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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Nov 28. 2017

<시크릿 레터>: 떠나지 못하는 남자의 지지부진함

스포주의

영화를 보기 직전에 포스터를 보고 알게됐는데, <시크릿 레터>의 감독은 <시네마 천국>을 감독했고, <시네마 천국>과 마찬가지로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음악은 좋았다. 그런데 음악만 좋았다.


이 영화는 병걸린 6~70대 노인(?)과 30대 대학원생 여성의 사랑을 다룬다. 노인에게 와이프가 있는 지 없는 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의 가족이 등장하기는 한다. 불륜 이슈는 불명확하므로 넘어가도록 하자. 쨋든, 이들은 직접 만나서 연애를 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할 때는 물고빨고 다 하긴하는데, 그 시퀸스 이후로는 직접 만나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소통한다. 스카이프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기도하고, 아이폰으로 메세지를 나누기도하고, 이메일을 주고받기도 하고.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남성은 소통 방식을 바꾼다. 자신을 녹화한 CD를 여성에게 전달해주고, 여성은 그걸 보면서 그를 확인하는 것. 영화는 이때부터 루즈해지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남자는 사망했던 것이고, 그의 지시를 받은 변호사가 편지나 물건 등을 여자에게 전달해주던 것이었는데, 이런 것은 무지하게 로맨틱한 것처럼 그려진다.


죽은 상태에서도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려는 노력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만, 내가 죽은 자에게서 기대하는 사랑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다. 산 자에게 "너는 이제 나를 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라고 하는 게 가장 정석적이면서도 바람직한 그림이 아닌가?


그런데 노인은, 자신보다 한참 살 날이 많이 남은 그 여인을 보내줄 생각이 없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여자가 자신을 그리워하게 만들기위해 온 영혼을 바친다. 문제는 노인의 방식이 전혀 로맨틱하지도 않고 신선하지도 않음에도 영화는 여성의 표현을 빌어 노인의 행위를 엄청 로맨틱하고 센스있고, 정당한 것인양 표현한다는 것.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사랑의 방법론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더라도 영화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비슷한 느낌의 장면은 계속해서 반복되어 지루했고, 말도 안되는 전개가 너무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노인은 여성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영화니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거다, 라고 감독이 계속해서 주장하는 듯했는데, 그래서 이 영화가 낡았다는 느낌을 받았는 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영화들은 그런 식으로 불친절한 스토리 전개를 하고는 했으니까.


그 낡은 연출이 소재로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 2016년에 만들어진 영화에서 남자는 캠코더로 영상을 녹화하고 그렇게 녹화한 영상을 CD에 굽고, 여성은 ODD가 달린 노트북으로 그 CD를 틀며 그의 메세지를 듣는다. 요즘 누가 CD를 굽고, 요즘 어떤 노트북에 대체 ODD가 달려있? 한편, 여주는 아이폰6 혹은 아이폰6s을 쓴다. 그렇다고 남주가 스마트폰을 쓸 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신기술에 누구보다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문자에 딸려오는 텍스트로 알고리즘을 구현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런 IT기술에 능한 자가 캠코더로 녹화를 하고 CD에 영상을 굽는다고?


이렇다보니까, 영화가 전체적으로 정돈이 안된 느낌을 받았다. 편지라는 구시대의 통신 수단과 이메일과 SMS라는 통신 수단 모두가 영화에 등장하게하려면 관객이 납득할 수 있게 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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