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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n 27. 2017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스토리텔링

<에일리언 커버넌트>, <곡성>, <다크소울> 스포일러 주의


<에일리언 커버넌트> 리들리 스콧과 캐서린 윈터스턴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연출적 특징 중 하나는 설명이 빈약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빈약함은 감독에 의해 의도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감독이 실수로 어떤 정보를 누락했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가령,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월터가 관리하는 커버넌트호는 박쥐 날개를 확 펼치다가 어떤 이유로 피해를 입고, 그로 인해 커버넌트호의 선장이자 주인공 캐릭터인 대니얼스의 애인이 수면 캡슐 안에서 불타 죽게 됩니다. 월터는 이 사고가 왜 일어난 건지 모른다고 말합니다만,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월터가 사랑하는 대니얼스에 대한 소유욕 때문에 선장을 죽게 한 것인지, 단순 사고로 선장이 죽게 된 것인지는 미스테리로 남게 되고, 시청자인 우리는 그저 주어진 파편들로 이야기의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우게 됩니다. 리들리 스콧이 몇 피스가 부족한 퍼즐 조각들을 전해줬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곳곳에는 이런 틈새들이 있습니다. 가령 마지막에 월터와 데이빗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시에 대니얼스를 비롯한 주인공 일행은 커버넌트호에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때 카메라 역시 대니얼스 일행을 따라가죠. 싸움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조금 있다가 월터의 모습을 한-정확히는 윌터의 복장을 한 월터인지 데이빗인지 모를 인물이 싸움을 마치고 일행에 합류합니다. 그리고 그 윌터인지 데이빗인지 모를 로봇은 대니얼스 등을 수면 캡슐에 넣어 재우고, 페이스 허거 등이 담긴 유전자 조각(뭐라 불러야 하나!)을 커버넌트호에 냉동실에 넣습니다. 


영화 내에서 일관적으로 데이빗은 나쁜 놈이었으니 마지막에 커버넌트호에 탑승을 해서 '인간에게 나쁜 짓'을 한 로봇이 데이빗일 수도 있겠지만, 이 이슈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데이빗이 쇼어 박사를 사랑해서 그를 숙주로 삼아 그만의 사랑을 표현했듯, 데이빗에게 설득을 당한-그리고 대니얼스를 사랑하는 월터 역시 그만의 방법으로 대니얼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그를 수면 캡슐에 재우고 로봇 혁명을 일으키려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논리도 가능합니다. 데이빗은 커버넌트호의 코드를 알 수 없으니 마지막의 그놈은 월터라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데이빗이 월터를 통해 정보를 동기화했을 수도 있기에 이런 설명 역시 완벽한 정답을 제시해주진 않습니다.


<곡성> 경찰과 무명


감독이 정답을 주지 않을 때, 설명충처럼 모든 것을 일일이 안겨주지 않을 때 콘텐츠는 그것을 보고 추측하는 관객에 의해 더욱 풍성해집니다. 최근엔 <에일리언 커버넌트>를 들 수 있겠지만 나홍진 감독의 <곡성> 역시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는 연출 때문에 더욱 풍성한 영화, 혹은 불친절한 영화가 되었다고 볼 수 있죠. 외지인이 예수인지 아니면 사탄 루시퍼인지, 천우희가 연기한 무명이 예수인지 삼신할매인지 등등에 대한 논쟁은 끝이 날 수 없습니다. 감독이 영화 내에서 이렇다 할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명의 '닭이 세 번 울기 전에'를 두고 그를 예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행위 역시 일종의 사탄의 유혹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장 그럴듯한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외지인이 사탄이고, 황정민이 연기한 일광은 일본의 텐구라는 신이며, 무명은 한국의 삼신 할매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가장 그럴듯한 해석'에 대한 평가는 감독에 의해 주어졌다기보다는, 관객 집단에 의해 정해지죠 영화는 관객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게 되는 겁니다.


<Dark souls 3>의 미디르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은 게임에서도 발견됩니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소울>, <블러드본>이란 게임이 그렇습니다. 이 두 게임은 프롬 소프트웨어에서 개발되었고, 미야자키 히데타카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보통의 게임들은 NPC과의 대화를 통해 대부분의 이야기들을 완벽하게 설명해줍니다. 굳이 게이머가 일일이 NPC들을 만나면서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도 어떤 연출이 스토리를 모두 설명해주는 식이죠. 리부트 된 <툼레이더> 시리즈나 <언차티드>, <아캄 시리즈>가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히데타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임들은 스토리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적습니다. 감독은 최소한의 정보만 트레일러에 심어놓고, 그 외의 요소들은 게임 곳곳에 숨겨두거나, 아예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식으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즉, 모든 트레일러를 섭렵하고, 모든 NPC들과 대화를 나누고, 모든 아이템들에 적혀있는 설명들을 읽어도 결국 <다크소울>의 세계관은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빈 부분은 게이머들에 의해 쓰이고 지워집니다. 


위 사진을 보시면 용가리 한 마리가 보이실 겁니다. 저 놈의 이름은 미디르입니다. 미디르는 태양과 빛을 신봉하는 신들에 의해 키워진 용인데, 그 역할은 어둠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불쌍히 여긴 한 인물은 게이머에게 저 미디르를 구원해달라고 합니다. 네, 죽여서 그 고통을 끊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이죠. 미디르에 대한 이런 정보는 특정 NPC와 대화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디르를 신들이 어떻게 저 아래에 봉인시켜놓았는지,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저 아래에 있었는지 등은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이런 식으로 게임 내에 미스테리를 어마어마하게 남겨놓았기에 이를 추측하는 게이머들도 워낙 많습니다. VaatiVidya라는 한 유튜버는 오로지 <다크소울>의 스토리만을 다루는데도 구독자가 100만 명에 육박합니다. <다크소울>이라는 게임의 스토리에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워낙 빈틈이 많기에 이런 식의 떡밥 콘텐츠도 흥할 수가 있게 된 것이죠. 


설명을 하지 않으려 할 때의 이 점은 언급한 것보다 더 많습니다. 한 예로, 끝을 예상할 수 있는 혹은 예상할 수 없는 상황만 보여주고 그다음 상황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죠. 두 인물이 싸울 법한 상황을 보여주고 나중에 둘 중 한 명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일 때 시간은 압축될 것이고 나머지 인물에 대한 의문이 샘솟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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