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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Oct 11. 2015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를 접하다.

원래 내가 팟캐스트에서 듣는 건 정치, 시사분야 뿐이다. <이이제이>, <그것은 알기 싫다>, <JTBC 뉴스룸>, <노유진의 정치카페>, <김종대의 진짜 안보>정도를 듣는다. 지하철에서도 듣고, 게임할 때 귀에 꽂아넣고 듣고, 가끔은 잠잘 때 알람 맞춰놓고 눈감고 듣는다.


그런데 이런 걸 들을 때마다 내 멘탈이 결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분노하거나, 답답해했다. 이이제이 <인혁당 특집>같은 거 들으면 빡이 안치고 베길 수가 없다. 팟캐스트를 뜯고 빡이쳐서 썼던 <정치칼럼>이나 <시사이슈> 글도 블로그에 꽤나 많다. 빡이치면 글을 쓰면서 그것을 해소했던 거다. 내 나름대로는 빡침의 해소였고 동시에 나의 글로 사안이 해결될 실마리를 얻을 거라 본 거지. 사안이 해결된 적은 없지만 적어도 빡침은 해소되었었다.


그런데 애초에 굳이 억지로 빡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팟캐스트에서 무난한 것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다


사실 유인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 몸매가 굉장히 좋고, 아이유랑 친하고, 전지현이랑 함께 드라마에 나왔다는 것 정도를 안다(여성분들이 그 "진짜가짜"하는 대사에 아주 환장을 하더만).


내게 유인나는 이런 이미지였다

유인나와 관련한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하나 있다. 한 때 유인나가 어떤 남자 사람이랑 스캔들이 났었는데 내 여자사람친구 중 하나가 "유인나가 아깝다"고 하고 남자사람친구 중 하나는 남자가 아깝다고 했었다.


팟캐스트에서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 구독을 했다. 10월에 방송한 것도 팟캐스트화되어서 업로드가 되어있었지만, 9월 것 중에 아무거나 찾아 들었다. 어차피 이어들을 것도 아니긴하지만 역주행을 하고 싶진 않았다.


방송을 틀자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이이제이>의 이동녕 작가나 <그것은 알기 싫다>의 UMC나 물뚝심송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목소리였다. 이어폰을 통해서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졌을 때 나는 말 그대로 정화되었다. 내가 느낀 것을 "정화"보다 더 적절히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이이제이>의 이동녕 작가가 "씨발"거릴 때 유인나는 "보고싶었어요"라고 하고, UMC가 괴상한 목소리로 낄낄거리면서 웃을 때 유인나는 콧소리를 내며 킥킥하고 웃었으며, 물뚝심송이 아제개그를 칠 때 유인나는 "우린, 행복할거에요."라고 하는데 정화가 안될 수야 안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2시간짜리 방송을 채 끝까지 듣기도 전에 그녀에게 감사하게되었고 또한 그녀를 찬양하게 되었다. 이 경험은 꽤나 신선한 것이었는데, 정작 그녀는 나라는 사람에게 직접 말을 건 적도 없었고, 나는 그녀를 직접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작위 대중들을 대상으로 각본을 읽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방송을 몇십분도 듣기 전에 나보다 몇십배는 돈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그녀에게 뭔가를 선물해주고 싶을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버렸다. 이상한 일이다.



영화 <Her>에서 남주는 한 운영체재와 사랑에 빠진다. 그 운영체재는 남자에게 실제로 말을 걸고 서로 대화를 나눈다. 남자는 그녀가 컴퓨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녀의 얼굴도 본 적이 없고, 스칼렛 요한슨의 허스키한 목소리만 들을 뿐이지만 그녀에게 푹 빠진다(엄밀하게 따지자면 그 컴퓨터가 여자라는 보장도 없다). 이건 어마어마하게 신기한 일이다. 얼굴도 본 적도 없고 신체적 접촉도 없었는데, 그저 목소리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니까. (그 남자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는 지는 굳이 이 글에선 따지진 말자)


물론 <Her>의 그 남자처럼 내가 유인나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라디오를 듣기 전까지는 유인나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십분만에 그녀의 매력에 빠졌다. 이것은 내가 <이이제이>에서 "씨발"을 많이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실제로 유인나에게 어마어마한 매력이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이런 이미지다

확실한 것은 <Her>의 그 남자와 달리,  내가 유인나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유인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이러저러한 말들을 전했을 뿐인데 나는 그저 그녀의 "목소리"만으로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녀에게 스캔들이 난다면 "유인나가 아깝네"라고 할 것이다. 예전에 "유인나가 아깝다"라고 했던 여자아이는 <볼륨을 높여요>를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이 목소리만으로 얼마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지를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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