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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Feb 04. 2018

이런 종류의 사내 성추행이 존재한다. ver.2018

어떻게 예방하나?

최근 독서 모임에 임시로 오신 두 분은 여성이며 직장인이셨다. 우린 책 얘기는 안하고 여성들이 직장에서 어떤 일들을 당하는 지 거진 2시간 동안을 떠들었다. 어떤 종류의 일들이 회사에서 발생하는 지 기억나는대로 정리해보겠다. 아래는 사내에서 여성들이 당하는 일들을 나열한 것으로 어떤 것은 성희롱에, 어떤 것은 성추행에 해당하고, 어떤 것은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아닐지라도 여성 혐오(misogyny)에 해당한다.


1. 남성 상사의 잦은 스킨십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한다. 여성 직원과 나란히 앉아있을 때 직원이 등을 대는 의자에 가볍게 손을 올려놓는다는 가 하는. 그러다가 2차로 빛이 없는 노래방을 가던가하면 그때부터 과감해진다. 허리에 손을 올린다던가, 허벅지에 손을 올린다던가. 직원들 다 있는 술집에서 여성 직원들의 손에 입을 맞추기도 한다.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는 스킨십을 쉽게 쳐내기 힘들다. 직장 상사이기에 기분 나쁘게 했다가 어떤 식으로 보복이 돌아올 지 알 수 없다. 그가 회장이나 사장보다 직급이 낮은 자라해도 상황은 변치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쯤 되는 사람이 성적인 요구(포옹, 손깍지 요구)를 하면 직원 입장에서 어찌 저항하겠나. 인사팀이 회장님보다 일개 직원을 더 챙겨줄 리도 없는데 말이다.


박삼구 회장

회사 내 룰은 회장님에게 우호적일 수 밖에 없으니까 논외로 하자. 회사 바깥에 손을 벌리면 뭐가 좀 달라질까? 글쎄. 그다지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검찰이나 경찰이나 판사들이 아시아나 승무원을 더 챙겨줄까, 회장님 소리 드는 사람의 먹고사니즘을 더 챙겨줄까? 성희롱과는 무관하지만 대한한공 조현아 이슈만 보더라도 이 나라 사법 시스템이 누굴 위해 설계되었는 지는 너무도 뻔하다. 오해하지마시라, 이미 망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고쳐야될 게 많다는 이야기다. 


1.1 또다른 공범: 인사팀

회장님보다 낮은 직급의 누군가를 인사팀에 고발한다하더라도 인사팀은 '화해'를 주도하며 문제는 최대한 작게 봉합하려한다. 10만엔 받고 위안부 이슈를 덮으려했던 박근혜 정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한국 조직 내 인사팀은 어떤 정의(justice)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 짬밥 그다지 먹지도 않은 중앙대 운동 동아리에서조차 피해자를 제명하는 식으로 움직임이 일었었다. 어떤 '한 사람' 때문에 동아리에 피해가 와서 문제라는 식으로 의견이 모아졌는데 이때 '한 사람'은 놀랍지만 별로 놀랍지 않게도 성추행 피해자였다.


중앙대 운동 동아리


인사팀은 회사의 리크스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여기에서 회사가 생각하는 리스크는 성범죄 피해자다. 가해자는 이 사건을 덮으려하고, 피해자는 이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 한다. 회사의 명예와 이익을 생각하는 쪽에서는 이 문제를 크게 만드는 이를 당연히(?) '리스크'로 여긴다. 그렇기에 성범죄 피해를 조사하고 가해자를 퇴사시키기보다는 피해자를 회사에서 아웃시킨다.


가해자를 퇴사시키고 피해자를 회사에 남기는 옵션은 왜 배제될까? 가해자를 해고시키는 것이 사실 회사가 할 수 있는 최대다. 언론에서는 그 해고에 박수를 쳐줄 것이고, 여성계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거라 짐작한다(상상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더 할 수도 있다. 사건의 경위를 면밀히 파악해 검찰이나 경찰이나 언론에 던져줄 수도 있지. 이렇게 하면 주가 확 뛸걸? 또, 가해자를 퇴사시키면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법정 공방이 있더라도 그 건은 회사와 더욱 멀어진다. '조사'등으로 피해자를 도와주면 "회사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어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안한다. 왜? 여기서 우리는 성범죄가 발생하는 상황 그 자체를 좀 더 면밀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성범죄는 기본적으로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기에 힘이 더 쎈 쪽에서 힘이 덜한 쪽으로 향한다. 물리적 힘이 강한 남성은 힘이 없는 여성에게, 정치적 힘이 강한 누군가는 그 힘이 덜한 쪽에게.


사내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가해자는 회사에서 힘이 있는 쪽이고, 피해자는 반대다. 사내에서 힘이 있다는 건 회사에서 담당하거나 기여하는 부분이 많다는 뜻. 권한이 넓다보니 직급이 낮은 자보다 아무래도 대체하기 어렵고, 가해자는 회사의 주요결정자거나 주요 결정을 하는 자들과 아무래도 친하다. 팔은 자연스레 안으로 굽게 된다. 회사를 위해서, 그리고 '친구'를 위해서. 


해서,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는 나간다. 죄진 자가 오히려 처벌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 이런 현실적 상황이 있으니 피해자가 피해 당한다하더라도 고발하기가 쉽지 않다. 법 시스템은 느리고, 회사는 도와주지 않고, 그 와중에 생계는 막힌다. 어금니 꽉 깨물고 참는 게 피해자에게 이득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 때문의 다수의 성범죄들이 수면 위로 나오지 못하고 묻히는 것이고.


성 이슈가 회사에 진짜 리스크가 된다는 믿음이 자리잡히면 인사팀도 사내 성희롱 피해자에 더 집중하게 될 거라 본다. 가해자를 당장 쫒아내지 않으면 회사가 당장 ㅈ될 수 있는 위기의식이 회사의 당연한 상식으로 자리잡게 되면, 그때는 인사팀이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를 감싸고 가해자를 '처리'할 거라 본다. 


그런데 지금으로선 그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하다못해 지금 아시아나 회장이 뻘짓한 게 여러 입들을 통해 명백해지고 있음에도 법적으로나, 법 외적으로나 마땅한 대책은 없다. 막말로 아시아나의 박삼구 회장이 직원들한테 고소를 당하면 징역이라도 살 지 의문이다. 최대로 집행유예정도 뜨겠지. 그렇다고 법 외적으로 이들을 처벌할 수나 있나. 구매자 입장에서 아시아나를 불매를 할까도 싶지만 눈을 돌리면 대한항공의 조현아가 있다. 이 나라의 대기업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매번 하는 말이지만 대한민국만큼 대기업이 장사하기 좋은 나라가 또 없다.


대한항공 조현아


2. 회식서 2차에 가지 않을 때의 불이익

남성이 2차를 가지 않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핀잔을 준다. "여자는 회사의 꽃", "여자가 있어야 분위기가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자들은 어찌됐건 2차에 여성이 참여하게끔 만든다. 남성 부하들에게 2차 참석을 요구할 때의 그것과는 다르다. 남성들에게는 군대식 우정을 강조한다면 여성들에게는 기쁨조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 


그렇게 여성이 2차에 참석하면 여기서 또 1의 문제가 발생한다. 회식이 길어질 수록 보는 눈은 줄어들고, 남자들은 술에 취한다. 그리고 자신이 술에 취했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있음에도 손을 비이성적으로 놀린다. 이 나라 판사님들이 술에 취했다하면 관대하게 처리해주시는 걸 잘 아는 분들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런 2차에 참여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이어진다. 그 불이익이 어떤 것인지는 굳이 이 글에서 길게 다루지는 않겠다. 


3. 여성 부하의 섹스 라이프에 대해 언급하는

나는 섹드립이란 게 다 나쁜 거라는 생각은 안한다. 다만, 섹드립이 가능한 조건은 있다고 생각한다. 섹드립은 서로 주고받을 수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가령, 20년지기 친구간에 암묵적으로 상호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성에 관해서 토크를 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20년지기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래포가 쌓였어도 그건 가능하다. 그런데 상사가 부하에게 섹드립을 칠 때, 부하도 상사에게 섹드립을 칠 수 있나? 없다. 이런 건 암기하는 거다. 없다. 꼭 이런 거에서 예외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지말자.


영화에 나올법한 엄청 스페셜한 상사와 부하 간의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당신이 상사라면 '부하들은 내가 섹드립 치면 좋아하던데'라며 딸딸이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니가 상사라 어쩔 수 없이 웃는 거니 착각하면 안된다. 


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내에서도 섹드립은 난무한다. 여성 부하의 섹스라이프를 묻는다던가, 아무렇지도 않게 섹스 라이프를 언급하는 것. 가장 흔한 섹드립은 이거다. "남자친구랑은 어디까지 가봤어?". 그 외에도 남자친구랑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혹은 갔다오면 거기에다도 뭔가 피드백을 남겨야한다는 강박이 있는지 불쾌한 말들을 던져댄다. 부하가 여행갈 때 도움이 되고 싶으면 "조심히 다녀와"라 한마디 해주거나 봉투에 몇십만원 넣어서 주면 된다. 에바는 금물. 


4. 커피는 여자가. 막내 남성이 있어도 커피는 여자가.

중요한 사업 파트너가 왔을 때, 막내가 남성이어도 어찌됐건 여성을 찾아내서 커피를 타오게끔 시킨다. 세미나나 시상식 등에 회사 동료들과 가면 수상자가 있잖나. 수상자에게 꽃을 전달하는 역할에도 여성이 주로 배치된다. 함께간 동료들 중에 막내가 남성이어도 무조건 여성으로다가.


5. 여성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사장님이 여자에 약하잖아.”

여성이 업무 평가를 받으면 그에 대해서 실력을 잘 인정해주려하지 않는다. 좋은 평가를 받아도 "사장님이 여자에 약하잖아"는 식으로 직원의 여성성을 강조한다. 대학 사회에서도 동일하다. "교수님이 여자한테 약하잖아", "그 선배가 여자한테 약하잖아" 등등. 실력을 곧 죽어도 인정을 안하고, 여성을 '여성'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6. 발표를 하면 블라이드앱에 외모 평가글을 올리는 남성 직장인들

블라인드라는 익명 앱을 다들 아실거라 생각한다. 여성 직장인들은 자신이 한 발표 뒤에 나름의 피드백을 얻어보려 블라인드앱을 키는데 거기에는 외모평과 얼평뿐이다. 발표자의 외모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또 그에 대해 답을 해주는 현장을 목격한달까. 발표 내용에 대한 언급은 1도 없다. 이쯤되면 업무 관련 피드백을 블라인드에서 찾는 게 사치일 정도. 


7. 부하 남성이 여성 상사를 직급을 안부르고 누님으로 부름.

자신보다 상급자라고하더라도 여성이면 직급을 부르기보다는 '친근하게 접근한다'는 명목으로다가 "누님"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남성 상사에게는 이상하게도 친근하게 대하지 않는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거 완전 남성혐오자 아닌가 싶기도 한데.




다양한 방식으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만, 나는 이 문제가 상상력의 한계 때문이라 본다. 여성을 여성으로밖에 보지 못해서 이 사단이 나고 있다. 여성이 여성이 아니면 무어냐, 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 그 사람은 직장인이고, 팀장이면 팀장이다. 여성이라는 속성이 그 사람을 반드시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여성을 여성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자들은 여기에서 막힌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가졌건 일단 여성으로만 본다. 그러니까 발표를 하면 외모부터 보고, 여성인 동료가 술자리에 있으면 만지려고 든다. 동료가 아니라 여자거든. 소위 유리천장이란 것도 이런 것 때문에 생긴다고 본다. 회사 내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시선의 한계랄까.


그런 시선을 바꾸는 것이 단기간에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위에서 따로 언급한 것처럼 회사 차원에서나 법 차원에서 제대로된 처벌을 내려져야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성범죄 등이 예방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아직 법적으로나 대한민국의 성 관념적으로나 갈 길이 멀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입법주체인 국회의원들은 이 문제에 있어 굉장히 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판검사들은 그보다 더 뜨악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법만 따닥따닥 외우던 기계적인 인간들이 성 이슈에 예민하길 기대하는 건 코미디지. 새로운 변수인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이 차라리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대중들이 그나마 위에서 언급한 주체들보다 가장 예민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글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남성 직장인들이 그 대중들 내에서 큰 지분을 차지한다. 망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갈 길이 멀다는 거지. 여튼 이 글은 여기에서 마무리된다. 이런 종류의 사내 성추행이 있다, 는 결론(?)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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