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우 Jul 21. 2017

 JTBC <비긴어게인>: 좋지만, 몇가지 아쉬운 지점

#대한민국 #국뽕 #윤식당

주의: 이 글은 서론이 길고, 당신이 싫어하는 내용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높다.

-

한국 예능 프로들이 음악을 다루는 방식

글쓴이가 쓴 내용보단 글쓴이의 립장을 더 궁금해하는 한국인 특유의 읽기 습관을 고려하여 미리 밝히건데, 나는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들이 음악을 다루는 방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매주마다 인기상을 주는 각 방송사들의 음악 프로들을 한 때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온다'는 이유로 좋아했었지만, 지금은 매주마다 이상한 변수로 점수를 매긴 뒤 상을 주는 행태에 역겨움을 느낀다. 음악 프로들이 바뀐 건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인간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여전히 그곳엔 내가 좋아하는 퍼포머들이 나오지만 음악 프로들은 내가 초딩 때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딱히 바뀐 게 없다.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실의 책상 배치가 1~20년 전과 지금이 딱히 다르지 않듯, 음악 프로들도 본질적으로 바뀐 건 없다. 가수가 퍼포먼스를 하고(1) 어떤 평가 기준들은 그들을 순위 매기고(2) 매주마다 상을 준다(3). 


매주마다 뿌려지는 상에 권위랄 게 얼마나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1위 한번 못해본 퍼포머들은 누리꾼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된다. "1위 한번 못해본 아이돌"이라는 식으로. 한편 "음악 방송에서 1위한 경험"이라는 건 한 아이돌의 실패를 증명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최근 모 그룹에 대해서 나름 위로랍시고 누가 댓글 단 걸 봤다. 음방에서 1위 한번을 못해서 아쉽다는 내용. 이해가 안갔다. 매주마다 순위 매겨서 상 뿌리는 프로들의 1위? 그따위 걸 못하는 게 뭐 어때서?


PD들의 경쟁 조장

음악을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는 기본적으로 온 몸으로 느끼는 예술이다. 방송이 음악을 다룰 때에 역할이 있다면 퍼포머의 의도를 극대화해주는 것에 있다. 조명의 배치나 색이나 명암을 조절해주거나, 세트를 만들어주거나, 퍼포머의 요구에 따라 코러스나 오케스트라를 동원해주는 식으로. 뮤지션과 방송 제작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식의 공연을 만들지 쇼부를 치고 공연을 대중에게 내보이면 역할은 끝난다. 대중의 역할은 감상과 피드백이고. 쉬는 타임으로 음악이나 하나 듣고 가자. Gnarls Barkley의 Crazy다.



퍼포먼스를 다룰 거면 퍼포먼스만 보여주면 좋은데, 여기에 한국 PD들은 경쟁 코드를 심기에 이른다. 한 때는 지상파3사에서 매주마다 상을 주는 프로들이 이런 특징을 가졌다면, 지금은 음악을 다루는 거의 모든 프로들에 경쟁 코드가 담겨 있다. 심지어 립싱크만 하고 노래 따위는 하지 않는 음악계의 세태를 비판하는 식으로 나왔던 음악 프로인 <나는 가수다>에서마저 경쟁 코드가 담겼다. 반반한 얼굴이 아닌 노래만으로 가수들을 평가해보자는 PD의 나름 도전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내 눈엔 또이또이였다. 짬밥 좀 많다는 이유로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준 순간 프로그램은 애초에 내걸었던-별 거 없던-기치를 스스로 배신하며 망테크를 탔다.


베테랑 가수들의 긴장이나 반응은 PD에겐 영상 소스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베테랑 가수들마저 긴장하게 만드는 승자독식 구조가 진정 뮤지션들을 위한 길이었는지,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이끌려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퍼포먼스가 대중들이 기대한 무엇이었는 지는 의문이다. 경쟁 코드가 시청률을 에스컬레이트 시켜주는 도구 중 하나란 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런 방식이 누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지는 의문이다. 가수가 행복한가? 누가 탈락하고 살아남는 지 확인하는 시청자들이 행복한가? 팬심을 인질 삼아 시청률 장사를 하는 건 아니고?


<나는 가수다>는 누가봐도 전국적으로 인기를 끈 성공한 프로그램이었고, 이 포맷을 유지한 유사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불후의 명곡>이 아마 첫 유사 프로그램일 것이고, 그 이후에 만들어진 <히든 싱어>, <복면가왕>, <팬텀 싱어> 등도 '노래에 경쟁 코드를 섞으면 장사가 되더라'라는 교훈을 얻어 제작되었다. 언급한 프로들은 노래 그 자체를 즐기게 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누가 더 성대모사를 잘하는 지를 맞추거나, 누가 더 오랫동안 노래라는 게임에서 지속적인 승리를 하여 왕좌를 유지하는 지에 방점이 찍혔다. 장르를 바꾸기도 했다. 가요가 일반적이었는데, 힙합이나 오페라를 채택한다던가.


JTBC <비긴 어게인>

글 제목에 "좋지만"이라는 단서를 깐 이유는 JTBC의 <비긴 어게인>이 앞서 언급한 음악 예능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류처럼 가수들끼리 경쟁을 붙여서 누군가를 탈락시키지도 않았고, <프로듀스101>처럼 음악이란 소재를 두고 열정 팔이, 표 팔이, 비극 팔이를 하지도 않았다.


확실히 그런 것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려 노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소라나 윤도현이 노래를 부를 때 다른 사운드는 그다지 개입되지 않는다. <복면가왕>의 PD는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김구라의 추임새를 집어넣는 토 나오는 편집을 자주 했다. <비긴 어게인>은 음악 도중에 PD가 개입하는 식의 편집은 자주 나오진 않는다. '자주'라고 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나오는데 PD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정보를 삽입하면서 도중에 흐름을 깬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1시즌 1화에는 노홍철의 추임새가 적잖게 삽입됐고, 1시즌 3화에서 이소라차 <청혼>을 부르는데 이 때 한 외쿡인이 노홍철에게 "저 밴드 이름이 뭐냐"고 물을 때도 음악은 도중에 작아진다. 그런데 이 삽입장면은 뒤에서 한번 더 삽입되기에 굳이 음악을 방해하면서까지 삽일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은 든다. 나라면 외국인이 밴드 이름을 물어보건 박수를 치건, 도중에 음악을 짜르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다. 이런 국뽕에 기반한 편집에 대해선 뒤에서 계속 다룰 생각이다. 


PD가 한국에서 톱을 달리는 가수들을 헤쳐모여 해서 아일랜드로 던져놓은 것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일단, PD는 <begin again>이란 제목으로 이 예능의 메세지를 선점하려는 시도를 했다. 외국의 길(street)은 이소라나 윤도현을 무명 가수로 만든다. 아무도 그들을 모르고 그들의 노래를 모르기에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는 엄밀히 말해 틀리지 않다. 


그런데 이건 PD가 그렇게 포장을 하고싶어했던 것이고, PD가 진정 셀링 포인트로 삼은 부분은 그런 게 아니다. 이 예능은 경쟁 코드는 거부하는 한편, 국뽕 코드를 심었다. 국의 음악이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의 가수들이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호기심은 해외의 인정을 갈망하는 한국인들을 자극시킨다. 비슷한 맥락에서 만들어진 프로가 나영석 PD의 <윤식당>이다. 한국의 음식을 외국인들이 어떻게 평가해줄 것인가?



<윤식당>은 시청률이 14.2%까지 나오며 대박을 쳤다. 이 예능은 평소에 예능에 잘 나오지 않는 영화 배우들(윤여정, 정유미)과 해외 여행과 먹방과 국뽕 코드로 무장했다. <윤식당>의 성공에서 교훈을 얻은 오윤환 PD는 요리를 음악으로 바꾼 뒤 <비긴 어게인>을 만든다. 한 땐 TV에 자주 나왔지만 요즘엔 예능에 잘 나오지 않는 가수 둘과 진행에 발군인 가수 겸 진행자 한 명과 국뽕 코드에 심취한 개그만 하나 그리고 여행과 국뽕 코드로 무장했다. 바뀐 건 사람과 여행지와 소재 뿐이다.


가수가 아닌 노홍철이
<비긴어게인>에 존재하는 방식

윤도현과 이소라는 차라리 음악을 즐겼다. 유희열도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먼 이국의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에 설레여하는 눈치가 보였다. 그들은 외국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음악을 즐겨주는 지에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노래를 부를 때의 광기에 취했고, 키보드를 연주할 때는 음악에 취했다.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인정이 있건말건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희열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더 나아가 외국인들의 인정이 있건 말건 스스로들이 뛰어난 아티스트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설 곳이 없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노홍철. 노홍철은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할 때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가는 것을 보고 유희열-윤도현-이소라에게 대놓고 초라해보였다고 말하고, 눈물도 펑펑 흘린다. (욕을 쓰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르고) 노홍철은 마치 외국인들의 인정이 있어야만 그들의 공연이 가치가 있어진다고 믿는 듯 했고, 사실, 그런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듯 보였다. 가수도 아니고 진행자도 아닌 노홍철이 이 예능에서 가지는 포지션은 한국인이다. 노홍철의 시선이 PD의 시선일 것이고, 또, 그걸 보는 시청자-한국인들의 시선일 것이다.


노홍철의 말과 행동은 <비긴 어게인>에서 '우리들의 공연은 반드시 외국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한다'는 강박을 강화시킨다. 노홍철은 '이런 식으론 안된다'라는 식으로 밴드에 경고등을 울리고, 그들 역시 자신의 가치관에 감화되게끔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런 노홍철의 태도를 오윤환 PD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는 동일한 위기의식을 시청자도 느끼게 하고 계속 TV를 붙들게 하기 위해서일 거다. 저들의 성공(?) 여부가 으마으마하게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양념을 쳐야하는데 노홍철은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양념이다. 그리고 우리는 노홍철을 통해 오윤환 PD의 상품을 확인한다.

-

<윤식당>이나 <비긴어게인>이나 서경덕 교수가 자문을 맡았나?

아니라고? ㅇㅋ

-

브런치 구독은 사랑입니다.
-
커피 기프티콘 후원받습니다. 카톡- funder2000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사랑입니다.
문의- funder2012@gmail.com
-
작가 페이스북
글쟁이 박현우
헬조선 늬우스

매거진의 이전글 넷플릭스 <BLAME 블레임> 간단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