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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l 11. 2015

이별을 극복할 때 도움이 되는 생각

<500일의 썸머>의 한 장면. 주인공은 이별한다.

연애 칼럼이라는 카테고리의 포스트의 스타트를 이별이란 소재로 시작했으니 이 소재로 좀 더 글을 써보도록 하자. 첫 글은 이별 한 자를 극복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하는 태도에 관한 글이었다(링크). 관심 있으시면 보시라.

이 글의 타겟

이 글은 이별을 했으며 상대와 두 번 다시 연인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이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인생들을 향한 글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별을 했다 하더라도 재회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재회를 하고 싶어한다면 이 글은 당신을 위한 글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이별을 수용하는 문제

좋게 헤어졌건, 안 좋게 헤어졌건 이별이란 상황이 닥쳤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재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우리가 취해야 될 선택은 하나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 물론 쉽지 않다. 한 때 모든 것을 공유했던 사람을 잘라내는 것은 살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만큼 고통스럽다. 그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수술은 아프더라도 꼭 진행해야 한다. 여기서 수술은 이별의 수용이다. 재회가 불가능하다면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별 뒤에 주인공은 기대를 품고 전연인-썸머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발견한다.


이제 그 혹은 그녀가 우리와 관계없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뼈아프다. 안다. 힘들다, 안다.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나도 겪어 봤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이제 그(녀)는 우리와 관계없는 사람이다.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선 우선 이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녀)는 우리와 이제 아무 상관도 없는 사이라는 것. 

그(녀)는 남이다

그(녀)는 이제 남이다. 놓아줘야 한다. 아니, 그(녀)는 이제 떠나갔다. 혹은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은 이미 떠나왔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 예전처럼 함께 카페를 갈 수도 없고, 하릴없이 공원에서 산책을 할 수도 없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그(녀)의 삶에 간섭할 수 없다. 이제 남이니까. 아무 관계도 아니니까. 


이 둘은 한때 사귀었다. 썸머는 결혼을 했고 임신도 했다.

우리나라의 싸구려 드라마들을 보면 '멋있는 남자'나 '멋있는 여자'들이 막장 테크트리를 타는 전 연인을 구원해준다면서 잔소리를 하는 상황이 연출되곤 하는데, 굳이 그런 거 할 필요 없다. 굳이 그런 걸 해야 한다면 인간 된 도리로서 해야 하는 것이지 남성이나 여성으로서 접근해선 곤란하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당신이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녀)에게도 그(녀)를 도와줄 친구는 많다. 굳이 당신이 나설 건 없는 게다. 놓아주자. 간섭하지 말자. 어차피 남이다.



이별이 우리에게 주는 여러 관념, 망상들

이별 한 뒤에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한다. 그것들을 러프하게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정말 나를 사랑하긴 했었나?  다른 사람이 생겨서 나를 떠난 건가?  잘 지낼까? (행복했으면 좋겠다 or 힘들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잘해주는 사람은 또 못 만날 거야.  내가 매력이 없어졌나?  아직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랑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그러면 다시 만나야지 or 그러면 이번에 내가 걷어차야지)  친구들한테 내 욕을 하고 있진 않을까? 


이별의 방식이 어쨌거나 이별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감정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들 외에 다른 생각들도 할 수 있긴 하지만, 분명 적어도 한 번쯤은 이런 생각들을 했을 거다. 상대가 바람을 피워서 헤어지게 됐건, 좋게 헤어졌건 나쁘게 헤어졌건, 상대가 잠수를 타서 불가피하게(?) 헤어지게 됐건 어쨌건 말이다. 



온갖 질문들 던져봤자다. 
많은 경우, 답은 알 수 없다

고민이 합리적일 수 있을 때가 있다. 그 고민에 애매모호하게라도 답이 있을 때다. 하지만 애매모호하게라도 답이 있더라도 그 고민이 합리적인 건 아니다. 그 고민의 결과로 얻어지는 결론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때 그 고민은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런데 이별 후에 우리가 생각하는 온갖 질문들에는 정답이 없다. 애매모호하게라도 없다. 


'상대가 나를 정말 사랑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혹자는 정말 누군가가 '나'를 사랑했다면 그것을 의심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정도로 상대가 '나'를 사랑하면 확신이 든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건 우리의 느낌일 뿐이며, 정작 그 질문의 답을 가지고 있는 건 그 상대뿐이다. 아니..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 상대도 사실 그의 감정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감정을 완벽히 표현할 수 있는가?). 설령 그 사람에게 그의 감정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쳐도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가 '사랑했어'라고 한다쳐도 그것을 믿기 어렵다(신뢰할 수 있는가?). 아니면 '사랑하지 않았어'라고 하면 믿을 건가? 


이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답을 들은 들 우리는 그다지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했어'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반사로 '그럼 왜 나랑 헤어짐?'이란 의문이 꼬리를 물을 거고 '사랑하지 않았어'라고 하면 '왜 진작 나랑 사겼냐?'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어떤 대답을 들은 들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진 않는다. 결국 또 수렁에 빠질 뿐이다.


다른 질문들도 마찬가지 알고리즘으로 접근해보면 우리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질문이란 걸 알 수 있다.



다시 말한다. 
그(녀)는 남이다

그(녀)가 우리를 사랑했는지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애초에 잘못된 질문을 던지니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게다. 알 수 없는 것은 궁금해할 필요도 없으며, 알아도 그다지 소용없는 것도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그대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얼마 만에 도착할 수 있는지는 그다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그런 거 알아봐야 결국 고속버스나 KTX란 교통 편을 이용할 테니까.


그러니 물음표와 슬픔과 분노는 가능하다면 걷어들이라. 물론 쉽지는 않다. 그런 척이라도 해보자(이 TED강연이 당신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모두 극복한 척, 모두 초월한 척 해보자. TED 강연자에 의하면 그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별한 상대를 욕하고 비난하고 의문을 품는 것보단 그게 더 당신의 멘탈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도 그대들이 빠져있는 그 구덩이에 들어가 있어봐서 안다. 어쩌면 지금도 그 구덩이 안에서 바로 당신 옆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나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미 떠나간 자를 비난해봐야 당신에게 좋을 건 하나도 없다. 그러니 뒤는 그만 보고 앞을 보자. 


No Contact Rule

미국엔 이럴 룰이 있다. 이별을 한 뒤에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이다. 연애 많이 해본 아해들은 아무래도 이런 걸 잘한다. 그들은 신속하고 누정확하게 수술을 집도한다. 이별을 하자마자 페북 친구를 끊고, 비트윈을 지우고. 



<섹스 앤 더 시티>에서 한 여인이 이별을 당하자 친구들은 그녀를 위로해주고자 한다. 그래서 친구들은 전 연인과 관련된 모든 물건들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그들은 모든 물건들을 박스 안에 넣는다. 그가 줬던 편지, 그가 줬던 선물 등 모든 것들을 그 박스 안에 넣는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것을 불로 태운다. 


하지만 굳이 그대가 <섹스 앤 더 시티>의 그 누나들처럼 할 필요는 없다. 첫째로 그건 너무 손이 많이 가고, 둘째로, 전 연인 잊겠다고 하다가 집을 날려버릴 수도 있다. 요점만 챙기면 된다. 그(녀)와 관련된 것들을 눈에 안보이게 치우는 것.


사진도 지워야 할까? 

내 친구 중에 현재 1년인가 2년인가 연애하는 놈이 하나 있다. 그 친구는 그전에 1~2년을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사귈 당시에 찍었던 사진들을 아직까지 지우지 않고 있다고 했다. 물론 보지도 않는다. 또 다른 친구도 있다. 이 친구는 여잔데, 그녀는 남자들과 헤어질 때마다 사진을 지웠다고 했다. 당시에는 그게 후련하고 좋았다고 했지만, 막상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찍었던 사진들이 아쉽다고 하더라. 전 연인과 찢어졌더라도 그 때의 시간은 결국 우리 삶의 일부 아닌가. 여하튼 잘 생각해보고 지우거나 말거나 하시라.


새로운 인연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힌다는 노래가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힌다고. 실제로 내 주위에 사람들을 보면 그런 식으로 이별의 아픔을 걷어낸다. 하지만 이별 후에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선 곤란하다.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했다가 상처를 더 벌려버릴 수도 있다. 과거의 만남과 헤어짐을 충분히 소화하지 않고 다음 연애를 시작한다면 그 당시에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같은 사유로 또 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또 아플 게다.


Summer(여름)가 가고 Atumn(가을)이 왔다.

힘들겠지만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지금의 고통은 차츰 옅어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질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렇게 된다. 숨도 못 쉴 것 같고, 죽을 것 같아도 결국 시간이 인생을 '살만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니 여유를 가져도 좋다. 슬프다면 슬픔을 충분히 소화하자. 지금 소화하지 않은 슬픔은 언제건 다시 튀어나온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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