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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Oct 03. 2017

취중진담에 대처하는 방법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나
불안해 할지도 몰라
하지만 꼭 오늘밤엔 해야 할 말이 있어
약한 모습 미안해도
술 김에 하는 말이라 생각하지는 마
언제나 네 앞에 서면 준비 했었던 말도
왜 난 반대로 말해놓고
돌아서 후회 하는지
이젠 고백할게
처음부터 너를 사랑해왔다고
이렇게 널 사랑해
어설픈 나의 말이 촌스럽고 못 미더워도
그냥 하는 말이 아냐
두번 다시 이런 일 없을거야
아침이 밝아 오면
다시 한번 널 품에 안고
사랑한다 말 할게
자꾸 왜 웃기만 하는거니
농담처럼 들리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어린애 보 듯 바라보기만 하니
언제나 니 앞에 서면
준비했었던 말도
왜 난 반대로 말해놓고
돌아서 후회 하는지
이젠 고백할게
처음부터 너를 사랑해왔다고
이렇게 널 사랑해
어설픈 나의 말이
촌스럽고 못 미더워도
아무에게나 늘 이런 얘기하는
그런 사람은 아냐
너만큼이나 나도 참 어색해
너를 똑바로 쳐다 볼 수 없어
자꾸만 아까부터
했던 말 또 해 미안해
하지만 오늘 난 모두 다 말할거야
이렇게 널 사랑해
어설픈 나의 말이
촌스럽고 못 미더워도
그냥 하는 말이 아냐
두번 다시 이런 일 없을거야
아침이 밝아오면 다시 한번 널 품에 안고
사랑한다 말 할게
널 사랑해
이렇게 널 사랑해.
전람회 <취중진담>


취중진담이란 단어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끔 만들어준 것에 가장 큰 공로를 한 것은 전람회의 <취중진담>일 거다. <취중진담>에는 한 여자, 아니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럼에도 술에 취해서야 고백을 하는 남성이 주체로 등장한다. 이 취중고백에 힘을 실어준 건 김동률의 목소리다. 김동률이 그윽한 목소리로 "널 사랑해"라고 하는데 거기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고 믿기는 힘들다. 분명 <취중진담>의 그 남자는 앞에 있는 사람에게 술에 취한 채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그 사람이 그 남자의 고백을 받아줬는지. 고백이란 게 그렇다. 본인은 나름 로맨틱하다 생각하면서 채택하는 고백 방식이 상대 입장에선 찌질해보일 수 있다. 그리고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고백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순식간에 달아날 수도 있다. <취중진담>이 탁월한 곡인 이유는 고백받는 사람의 반응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백은 썸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 그러니까 서로를 암묵적으로 애정 대상으로 여길 때 이루어지는 게 좋다. 그게 고백하는 입장에서도 좋고, 고백받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전한 수단을 채택할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을 때 고백하는 자는 극단적인 수단을 채택한다. 취중진담이 그렇다. 상대와 암묵적인 합의가 있어도 실패하는 고백인데, 그마저도 없을 때는 술이라는 마취제로 신경을 마비하고 실행에 옮긴다. "널 사랑해!" 이건 로맨틱이 아니라 베팅이다.


이런 식의 서술은 고백하는 1인이 술에 힘을 빌린다하더라도 그 사랑의 애틋함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무엇으로 만든다. 하지만 다른 식으로 취중고백을 바라볼 수도 있다. 술이 들어가야만 발현되는 애정은 신뢰하기 힘들다. 술이 들어가면 급격히 우울해지고 외로워지는 인간군상들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되는 그들의 취중고백은 사랑을 함축하지 않는다. 외로움이 있을 때야만 발현되는 구애는 그 자아가 현재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뿐 상대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진 않는다. 그 사람은 그저 자신을 다독여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아직 연인도 아닌 누군가는 그를 구제해줄 의무가 1도 없다. 시작부터 과제를 주는 놈이라니?


또한, 취중고백이 상대에 대한 비매너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는 건 그 사람이 딱 그 정도 수준의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한테 술을 마시고 고백을 한다? 무릇, 사랑하는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이라면 잘보이기 위해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는 법이다. 그런데 술 마셨다고 그 경계가 흐려지는 사람이라면 술 마시고 사람 패는 것도 예정되어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상대가 취중고백을 했을 때 우리의 바람직한 대처는 무시다. 굳이 "넌 나를 그정도로 밖에 생각 안하냐"며 싸움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 시간은 귀하니까.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한 채 연락 온 남자에 대해 물어왔다. 이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하는 지를 물어본 것이었다. 내 대답은 심플했다. 대낮에 멀쩡한 채로 연락오면 그때 그 연락을 신중히 고려해보라고. 술에 취할 때만 연락한다는 건 딱 그 정도 수준의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건데 그 정도의 애정에 만족할 수 있냐고. 한편, 취중연락이나 취중진담에 흔들린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굉장히 외로운 상태이며 위태로운 상태라는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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