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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l 11. 2015

이별한 자들을 어떻게 위로해줘야하는가?



"봄날"

봄날이란 말이 있다. 보통 연인이 생길 때 '봄날이 왔다'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솔로 생활이 길어지면 '나의 봄날은 언제 오나'라는 식으로 한탄하기도 한다. 이 봄날은 '청춘'이란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유독 연애 카테고리에서 봄날이란 단어가 자주 쓰이는 걸 보면 연애가 우리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중대하다는 것 아니겠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3월의 이별, 4월의 이별

그런데 정작 내 주위에선 4월의 봄이 되었거늘 커플이 되는 사람들보단 솔로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는 동아리 술자리를 갔는데 연애 잘하고 있던 놈이 혼자가 되었다는 카더라 통신을 들었다. 봄이 헤어짐의 계절인지 만남의 계절인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그 전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아이가 카톡으로 자신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왔으며, 그전에는 미국에 살고 있는 한 친구가 페이스북 메세지로 자신이 이별해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 외에도 나한테 직접 말은 안했지만 페북에서 자신이 솔로가 되었다는 한탄하는 류의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전남친에 대한 분노를 페북에다가 풀어내기도 했다. 그녀는 '너가 고작 할 수 있는 게 그정도니? 실망인데?'하는 싸이월드 식의 허세 글을 적었다. 어떤 에피소드가 있는 지 궁금해진다. 그 남자는 뭘 했길래 '그정도'라는 평을 들었을까. 여하튼 유독 3~4월에 이별이 많다. 적어도 내 주위엔(마가 꼈나). 



이별한 자들의 감정 상태

주위에 이별이 많다보니 이별한 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 걔 중에는 슬퍼하는 애들도 있고, 또 분노하는 애들도 있다. 그런데 대체로 그 두 감정이 섞여있다. 슬픔만 있는 놈도 없고, 한없이 분노만 하는 놈도 없다. 좀더 한 감정이 주를 차지할 뿐이다. 그 외에도 슬프지만 시원해하는 아이도 있다. 헤어짐을 완전히 수용한 케이스다. 흔치 않은 케이스다. 



이별한 자들을 어떻게 위로해줘야하는가?

이별한 지 얼마 안된, 감정에 휩쌓인 자들을 위로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슬퍼하거나 분노에 쌓인 아이들을 위로하는 일은 쉽지 않다(링크).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들어주는 것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평가도 있어선 안되고, 감정이입이 있어서도 안된다. 많은 이들이 연애상담을 할 때 실수하는 부분이다. 연애상담을 누군가가 요청하고 만약 당신이 연애상담을 해주는 상담자가 되었다면 '너가 잘했네', 혹은 '너가 못했네'식의 평가를 해선 안된다. 평가는 절대 금물이다. 그저 피상담자(라는 표현이 어색하긴한데)의 말을 듣고 현상을 명확하게 파악하게 해주는 게 좋다. 상담자는 선생님이 아니다. 결국 답은 피상담자에게 있다. 상담은 상담자의 윤리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작업이 아니라 피상담자의 멘탈 회복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피상담자의 연애를 비판하며 우쭐대선 안된다. 반대로 피상담자를 칭찬하는 것도 주의해야한다. 그 평가는 상담자가 아닌 이별한 자들의 몫이다. 그 문제에 상담자가 먼저 답을 줘버리면 피상담자는 결코 전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답은 스스로 찾게 해야한다. 상담자는 좋은 질문만 던져줘도 해야할 몫은 다 한 것이다.


또 실수들을 하는 게 감정이입이다. 이는 평가를 기본 전제로 한다. 평가는 앞서 썼듯이 상담자가 해선 안될 것이다. 그런데 평가를 하고 거기에 감정이입까지 하게되면, 피상담자는 그 감정의 골에 더 빠질 뿐, 이별의 고통에서 헤어나오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별한 자와 함께 전연인을 비난하는 것은 물론 잠깐 기분을 좋게하기는 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이별한 자가 다시 집에 들어와 혼자가 되면 이별의 고통은 언제 사라졌냐는 듯 다시 돌아온다. 그러니 상담자가 해줄 것은 함께 욕을 해줄 것이 아니라 그 이별을 통해 다음 연애를 더 건강하게 하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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