크를 관리할 유일한 옵션이 된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한다면 심상정이나 유승민 같은 후보들은 애초에 "사퇴하라"는 말을 듣게되지도 않을 것이다.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심상정, 유승민이 표를 갈라먹으면, 2차 투표가 시행되므로 굳이 1차 투표 때 누군가에게 "사퇴하라"고 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2차 투표 때 3명의 후보가 남게끔 제도는 설계한다면 "사퇴하라"는 말이 나올 수는 있으나, 그럼에도 1차 투표 때 유권자들이 진심으로 뽑고싶어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입될 당위는 충분하다고 본다.


가령, 1차 투표 때 3명만이 솎아지게 제도를 설계했다고 해보자. 문재인 30% 안철수 20% 홍준표 25% 심상정 15% 유승민 10%로 득표 결과가 나왔을 때, 심상정과 유승민은 자동으로 걸러지고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를 두고 투표가 시작된다. 양보를 안했지만 결과적으로 양보를 한 것과 비슷한 결과를 보이게 된다. 2명만 솎아지게 한다면 문재인과 홍준표 둘이 붙게될 것이다. 


위와 같은 득표율에선 심상정과 유승민 입장에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해도 승산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보다 더 많은 득표를 할 수 있게 될 개연성이 높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선거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선거의 높아진 불확실성은 투표율을 높인다. 선거가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른다는 점에서 소수정당들이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소수 정당들의 양보를 기대할 수 없다면 거대정당들 역시 결선투표제를 위기관리 차원에서 택할 만한 당위는 충분하다.




심상정, 유승민 후보는 모두 끝까지 간다고 했기에 이 글은 현실상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긴하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5월 9일 선거날이 가까워질 수록 두 후보에 대한 공격에 날이 설거라 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끝까지 버티길 바란다. 결선투표제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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