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엔 도움이 될까?
기업이 자소서를 요구할 때 어떤 질문을 넣는 다는 건 그 자체로 갑질이다. 갑질이 아니라고? 그럼 좀 더 표현을 온화하게할 수도 있다. 자소서에 형식을 요구한다는 건 취준생에 대한 배려가 1도 없는 거다. 취준생은 수많은 종류의 자소서를 쓸 수 밖에 없는데 회사들은 질문을 통해 '우리한테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존나 유니크한 자소서를 내렴.' 이 지랄을 떨면 취준생 입장에서는 또 나를 붙여줄지 말지도 모를 회사를 위해 몇 시간을 투자해야된다.
기업의 의도 자체가 넌센스다. 지원자의 능력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형식없는 자소서를 요구해도 그다지 상관이 없다. 능력을 자랑할 이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글을 써서 보내거나, 각종 그림이나 동영상, URL 등을 이용해 자신의 능력을 뽐낼 것이다. 핵심은 지원자들이 자기소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거다. 기업들이 룰을 정해주지 않을 때 더욱 잘할 수 있다는 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자기 소개잖아. 왜 자기소개하는데까지 테클을 거냔 말이야.
형식이 없다면 설사 지원자가 특정 회사만을 위한 자소서를 제출하려고 한다하더라도 '타의'가 아닌 그의 '자의'로 그렇게 할 수 있다. 형식이 자유롭다는 건 그런 의미다. 그런데 지금의 취업 시장에서는 그런 재량을 둘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다. 유니크한 자소서 요구는 디폴트고, 간혹가다 자소서에 형식을 두지 않는 회사가 있을 뿐이다.
모든 회사들이 자소서의 항목들을 자유로 둔다면 취준생들은 모든 회사에 동일한 자소서를 제출할 수 있다. 자신만을 위한, 자신을 가장 돋보여줄 자소서를 만들어 제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자소서가 설득력이 없으면 그는 떨어질 것이고, 그 탈락은 자소서를 충분히 설득력있게 꾸미지 못한 지원자의 잘못이거나 기업과 아귀가 맞지 않은 불운(혹은 행운)일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이 특정 질문을 만들어서 취준생을 괴롭힌다는 건 아직 입사하지도 않았고, 붙여줄 지도 모르는 회사에 대한 애사심을 엿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회사에 썼던 자소서를 재활용하지 못하게하려는 것이다. 한번 쓰인 자소서를 재활용하는 대상으로 우리 회사가 선정된다는 걸 대단한 모욕으로 여기는 것 같다. 자신들만을 위한 자소서를 요구한다는 건 그런 의미다. 너흰 우릴 정말 사랑하니? 연애는 시작도 안했는데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는 지를 보여야한다. 취준생들이 특정 회사에 지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니네 회사의 위치가 좋고, 돈을 많이 주기 때문이거늘. 왜 우리 회사인지는 대체 왜 물어보는거냐고?
기업의 입장에서 어떤 형식을 요구하는 것이 애사심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회사가 요구하는 특정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자소서에 형식을 두고 적게는 2개에서 많게는 4개의 질문을 던지는 것일 거라는. 이런 주장이 전제하는 것은 그런 형식을 제공할 때, 그러지 않을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취준생들이 자소서를 어떤 식으로 작성하는 지를 유심히 보면 그게 얼마나 현실과 괴리있는 주장인지를 알 수 있다.
취준생들이 자소서에 쓰는 소스들은 이미 정해져있다.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거나와 관계없이 취준 모드에 들어간 이상 자소서에 투입하는 스펙이나 경험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다. 기업들이 여러 질문을 던지면서 자소서를 요구하면, 지원자들은 이미 정해져있는 스펙이나 경험들을 그 질문에 맞게 글을 다시 쓸 뿐이다. 즉, 기업에 따라 자소서의 질문 항목이 바뀌면 자소서의 형식이 바뀔 뿐 내용이 바뀌지는 않는다. 기업들이 특정 능력을 어필하라며 질문을 던져봐야 취준생들은 귀찮게 자소서를 새롭게 써야할 뿐이다. 결국 온갖 형식의 질문을 던지며 자소서 작성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받아든 특정 지원자의 자소서는, 같은 지원자가 형식 없이 쓴 자소서보다 나을 점이 1도 없다. 오히려 지원자의 재량을 제한하기에 더 적은 정보가 담길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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