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첫 관람 때 영화 앞 부분을 놓쳤다. 엄마가 애를 낳는 부분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한번 더 봤다. 앞 부분에는 실물 아빠와 엄마가 등장했다. 헐. 첫 관람 후 리뷰 때는 실물 아빠가 등장하는 지도 모르고 리뷰 글을 썼다. 아빠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글을 썼기에 아빠는 애초에 투명인간이었을 것이란 가정으로 글을 썼다.
나는 그 가정에 확신을 가졌었는데, 오프닝을 보니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실물이 등장한다는 것은 아빠가 눈에 보이는 존재였을 거란 확실한 증거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첫 장면에서 엄마에게 보이는 아빠의 형상은 상상의 산물일 수도 있다. 그 잘생긴 남성은 실제하지만, 여전히 투명할 수는 있다. 문을 열었을 때 그 공허 속에서 엄마가 놀란 이유는 아빠의 채체취, 숨소리를 더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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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하나의 우화다. 투명함이라는 그의 존재 방식은 남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우리의 결점, 그럼에도 극복할 수 없는 우리의 본질을 상징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우린 그것을 보일 필요가 없고 보일 기회도 얻지 못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자에겐 우리의 본질을 숨길 수 없고 숨겨서도 안된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외관상으론 특별하지만 사랑-관계를 가짐에 있어 유달리 특별한 성질이 되지는 않는다. 누구나가 그 투명한 남자처럼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고유한 비밀들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각각 고유한 비밀들을 가지고 있다. 사랑을 한다는 건 그런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우리를 사랑하는 부모와 가까운 친구들은 <나의 엔젤>의 엄마와 같은 뉘앙스로 "그건 절대 니 애인한테 말해주지 마라"란 말을 하겠지만, 딥다크한 더티 시크릿을 상대에게 보여주고 그것마저 사랑해주길 기대하는 것 역시 사랑의 한 모습이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우리의 더티 시크릿을 감춰야한다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사랑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껍데기는 가고 오로지 알맹이만 남아야한다.
<나의 엔젤>의 두 인물은 과제를 가지고 있다. 한 인물은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고, 또다른 인물은 그런 모습까지도 껴안아줘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 과제는 반드시 수행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둘의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선 불가결한 것이다. 그들의 선택이 아름다워보이는 이유는 결코 쉽지 않으며, 우리가 애써 하고자 했으나 매번 실패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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