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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Feb 25. 2018

성범죄를 다루면 흔히 달리는 '무고 걱정'에 대한 단상


성범죄를 다루는 각종 글을 지금까지 많이 써왔고, 댓글도 이 나라에서 글쓰는 사람들 중에서는 많이 받아본 쪽에 속하지 않나 싶다. 일단 욕부터 시전하는 놈들이 제일 많지만 공감한다는 투로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정말 이런 일은 없어져야한다고 강하게 외친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매번 등장하는 2절이 있다.


"성범죄 피해 못지 않게 무고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하면 안될텐데 말이죠."

무고로 인한 피해에 대한 걱정이 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그가 앞서 했던 1절을 의심하게 된다. 그 2절을 말하기 위한 1절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고, 2절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면 애초에 댓글을 달지도 않았을 거 같거든. 아무튼 그들은 성범죄 피해자보다도 혹시 모르게 누명을 쓸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더 걱정한다. 피해자에 이입하기보다는 자신이 남성이라는 사실에 더 이입하는 것. 피해자도 그들에게 있어선 피해자이기게 앞서 여성이다. 그리고 그들이 규정하는 '여성'은 자신이 성범죄 피해자라고 구라를 치면서 돈을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는 족속들이다. 


이들은 피해자가 성범죄 피해를 고백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성범죄 피해를 공공연히 고백할 때 그 사실은 자신을 사랑으로 길러준 부모를 포함한 가족들에게도 전해지고, 친구들과 언론들에도 전해진다. 고백을 한 순간부터 사람들은 고백 당사자를 '성범죄 피해자'로 규정한다. 그리고 의심의 시선 내지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생각으로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한다. 앞으로의 인생은 지금까지와 반드시 다르게 흘러간다.


멀찍이서 보는 입장에서는 '단지 누구를 엿먹이기 위한 선전선동'으로 보일지라도, 성범죄 피해 고백은 인생을 걸어야 할 수 있는 무엇이다. 사람들이 도와줄지도 알 수 없고, 인생을 걸었는데 기사화 하나 안되고 짬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보복할 수도 있다. 


이런 리스크가 분명한데 뭔 성범죄만 나오면 꽃뱀 타령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깟 돈 몇 푼 챙기려는 사소한 이유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있기야 하겠지. 정말 간혹 있기야 하겠지. 그런데 그 '간혹' 때문에 분노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것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그들이 성범죄에 관해서만 이토록 열정적으로 '무고'에 대해서 걱정을 한다는 거다. 성범죄에 관해서는 '과연 정말 저 혐의를 쓰고 있는 사람이 범죄자가 맞을까?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데카르트마냥 모든 것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성범죄가 아닌 다른 범죄에 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혐의자들에게 야박하다. 그때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결백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그때만은 고려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하니 남성들이 서로에게 이상할 정도로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밖에. 가랑이 사이에 달린 것들이 소리 없이 서로 어떤 파장을 주고받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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