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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Nov 07. 2017

입사를 고민하는 자와 퇴사를 고민하는 자간의 대화


2017년 10월 6시쯤, 서울 어딘가에서 친구와 만났다. 짐이 없어서 다시 들어가야되냐 물으니 다시 들어가야 된다고. 이 놈은 2016년 8월에 <대기업에 간지 1년도 안된 친구가 퇴사를 준비 중이다>라는 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년차 때 퇴사를 준비하던 놈은 2017년 10월 현재까지 퇴사하지 않(?)았고, 이제 2년차에 접어들었다. 퇴사를 준비 중이었던 놈은 이제 퇴사를 고민하는 놈이 되었다.


일식 집에 들어가서 썰을 풀었다. 대화는 '입사를 해야하나말아야하나 고민하는 글쟁이와 퇴사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유부남 직장인간의 한풀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소재들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입사와 퇴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그 외의 것들은 너무도 사소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친구가 퇴사를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회사일이 의미없다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이는 앞서 인용한 글에서도 충분히 다뤘지만 당연하게도 바뀐 것은 없었다. 그 글을 조회했던 18만명이 넘는 사람들도 직장인들의 영혼을 메마르게 하는 직장 문화 및 업무 내용이 바뀔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온갖 종류의 글들이 거대한 벽을 때려부수려해도 그저 자위용 밖에 되지 못했고, SBS의 <요즘 것들의 퇴사>라는 걸출한 다큐멘터리는 전국-아니 적어도 서울을 흔들며 하나의 거대한 블랙홀을 만들었지만 그 뿐이었다.


자타(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지인 몇)칭 프리랜서 글쟁이가 푸념을 늘어놓는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월급 하나만큼은 받고 싶어. 그거면 좀 삶이 안정적으로 될 거 같단 말이지. 지금은 고정적인 월급이 없다보니까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도 적극적이질 못하거든(역자주, 핑계다). 그러니 결혼도 꿈이고. 글이 흥하면 후원금이 들어오기는 하는데 그걸로 아직까지는 직장인만큼 경제적 소득을 얻지는 못하니 문제지.


월급 받는 직장인이 말했다. 내가 어디서 본 게 있는데. 월급은 너가 낭비하는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고. 


헬조선 늬우스 관리자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기왕 같은 시간 낭비할 바엔 대기업에서 낭비하는 게 더 쳐주겠지.


유부남이 말했다. 내가 그래서 요즘 시간을 낭비 안하려고 한단 말이야. 월화수목금 회사에서 일한다치면 금요일에 다들 불금이랍시고 놀 때 일단 집에 들어와서 풀수면을 취하는거지. 그리고 토요일에 일어나면 이제 내 공부를 하는거야. 가끔은 퇴근하고 나서도 공부를 하고. 그런데 이러면 XX(와이프)가 별로 안좋아해.


XX도 지금 출퇴근하고 있는거지?


그치. 일 마치고 들어왔으면 자기랑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나는 퇴근하면 또 공부하니까 XX가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


XX는 너 퇴사하는 거 괜찮아해?


XX는 나보고 좋아하는 거 하라고 하지. 그런데 퇴사해서 잘 안되면 XX한테나 시댁한테 또 죄짓는 게 되니까 간단한 문제는 아니고. 그런데 부모님은 절대 반대하시지. 절대 퇴사하지 말라고.


한국의 나이 좀 찬 사람들은 (대)기업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거나 국가의 녹봉을 얻어먹고 사는 삶을 인생을 사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걱정이 전혀 근거없는 것인가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를 사랑으로 생각하니 관련 항목을 살펴보자. 결혼.


남성이 정규직이면 결혼확률은 4.6배 오르고 자기 집까지 가지고 있으면 그 확률은 7.2배까지 오른다(링크). 여성들도 사정은 딱히 다르지 않다. 통계상으로만 보면 현실은 여성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 여성보다 4.9배 결혼확률이 높다(같은 기사). 또다른 통계도 있다. 정규직 남성이 비정규직 남성보다 8.6배 결혼확률이 높다는 것, 다시 말해, 비정규직 남성은 정규직 남성에 비해 결혼할 확률이 정규직 남성의 11.8% 밖에 안된다(링크). 


남성의 결혼 적령기를 대강 30~40세로 잡는다고 할 때(여성은 아무래도 더 빠르겠지만, 그런 현실은 무시하기로 하자), 자가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부모가 돈이 많거나, 연봉 4~5000정도 주는 기업을 다니면서 돈을 훌륭히(?) 저축했거나. 


또 미혼의 남성의 경우 정규직일 때 더 결혼의향이 더 높다(링크). 비정규직 남성들이 결혼할 의향이 없는 이유는 결혼 콘텐츠를 소비할 구매력이 없기 때문이지 우연히도 비정규직 남성들이 결혼을 싫어하는 유전자를 더 보유하고 있어서가 아니란 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사회안전망이 그리 튼튼하지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대)기업에 기생하는 삶은 결혼을 비롯한 삶의 다양한 옵션을 채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기업을 가지 않으면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도 포기해야할 처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대)기업들이 커버해줄 수 있는 인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사이즈가 큰 만큼 규모의 경제를 발생시키기에 더 적은 비용-노동자로 더 많은 아웃풋을 낼 수 있다. 대기업이 생산할 수 있는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나라는 대기업이 다 해먹고 있잖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 얼마나 결혼하기가 힘든 지를 위에서 밝혔으니, 비정규직도 못되는 고용 상태를 가지고 있는 자들의 결혼 포기 현상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정규직은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고 배우자로서의 자질 중 한 측면을 강화시켜준다. 반대로 그런 안정을 파트너에게 보장해줄 수 없는 자들은 결혼 시장에서 탈락된다. 한 때는 파트너에게 경제적 안정을 보장해야할 성별이 남성에 국한되는 것도 같았으나, 지금은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대기업이 커버해주지 못하는 자들은 더 적은 옵션을 삶을 영위하게 될 수 밖에 없는데 그 옵션에 '결혼'이 첨가되어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취업에 탈락했거나 조직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는 이유로 결혼에서까지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유쾌한 소식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들의 말도 안되는 채용과정-갑질을 견디는 거 아니겠나. 삶을 선택하고 결혼을 포기하거나.



기업에 소속되어있는 경험이 많은 옵션들을 보장해주지만 그만큼 앗아가는 것들이 있다. 현재 월급을 받지 않는 자로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게 있다면, 월급을 받는다고 해도 반드시 그게 안정을 보장해주지는 않을 것 같다는 거다. 경제적 안정은 보장해줄지도 모르겠으나 직장 생활은 직장인들에게 다른 종류의 불안을 던져준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계속 직장에서 이 무의미한 짓거리를 계속해도되는가하는.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월급을 "너가 낭비하는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 말하는 것은 그럴듯해진다. 대기업 중에서도 연봉 어마어마하게 주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친구가 나올까말까 고민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


필자가 입사를 고민하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월급은 주어지지만 하고싶은 일을 뜻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고, 뭣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역량을 제한적으로 쓸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달까. 그러니 나의 의문은 하나였다. 월급이 삶을 희생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 군대에서 적응 잘하고, 시스템에 의문을 품지 않기에 시스템에 누구보다도 잘 적응하는 사람들은 회사에 맞다. 다만, 내향적이며,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은 회사라는 시스템에 어울리기 쉽지 않다. 난 아예 극에 와있는 것이고, 친구는 좀 걸쳐있기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회사를 다니는 것이고.


월급을 받지 않는 자가 월급을 받는 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퇴사하면 하고 싶은 게 뭔데?


월급을 받는 자가 답했다. 공부하고 싶음.


무슨 공부? 


인공지능, 코딩 같이 요즘 좀 핫한 것들.


친구의 계획은 그리 콘크리트하지 않았다. 좀 더 구체적이며 명확한 퇴사 후 플랜이 있으면 그때 내게 컨펌을 받고 퇴사를 하건 말건 하기로 했다. 곧 입도 하나 더 생길텐데 객기만 가지고 퇴사를 하기에 현실은 녹록치 않으니까. 계획이 콘크리트하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다만 바뀐 건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10월 말이고, 글을 만지지 않다가 마무리하는 지금은 11월 초다. 기간은 충분히 흘렀고, 나는 결심을 세웠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하고 일단 이 글을 후딱 마무리하자. 힌트를 드리자면 나는 여러분들의 후원이 더욱 절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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