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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Feb 08. 2018

한 여성이 자정을 넘어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인터뷰를 했다. '안좋은 일'을 당하신 분이 현장에서 벗어난 직후에 연락을 주셨고,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30분쯤 뒤에 만났다. 약속 시간은 늦은 12시 45분. 말 그대로 급작스런 인터뷰. 간단히 씻고, 입고, 택시를 잡고 홍대의 한 바로 향했다.


성희롱이 일어날 때 피해자에겐 두가지 감정이 만들어진다. 하나는 불쾌감. 허락하지 않은 누군가의 손이 내게 닿는 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쾌감을 자아낸다. 또다른 하나는 억울함. 뭐하나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남자새끼들은 허락도 없이 손을 놀려댄다. 그저 '나'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가 유부녀이건 애가 있건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흔히 기자들은 성추행 이슈들을 기사화하면서 엄청나게 괴로워하는 여성의 사진을 썸네일로 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좌절하고 있는 듯한 여성이 담긴 사진. 나는 (아마도 남자로서는) 적지 않은 수의 성범죄 피해자를 접했다. 그런데 썸네일에 묘사된 것과 같이 좌절하거나 절망에 빠진 여성들은 접해본 적이 없다. 그들이 남성인 나를 경계해서 강한 모습을 가장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그런 것들로 무너질 정도로 약하지 않다는 게 내게는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인터뷰를 요청한 그 역시 덤덤했다. 몇분 전에 '그런 일'을 당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몇분 전에 그런 일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우리는 상상하기가 힘드니까. 우리는 농담 따먹기도 하고 게임 이야기도 했다. '그 일'을 떠올리거나 입에서 뱉으려할 때 눈이 촉촉해졌던 것이 그나마 극적인 장면. 이런 일은 그를 놀라게할만한 엄청 충격적인 일이 될 수 없다. 반복되어왔던 것이라 익숙하다. 하지만 익숙한 상처라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니 눈에 무엇이 맺힐 수 밖에.


그는 딱히 자신이 사회적으로 꿀리는 게 없다고 말했다. 외모도 딱히 빠지지 않고, 직장도 좋아서 돈도 왠만큼 벌고, 학벌이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 이렇게 노력을 했는데, 그리고 그런 것들을 얻으면 그 더러운 손들로부터 해방될 수도 있다고 어렴풋이 기대했는데, 해방되기는 개뿔. 더러운 손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더 열심히 살아서 더 높이 올라가면 그 손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강한 여성 몇을 꼽아봤다. 힐러리 클린턴, 그는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온갖 성적인 비난들에 휩쌓였다. 오프라 윈프리, 마찬가지. 앨런 드 제네러스, 그는 성소수자다. 그들은 보이는 손에선 어떻게 벗어났을지도 모르겠으나(이 부분도 사실 알 수 없다), 보이지 않은 손으로부터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쥐뿔도 없는 나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그런 손으로부터 조금의 해코지도 당한 경험이 없다. 


여성들이 당하는 성추행, 성희롱들은 실제하는 것에 비해 과소하게 노출된다. 피해자는 쉽게 누군가에게 자신의 피해를 고백하지 못한다. 애인에게도 말 못하고, 부모에게도 당연히 말하지 못한다. 가까운 친구에게도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속을 털어놔도 공감받지 못하고 손가락질 받거나, 되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해자는 침묵을 선택한다. 내게 피해를 고백했던 그 역시 10년간 아무에게도 자신의 피해를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목이나 형식은 인터뷰였지만, '그 일'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가까웠다. 나는 '그 일'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려고 했고, 그는 최대한으로 도와줬다. 인터뷰한 내용은 정리한 뒤 브런치와 스팀잇에 올릴 예정이다. 제보자도 익명, 가해자도 익명. 누군가를 고발해 사회에서 묻히게 하려는 고발 목적의 인터뷰는 아니다. 다만 이런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한번 더 이야기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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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TED 강의가 여러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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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스 에크로비쉬: 성폭력 피해자가 침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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