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였음은 물론.
몇 년 전 어느 날 저녁, 토론대회가 모두 끝나고 시상을 할 시간이 왔다. 상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창조경제부의 높으신 분이 왔다. 보통 높으신 분들은 혼자 다니지 않는데, 그건 상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높으신 분들이 시상하는 것처럼, 높으신 분들의 권위를 살려주기 위해 수행원들이 붙기 때문이다.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이 수행원은 아니다. 특정 조직에 높으신 분이 나타나면 마중을 나오는 자들이 수행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높으신 분들은 평소에 가지 않는 행사에 방문하게 되면 항상 함께하는 수행원에 더해서 새로운 수행원까지 함께하게 된다. 그래서 최소 2명이 높으신 분과 함께 하게 된다.
평소에 높으신 분들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높으신 분들을 보게 되면 주의 깊게 관찰하는 편인데, 당시에 창조경제부의 그 높으신 분을 봤을 때도 멀찍이서 지켜봤다. 진행자는 연단에서 그 높으신 분이 창조경제에 얼마나 많은 공로가 있는 지를 일장 연설했고, 사실상 창조경제를 시작하신 분이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정확한 워딩은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개가 끝나자 그는 연단에 올랐는데, 진행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창조경제가 얼마나 한국에 많은 일들을 했는지 일장연설을 했다. 한 백만번은 이런 식의 연설을 했다는 듯이 능숙하게, 그러니까 기계적으로 연설을 마무리하고 그는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으려는 그때 내 눈을 포착한 게 있다.
당시 행사가 이루어지던 공간의 의자는 극장용 의자였다. 손으로 내려야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오는 공간 효율적인 의자. 연단에서 높으신 분이 내려오자 수행원은 일어나더니 높으신 분이 앉을자리의 의자를 손으로 내려줬다.
경악스러운 순간이었다. 정장 마이를 벗을 때 수행원이 그 옷을 받아주는 건 자주 봐왔던 무엇이라 딱히 놀라울 것도 없었는데, 의자조차 내려준단 말인가? 심지어 마이를 받아주는 건 높으신 분의 입장에서 편하기라도 한데, 의자는 완전히 반대다. 높으신 분이 수행원의 손을 깔고 앉으면 서로 어색한 눈빛을 교환하게 될 수도 있고, 애초에 물리적으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쉰 이유는 높으신 분이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뭘 이런 거까지 해주냐면서 그는 제 손으로 의자를 내려서 앉았다. 나만 당황한 게 아닌 모양.
그 수행원도 말이 수행원이지 그다지 하이라키의 하단에 위치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높으신 분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 않았고, 수행원으로서 수행하기에도 어느 정도의 높이는 요구되기에 그가 수행원을 하는 것뿐이었다. 짬밥 얼마 안 먹은 병아리에게 높으신 분을 수행하게 하는 건 그 자체로 '무례'로 여겨지는 사회니까.
수행원을 비판할 생각으로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 경악스러운 순간은 내게 숨 막히는 공무원 사회를 보여줬을 따름이다. 수행원은 당연하게도 의자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예를 충분히 갖추지 않으면 자신에게 피해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흔히 군대에서 일하는 부하들이 상사가 흘리는 말을 명령 및 지시로 받아들이듯이 말이다.
선거 운동 당시, 문재인 당시 후보가 자신을 수행하는 기사의 밥그릇을 치우는 것을 봤을 때 나는 여러 가지로 놀랐다. 수행원이 밥을 먼저 먹고 자리를 떴다는 것에서 한번 놀랐고, 그의 밥그릇을 '높으신 분'이 치운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수행원이 차를 빼러 간 사이에 누군가가 그의 밥그릇을 치우는 것은 한 시가 급한 선거 기간에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역할을 선거 캠프 내에서 가장 랭크가 높은 사람이 담당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차라리 그보다 '자연스러울 풍경'은 후보가 밥을 다 먹은 뒤, 후보를 제외한 누군가가 후보의 밥그릇까지 치우는 모습일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직된 공무원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적어도 청와대에는 그런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다. 조직의 경직성은 개인을 제약하고, 개인을 제약하면 조직도 성장하기 어렵다.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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