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은 그랬으면 안됐다.
#브런치무비패스 #감사
매체를 통해 한 사람의 삶을 다룰 때는 굉장히 조심해야한다. 그 매체가 어떻게 연출되느냐에 따라 어떤 인물의 삶이 열정과 기쁨으로 가득찬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슬픔으로 점철될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고, 음모론으로 가득찬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가 만든 <김광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김광석이란 이름을 되도않는 의심 하나로 오염시켰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상호가 그런 영화를 찍는 바람에 많은 이들은 '김광석'을 떠올린 이후에 곧장 그의 죽음을 떠올릴 것이다.
게다가 <김광석>이라는 다큐는 김광석이 아닌 김광석의 죽음을 다룬다. 죽음 역시 김광석의 일부이기에 그런 제목이 적합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음악으로 대표되는 그의 삶을 냅두고 확인되지도 않은 음모론 따위를 다루면서 제목을 <김광석>으로 내거는 건 김광석 명예를 지켜줘야한다는 생각 따위는 없고 흥행에 환장했다고 볼 여지를 준다.
포스터에서 이상호의 나르시시즘도 확인할 수 있다. 제목이 <김광석>인데 왜 포스터에 이상호가 찍혀있냐고. 그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은 관객 입장에서 알 필요가 1도 없다. 정말 1도 없다. <저수지 게임>에서도 그렇고 한국 다큐 제작자들은 스스로를 자제할 줄을 모른다. 주인공은 따로 있는데 자기한테 관심이 조금이라도 쏠리길 기대하는걸까?
혹자는 이상호를 두둔하면서 기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라고 항변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기자는 책임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의심스러운 살인의 희생자로 만들고 가해자로 만들 정도라면 그만큼 근거는 크리티컬해야한다. 근거가 이렇게 널려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손 놓고 있는 국가를 뚜까패도 되잖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관계를 영화에 담아내고, 경찰이 그 영화를 하나의 증거로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짜임새 있게 만들었으면 모르겠다. 그런데 아니잖나? 그정도도 준비하지 못했으면서 왜 김광석이란 이름을 팔아먹나.
다행인건 이상호의 <김광석>보다 김광석이란 음악가가 풍기는 삶의 향이 훨씬 강력하다는 거다. 1, 2개월 정도가 흐르면 '김광석'을 떠올릴 때 그의 음악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번 확인하게 될 것이다. 프레임보다 강력한 건 내용이라는 것을. 이상호의 프레임은 김광석의 이름을 더럽히지 못할 것이다.
<아이엠 히스 레저>(이하<히스 레저>) 리뷰를 쓰는데 <김광석>을 다루는 이유는 다큐를 제작한 제작자들의 의도가 너무도 대비되기 때문이다. 젊은 때 생을 마감한 히스 레저를 주인공으로 다큐를 만들 때, 다큐 제작자는 히스 레저의 죽음에 집착할 개연성이 높다. 그런데 <히스 레저>의 감독 데릭 머레이 Derik Murray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히스 레저라는 배우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 지만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그렇다고 그의 죽음을 다루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것 역시 그의 삶이니까.
그가 어떻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감독으로서 어떻게 영상 제작을 했는지, 얼마나 카메라 덕후인지, 가까웠던 사람들은 히스 레저를 어떻게 이야기하는 지, 어떤 사람과 사랑을 나눴고 그 둘은 어떤 식으로 서로를 확장시켜줬는 지 등을 건조하고 덤덤하게 담아낸다. 감독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그저 카메라 뒤에서 그의 삶을 더 없이 진솔하게 담아내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떨어질 콩고물을 주워먹으려하지도 않았다. 제목에 사람 이름을 넣을 거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줘야한다. 최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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