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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l 18. 2017

나이와 성별이라는 박스는 모두를 불행케한다.


맨박스, 우먼 박스

맨박스란 남성을 옳아매는 어떤 박스들을 말한다. 남자라면 능력이 있어야한다던가, 남자라면 가장의 역할을 맡고 가정을 책임져야한다던가, 남자라면 적극적이어야한다던가, 남자라면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중간에 서야한다는 식의 당위적인 언어들의 집합을 맨박스라 한다. 우먼박스도 마찬가지다. 여자라면 조신해야한다던가, 여자라면 피부가 맑아야한다던가, 여자라면 남자에게 어려워야한다던가(JYP). 맨박스와 우먼박스 간에도 차이가 보인다. 맨박스는 남성에게 적극성을 강조하고, 우먼박스는 여성에게 소극성을 강조한다. 이런 박스에 대한 저항감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문구를 쓰기도 했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에든 간다".


두 박스 모두 좋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쪽을 꼽으라면 우먼박스가 아닐까 한다. 가령 "Be a man"이라고 할 때, "남자답게 행동해라"라는 말은 "남자다움"에서 풍기는 적극성을 꽤나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자처럼 행동해라"라는 말은 애초에 없다. 그보다는 "여자처럼 그러지 마라", "Don't be a pussy"라는 말들이 더욱 대중적으로 쓰인다. "여자다움"은 딱히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박스를 글에 포함시킨 이유는, 맨박스가 남성에게 가하는 폭력 역시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


남성이나 여성으로 규정되지 않거나,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자들

맨박스와 우먼박스를 강조할 때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분류될 수 없는 자들은 더욱 살기 힘들 사회가 만들어진다. 흔한 맨박스에 따르면 남자는 당연히 여성을 좋아해야하고, 우먼박스에 따르면 여성은 당연히 남성을 좋아해야한다(대한민국 기준, 과거엔 "한 명의 남자"라는 조건도 붙었다). 맨박스와 우먼박스가 강해지면 질수록 동성애자들은 설 곳이 좁아진다. 


또, 몸은 남성이지만 정신은 여성인 사람들이나, 몸은 여성이지만 정신은 남성인 사람들같은 사람들은 맨박스에 따라야하는가 우먼박스에 따라야하는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설명할 때 성별이란 박스를 들이댄다는 것은?) 이들은 박스에 들어가지 않고, 박스가 강요하는 어떤 메세지로 삶이 규정되어서도 안된다. 미국이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라벨이 붙여지지 않은 화장실들을 만들고 있는 건 남성이나 여성으로 분류될 수 없는 자들도 껴안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공간효율적이기도 하고. 



한 남성이나 여성을 남성이나 여성으로 분류할 때, 비단 트랜스젠더만 이슈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피너스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를 남성만으로 규정하는 것은 간편하기는 하지만 피너스는 그를 구성하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고 그에게 있어 피너스는 그저 생리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 설령 그가 피너스를 카사노바 싸다구를 날릴 정도로 자주 활용하고 있다고해도 그는 피너스로 규정되지 않는다. 성별 따위보다는 그의 삶의 방식이 더욱 그를 그럴듯하게 설명해줄 것이고, 피너스 하나로 그를 넘겨짚어선 안될 것이다. 그게 존중이니까. 성을 바꿔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버자이너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는 버나이너를 가진 수많은 이들과 구별될 것이다.


나이 차별


최근 운영하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 다룬 책은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다. 이 책은 사회에 만연한 나이 차별을 다룬다. 가령, 우리는 5~60대들에게 "나이가 많다"고 표현하고는 하는데, 정작 이 책은 우리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통계를 보여준다. 5~60대들이나 그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은 자신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늙었다"라는 판단을 특정 나이대 이후의 사람들에게 하는 순간 그들의 직업은 전에 없이 적어지게 된다. "늙었다"라는 말은 노동을 잘 수행할 수 없다는 의미로 손 쉽게 치환되고는 하니까. 게다가 나이가 많으면 그에 대한 평가는 더욱 가혹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가령, 비교적 젊은 나이대로 규정되는 2~30대들은 돈이 없어도 젊다는 이유로 그것이 어느 정도 용서(?)되는 경향이 있지만, 나이가 많은데 돈이 없으면 그는 살아온 인생을 부정 당한다. "어떻게 살아왔으면 저렇게 돈이 없나" 따위로, 온 삶이 게으른 무엇으로 치환된다.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라는 책의 한계가 있다면 나이가 많다고 평가받는 자들이 받는 차별을 주로 다뤘다는 거다. 이는 작가 본인이 중년으로 불리는 나이대에 속하기 때문인 것 같다(이런 평가 역시 차별인가?). 그런데 나이 많은 자들에 대한 차별만 있는 건 아니다. 나이 많은 자들이 그보다 나이 어린 자들에게 행하는 차별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가령, 젊은 사람들에게 좌절이 허용되지 않는다던가, 적극적이어야한다던가, 항상 밝고 똥꼬발랄해야한다던가, 어른들에게 친절하고 예의를 지켜야한다던가하는 차별이나 박스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박스를 깨려는 개인적인 노력

내게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 총 두 명이다. 내가 동성애에 관해 이것저것 글을 써서 편견이 없어보였댄다. 두 명 모두 여성 바이였는데, 이들이 내게 커밍아웃을 했다는 건 그들의 용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나름 박스 깨기를 시도하고 보여지기도 한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박스 깨기가 성공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어쨋든 내가 하는 활동(?)이 당사자들에게 박스 깨기로 보인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요즘 가까운 지인 몇명에게 말을 놓으라고 했다. 나보다 5~6살 어린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과 연을 맺은 지는 몇 년이 됐다. 이들은 내게 드립을 치기도하고 놀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놓지는 않고 있었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냥 만나다보니 굳어진 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 


말을 놓으라고 한 이유는 이 나이라는 간판을 두고 서로 말을 놓거나 말거나 한다는 게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혼자 반말을 하니 나도 모르게 위계적으로 한 게 있을지도 모르고. (자기들끼리도 반말한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말을 놓기로 하자 셋이 모두 말을 놓기로 했다) 이에 더해 페친으로 알게되어 직접 만나기도 한 나이 어린 동생과도 말을 놓기로 했다. 날 어떻게 부르면 되냐고 물어보길레 "너 하고싶은대로."라 답했다. 호칭 따위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아직까지 내가 수구꼴통마초라 잘 안되는 게 하나 있는데, 나보다 나이 어린 남자 동생들에게 말을 놓으라고 하는 게 잘 안된다는 거. 아직 수양이 덜 된 듯 하다. 미안해..나도 어쩔 수 없는 수컷인가봐..그런데 니들도 그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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