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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Aug 30. 2017

<부시윅>: 흥미롭게 시작하여 시시하게 끝난다.


스포주의

용두사미의 전형이다. 어째 요즘 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들은 밟을 때마다 지뢰다. 컨셉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감독들이 너무 욕심을 부렸다. 딱히 깊은 의미를 포함하지 않아도 됐을 법한 흥미로운 컨셉인데 이것저것 너무 끼워넣다보니 이도저도 안되는 흔한 B급 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

주인공들의 과거를 보자. 여기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덩치 큰 남성은 전직 군인이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그가 가족에 대해 되도않는 연기를 하며 질질 짤때는 모니터를 때려 부수고 싶었다. 그의 과거는 스토리에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는다. 전쟁 중에 사람 많이 죽여서 수위로 전직했다는 것까지는 불필요하지만 그럼에도 'ㅇㅋ'하고 넘어갈만한데, 그 뒤에 이어지는 가정사는 영화를 루즈하게 만든다. 


장르적 특수를 살리지도 못했다. 이 영화의 장르는 미스테리 생존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침략(?)을 한 놈들이 누구인지 밝히고, 또 생존에 필수적인 아이템들을 하나 둘 갖춰가면서 주인공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영화적 흥미를 유지했어야했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


그런데 침략(?)을 한 그놈들의 정체는 너무도 허무하게, 완전히 재미없는 방식으로 밝혀진다. 어쩌다가 집에 난입한 놈을 무력화하시키니까 자신들의 정체를 술술 밝힌다. 영화는 이미지로 승부하는 콘텐츠다. 그런데 홀로 집방구석에 난입한 놈의 대사를 통해서 정체가 밝혀진다. 이건 뭔? 애초에 둘, 셋 이상씩 집단적으로 움직이던 놈들인데 주인공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놈은 편리하게도 단독 행동을 한다. 그리고 아까는 정문으로 대담하게 들이닥치던 놈들이 이번에는 왜인지 창문을 통해 난입한다. 복선도 없고, 개연성도 없다.


장르적 재미도 없다. 생존물 장르는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이템들을 하나 둘 갖추게되는 것에서 장르적 쾌감을 추구하곤 한다. 가령, 맨 손으로 싸우던 사람들이 몽둥이를 얻고, 권총을 얻고 소총을 얻어가는 식이다. 그런데 왜인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뻔히 소총을 들고 있던 놈들을 떄려잡았음에도 아까부터 들고있던 권총에만 집착하는 이상한 행태를 보인다. 그 권총에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런 거라면 납득이라도 하겠는데 딱히 설명도 없어서 개연성만 잃을 뿐이다.


이 영화의 장르가 미스테리 생존물이란 것은 내가 규정한 것이고, 감독 입장에서는 다른 무엇을 생각하고 영화적 재미를 만들려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생존물이 아니므로 아이템 수집을 통한 재미가 없다는 나의 비판은 손쉽게 무력화될 수도 있다. 다만, 그렇다면 생존물로서의 재미가 아닌, 다른 종류의 재미가 있어야하는데, 없다. 


극을 계속 이끌어왔던 주인공 둘을 막판엔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죽여버리는데, 거기에서 어떤 종류의 재미를 찾아야하나? 그런 식으로 주인공 죽이는 건 첫째로 참신하지도 않고, 둘째로 재밌지도 않다. 주인공이 주인공으로서 기능하려면 그는 남들과 다른 업적을 달성해내야한다. 그저 수많은 대중들 중 1인이라면 애초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이 없고, 관객들 입장에서는 저 평범한 1인을 왜 봐야하는 지조차 납득할 수가 없다. 주인공이 으마으마한 업적을 달성해내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맡게된다면 그건 어찌어찌 납득할만도한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뭐 한 것도 없다. 그냥 살다가 별 시덥잖은 이유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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