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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Oct 06. 2015

[정보비대칭] 2. 고3 vs 대학


시작하기 전에

앞선 글 <[선택설계] 한국의 정보 비대칭 사례 1.> 에서는 기업과 취준생 간의 정보 비대칭을 다루었다. 해당 글이 내 예상보다 관심을 끌어 놀랐었다. 인기를 끌거라는 생각은 별로 못했던 글이기 때문이다. 정보 비대칭에 관한 글이 흥했던 것은 내게 두가지 측면으로 받아들여졌다. 첫째, 사람들이 정보 비대칭에 관해 아예 인지도 못하고 있다. 둘째, 어렴풋이 인지는 하지만 명확히 그것을 구체화해서 문제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여, 앞으로 이 주제로 여러 글을 쏟아낼 계획이다. 그런데 내가 계획을 세워놓고 글을 쓰면 항상 계획대로 쓰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니 글을 기다리지는 마시고, 만약 기다리신다면 댓글로 '다음 글도 내놔라'라는 식의 메세지를 남겨주시면 좋을 것 같다. 기프티콘도 좀 쏴주면 더 좋고(...)


그리고 머릿말이 [선택설계]로 되어있었는데 정보 비대칭의 문제는 사실 선택설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추가, 이 글은 원래 네이버 블로그에 업로되었던 글이며 해당 글의 머릿말은 [선택설계]였다). 많은 정보가 공개되면 특정 사람들이 더 쉽게 선택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정보 공개의 목적은 선택을 유도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더욱 용이하게 하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방향으로 선택을 유도하게끔 한다'라는 의미의 '선택설계'와는 의미가 다르다. 차라리 칼 선스타인의 <넛지> 후속작인 <심플러>의 '심플러'가 차라리 정보 비대칭에 관해선 더 적절한 머릿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정보 비대칭에 관한 연재글의 머릿말은 '심플러'가 될 것이다.


'심플러'가 무엇인지에 관해선 따로 찾아보시던가, 책을 사보시는 걸 권유한다. 적어도 이 포스트에선 '심플러'에 대해 따로 설명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다만, 글에서 <심플러>의 메세지가 계속 담기긴 할 것이며 기업과 취준생의 정보 비대칭에 대해서 다룰 때도 <심플러>의 메세지를 담아놨었다. 러프하게 <심플러>를 요약하자면, 정보가 공개 되지 않을 때 다수의 비용이 발생하고, 정보가 공개될 떄 다수가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심플러>의 후속작인 <와이저>에서도 그대로 담겨 있다. <와이저>는 조직 경영에 관한 책인데, 리더가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통합할 수 있을 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당연한 얘기고 어디서나 지켜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조직의 구성원들은 리더의 반감을 살까 두려워 자신이 아는 것을 밝히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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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쓸 글의 리스트는 이렇다. 
1. 취준생 vs 기업
2. 고3 vs 대학
3. 대학생 vs 대학원
4. 대학생 vs 법학전문대학원
5. 흙수저 vs 금수저


해당 리스트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대학생을 다루다가도 다시 취준생을 다룰 수 있다. 오늘(2015.9.30) 애플의 아이폰 6s와 관련해 이슈된 것이 있다. 아이폰 6s와 6s Plus에 16nm의 TSMC AP와 14nm의 삼성 AP가 혼용되어 사용된 것으로 밝혀진 것. 아이폰 구매 예정자는 자신이 아이폰을 살 때 특정 AP로 구성되어있는 아이폰을 선택할 수 없다. 여기서는 구매 예정자와 애플 간의 정보 비대칭이 발생한다. 그래서 구매 예정자는 구매를 하기전에 '특정 AP로 구성되어있는 아이폰을 사는 방법' 따위를 찾아헤매느라 인터넷을 돌아다닐 것이다. 낭비다. 애플이 아이폰 박스에 내용물을 공개해놓는다면 정보 비대칭은 발생하지않고 아이폰 구매 예정자는 자신이 원하는 구성의 아이폰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AP가 다른 AP보다 기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아이폰 중 일부는 재고처리를 해야될 것이기에 애플이 그 내용물을 공개할 일은 없을 것이다. 소비자는 같은 값을 지불하며 복불복을 하고, 애플은 같은 액수의 돈을 받고 서로 다른 아이폰을 쥐어준다. 지구촌 곳곳에 정보 비대칭이 있기에 미리 정해놓은 리스트를 떠나서 갑자기 애플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떡밥을 던져봤다. 애플은 TLC와 MLC 때문에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이 회사 겁나 문제 많다. 





이 글에서 다루는 고3

모든 고3이 내신과 수능에 열을 내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고3들이 내신과 수능에 올인하긴 하지만, 실기에 올인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여기까지 언급하는 학생들은 모두 대학 입시를 목표로 삼고 있는 학생들이다. 고3 중에는 대학을 가지 않고 졸업한 뒤에 가업을 잇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학비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이 글은 고3과 대학간의 정보 비대칭을 다루기에 고3들 중에서도 대학입시를 목표로하고 있는 고3들만을 다룰 예정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고3들이 대학에 제공하는 정보- 수시

고3들에게 수시는 두번 있다. 한번은 1학기, 2학기에 각각 수시를 지원할 수 있다. 지원횟수에 제한은 없으며, 원하는 어떤 대학에든 지원할 수 있다. 수시에 지원할 때 학생들은 학생기록부를 제출한다. 학생기록부에는 학생이 다녔던 고등학교의 이름(고등학교를 통해 사는 위치도 파악할 수 있다), 고등학교 성적과 읽은 책들, 봉사활동 내력, 읽었던 책들, 담당 교사의 학생 평가 등이 담겨 있다. 학생기록부 외에는 대학마다 전형이 다르긴한데, 대체로 자소서와 면접이 있다. 자소서에서 역시 학생들은 자신들의 삶을 자소서에 담으며 자신의 정보를 대학에 알려준다. 


대학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추상적이며
추상적 정보들은 학생들의 베팅을 유도한다

고3들이 대학들에 제공하는 것에 비해 대학들이 학생들에 제공하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학교의 이름, 학교의 주소, 전형 일정, 특정 전형에서 내신과 자소서과 면접에서 얼마나 점수를 반영하는 지 등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2016년 서강대 알바트로스 전형은 아래와 같다. 이 전형은 2016년에 대학 1학년 생활을 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즉, 2015년의 고3인 학생들 외에도 이미 졸업한 타대생들도 해당 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 




추상적인, 너무도 추상적인

<지원자격>을 통해서 졸업자와 졸업예정자가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전형방법>을 통해서 서강대의 평가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히 추상적이란 것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외국어가 뛰어나며 국제적인 역량"을 갖춘 인재를 뽑는다고하는데 "외국어"까지는 점수나 회화 실력으로 판단한다고 쳐도  "국제적인 역량"은 대체 무슨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건지 파악할 수 없다. 


또한, 1차 때 자소서로 100%를 평가하는데, 그 평가 기준 역시 굉장히 불분명하다. <전형방법>에는 "서류평가는 학교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추천서, 활동보충자료를 종합적으로 정성평가함"이라고 적혀있는데, 이러한 말만 가지고는 지원자들은 자신의 합격 여부를 확신할 수 없으며 가늠 조차 할 수 없다. 


어떻게 종합적으로 정성평가한다는 것인가? 대학이 주는 정보만 가지고는 교수들의 기분에 따라 상식에 어긋나는 주관적 잣대에 따라 학생들의 합불을 결정하는 지, 다른 요소로 합불을 결정하는 지 판단하기 어렵다. 오해하지말길 바란다. 서강대가 교수들의 기분에 따라 상식에 어긋나는 주관적 잣대에 따라 학생들의 합불을 결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서강대가 제공하는 정보만으로는 여러가지 의심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말하는 '합격기준'에 불분명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서강대를 예로 들긴했지만, 모든 대학들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정보비대칭에 의한 합법적 도박: 수시

모든 말들이 추상적이고 불분명하기 때문에 누가 지원해서 합격해도 이상할 것이 없고 누가 지원해서 떨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게된다. 붙으면 로또고 떨어져도 돈만 날렸다고 얘기를 한다. 합불을 가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모든 말들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희망을 품은 많은 자들이 수시에 지원을 하게 된다. 수시전형으로 엄청난 액수의 돈을 벌기에 대학 입장에서는 해피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돈을 '불확실한 곳''투자'하게 된다. 고3들 대부분이 수시에서 이런 도박을 하고 있다. 왜? 정보 비대칭 때문에. 


만약 학생들이 '지원해봐야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라는 정보를 얻게됐다면 애초에 지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들은 이런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애초에 자소서만 가지고 판단하는데 그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아니다. 가능하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학생들의 수시 도박(베팅)을 줄이는 방안
정보공개가 핵심이다

수시 지원이 진행 중일 때 대부분 대학들은 실시간 경쟁률을 제공하지 않는다. 즉, 수시를 지원하는 입장에서 해당 전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고있는 지 알길이 없다. 즉, 눈치 게임을 하게 된다. 대학측이 실시간 경쟁률을 제공하며 "지금은 경쟁률이 1:100입니다"라는 식의 정보를 준다면 1:100으로 경쟁할 생각이 없는 이들은 지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경쟁률을 몰랐을 때와 달리 리스크를 판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내신을 반영하는 수시전형의 경우, 지원자들의 평균 등급을 공개한다고 해보자(평균을 내기 때문에 개인정보유출의 문제는 없다). 지금까지 한 대학에 어떤 수시 전형에 지원한 학생들의 평균 내신 등급이 2등급이라면 4등급인 학생들은 해당 학교에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100%는 아니지만,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신을 반영하는 수시 전형에서 지금까지 지원한 학생들의 성적이 기재되지 않는다면 4등급의 지원자는 뭣도 모르고 호랑이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헛돈을 날린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수시 전형의 방식이다. 대부분의 정보를 비공개하거나 모호하게하여 도박을 유도한다.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 수시 전형의 경우의 대안
지원 조건이 없는 전형의 경우의 대안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 수시전형에는 어떤 정보공개가 요구될까?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대학은 학생의 학생기록부와 추천서, 자소서 등을 보게될 것이다. 이 경우는 내신을 반영하는 것보다 훨씬 학생들의 베팅을 자극한다. 내신을 반영하면 차라리 성적을 고려하기 때문에 성적이 안좋은 학생들은 지원을 안할 수가 있는데, 자소서만 본다고 하면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불확실하기에 더욱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학생들'까지 지원을 하게 된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지원하기 만만한 전형이고, 학교 입장에서는 그런 학생들의 전형료를 챙길 수 있으니 어찌보면 서로 윈윈(...)이다. 다만, 만만하다고 지를 수 있을 뿐, 어차피 합격되는 자들은 극히 소수라는 점은 간과하면 안될 것이다.


사실 나는 이런 '지원 조건이 없는' 전형에 굉장히 비판적이며, 대학이 인재를 모집한다하며 희망장사를 한다고 본다. 그들이 인재를 모집하고 싶어하는 것은 대학으로서 자연스럽지만 그들이 단순히 영리법인으로서 장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꼭 해야하는 말이 있다. "하지만 너는 우리 기준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지원하지마세요." 그런데 대학들은 절대 이런 말을 안한다. 그래서 분노가 치미는 거다. 어차피 뽑지도 않을거면서 지원하라고 광고한다. 



이런 전형의 특징은 '지원 조건이 없다'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런 전형을 개선하기 위해선 지원 조건을 최소한으로라도 만들어야한다. 예를 들어 영어 특기자를 모집한다면 영어 내신 평균이 1등급은 되어야한다는 식으로 제한 조건을 걸어야할 것이다. 혹은 지금까지 합격한 영어 특기자들의 평균 등급이 1등급이었다면 그러한 사실을 공개하며 학생들의 베팅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 전형의 목적이 '수학을 못해도 재능이 있는 인재를 뽑겠다'라는 것이라면 수학은 안봐도 영어를 고려해서 영어 특기자를 뽑으며 제한적으로 내신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제한적으로 내신을 고려하기 때문에 모든 내신 성적을 고려하는 수시 전형과 차별화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대학들은 자신들이 어떤 학생들을 뽑고 있는 지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바로 이때 생기는 대학과 고3간의 정보 비대칭이 학생측의 쓸모없는 지출을 늘리게 한다. 사교육을 줄이려면 대학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게끔 정부측에서 요구해야한다. 기업과 정부측간의 정보 비대칭과 비교하자면 대학과 고3간의 정보 비대칭은 더욱 사회적으로 해롭다. 취준생은 기업에 지원할 때 아무런 경제적 지출을 하지 않지만, 고3들은 학교에 지원할 때마다 적지 않은 경제적 지출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이다. 고3과 대학간의 정보 비대칭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보는 이유다. 사교육비 줄인다며? 주문만 외운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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