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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Oct 18. 2015

<암살>: 언제든 나왔어야할 영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항상 최동훈이었다. 그의 영화가 재밌기 때문이다. 대사도 재밌고, 스토리도 재밌고, 인물들은 매력적이어서 나는 그의 영화를 꽤나 좋아라한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타짜>이고 그 다음 좋아하는 영화는 <범죄의 재구성>이다. <도둑들>은 전지현이란 배우를 다시 부활시키는 데는 역할을 했지만 영화적으로는 이렇다할 매력이 없는 영화였고, <전우치>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암살>을 봤는데,  <타짜> 다음으로 <암살>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타짜>는 마음 편히 즐겁게 볼 수 있는데, <암살>은 마음 한켠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살>을 다시 한번 볼 기회가 생긴다면 마음의 준비부터 할 것 같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마주할 준비. (참고로 나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두 번 이상 못본다. <밀양>같은 건 한번 보면 하루 종일 손에 일이 안잡힌다)


최동훈 감독의 인물들은 일탈을 꿈꾼다

최동훈 감독 영화의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다. 합법적으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 보편적인(?) 삶의 방식으로 삶을 대하는 사람들은 최동훈 영화에서 주인공이 되지 않는다. 최동훈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은행에서 도둑질을 하거나, 도박장에서 불법도박을 한다. 그리고 <암살>에선 살인을 한다. 


잠시 산으로,  <범죄의 재구성>이 <도둑들>보다 나은 이유

<범죄의 재구성>과 <도둑들>의 도둑들은 모두 도둑질을 하는데, 그래도 <범죄의 재구성>이 <도둑들>보다 더 매력적인 이유는 <범죄의 재구성>의 주인공의 범죄 동기가 <도둑들>의 그것보다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난 지금 김윤석이 맡은 그 역할이 왜 도둑질을 했는 지 기억도 안난다. 그 정도로 그들의 범죄 동기는 매력이 없다. "돈을 밝히는 범죄자" 설정은 진부해도 너무 진부하다. 게다가 <오션스 일레븐>의 컨셉을 대놓고 빌렸으니 <도둑들>의 개성은 딱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도둑들>에는 전지현과 김혜수가 있으니까

<암살>의 주인공들도 상자 밖에서 일을 하는 자들이다. <암살>에선 법적으로 광복을 달성하려하기보다는 무력으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이 그리는 세계에서 인물들의 행위는 정당화된다. 도둑질을 안하거나 도박을 안하면 어떻게 그런 어마무지한 돈을 벌 수 있나? 암살을 안하고 어떻게 법적으로 광복을 쟁취할 수 있나?(암살을 통해서도 광복을 달성하지 못하긴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친일파를 합법적으로 처단하려는 반민족 특위는 친일파 이승만에 의해 실패로 끝났고, "최동훈이 연출한 한국"(<암살>)에서도 법적으로 매국노를 처벌하는 것은 실패한다. 그러니 그의 영화에서 보편적인(?) 방식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려는 것은 기대하면 안된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최동훈 감독의 영화는 매력이 급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윤리적으로 완벽하지 못하다. 도둑질이나 도박, 살인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나? 하지만 최동훈 감독이 그가 창조한 인물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도 시인하는 장면이 <암살>에 나온다. <암살>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구과 김원봉은 술잔을 마주한다. 그 둘 사이에는 술이 따라져있는 술잔들이 놓여있는데, 그 술잔들은 독립 운동을 하다가 죽은 자들의 것이다. 김구는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말한다. "미안하다 미안해" 암살을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것이 불가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언제든 나왔어야할 영화가 나왔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친일파를 처단하는 내용의 영화는 별로 나온 게 없다. 부인을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서세원 목사께서 <도마 안중근>이란 독립운동 영화를 찍었지만, 영화는 수준미달이었고, <모던보이>나 <아나키스트>도 영화적으로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것들을 포함하더라도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는 세 편 정도밖에 안되는 것 같다. 물론 4~50년대 영화기록들을 찾아보면 몇개가 더 있을 거 같긴 한데, 비교적 최근 영화들 중에선 독립 운동을 다루는 영화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정권이 정권인지라 영화계에서도 살짝 쫄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현재 청와대에서 대통령 하고 계신 분의 아버지부터가 만주군에 지원하기 위해 혈서까지 썼던 친일파였으니까 말이다. 새누리당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런 점에서 최동훈 감독의 <암살>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거를 다룬 다는 점에서, 그리고 친일파들이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기득권을 차지하며 매국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과거를 다루지만 현재까지 온전히 담고 있다.

하지만 존재 의의가 있는 내용을 다뤘다고 해서 영화가 반드시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는 잊혀지고 있는 역사를 다룬 다는 점에선 응원해줄 수 있지만, 영화적으로 보면 엉망진창인 영화다. 부인을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서세원 목사께서 연출하신 <도마 안중근>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제작 의도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영화가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의도와 결과물은 별개다. 이 부분은 분명히 해둬야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관객들을 보자면, 영화의 제작의도에 동의하면 영화의 퀄리티에까지 높은 점수를 주는 듯한 인상을 자주 받는다. 구분할 건 구분하자. 이순신을 좋아한다고 <명량>까지 칭찬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순신도 좋아하고 <명량>도 좋아할 수는 있겠지만, 평가는 각각 따로 해야한다는 이야기다. 같은 이유로, 이순신을 싫어해도 <명량>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별개니까.

<암살> 이야기로 돌아오자. 나는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사운드 부분에선 아쉬운 부분이 있긴하지만(나중에 다룰 생각), 스토리 적으로는 나무랄 곳이 딱히 없다고 생각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딱 한번 등장하긴 하는데(영감님의 구원) 뭐 그런건 애교로 봐줘도 무방한 듯 하다. 요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없는 영화가 어딨나. 물론 없으면 더 훌륭하겠지만 말이다. 


지루한 부분도 없이 영화적 리듬도 상당히 괜춘하고 편집도 잘되어 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는 항상 재미는 보장한다. <도둑들>을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 사이에서 높게 평가하진 않지만, 그래도 재밌다는 것을 부정하진 못한다. 그리고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잘 짜여져 있으며, 인물들 간의 감정선도 모순 없이 깔끔하다. 또한, <암살>이 지금의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꿰뚫고 있다는 점 등등을 고려한다면 <암살>은 꽤나 잘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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