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아날로그 vs 정보통신기술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아날로그와 정보통신기술 간의 전쟁을 다룬다. 이 영화에서 아날로그를 상징하는 것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분한 펩스, 에밀리아 클라크가 분한 사라 코너, 그리고 제이 코트니가 분한 카일 리스이며, 정보통신기술을 상징하는 것은 스카이넷이다. 이 때의 정보통신기술은 아날로그를 통해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지는데, 모든 것의 자동화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자동화, 로봇화 등등으로 스카이넷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스카이넷은 모든 것을 연결해서 인류를 진보시키겠다는 식의 논법을 펼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카이넷은 인류를 거의 멸종시키는 존재가 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도 같은 주제를 다뤘다. 토니 스타크는 적이 침공해오지 않았음에도 '언젠가 닥칠 위험'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자동 방어 체계를 만들고자 한다. 토니 스타크의 구상은 이렇다. 적이 침공해오면, 로봇으로 구성된 방어 체계가 자동으로 적을 무찌른다. 이렇게 되면 인류는 딱히 힘을 기를 필요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그래서 토니 스타크가 어벤져스 몰래 만든 것이 울트론인데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울트론은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과 같은 존재가 된 것.
이런 주제에서 항상 빌런이 울트론이나 스카이넷 같은 로봇인 것은 아니다. <다이하드 4.0>(2007)을 보면 한 성공한 기업가가 이 역할을 맡는다. 이 영화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한 존 맥클레인은 완전히 아날로그적인 인물이다. 인터넷은 할 줄도 모르고 주먹질과 총질밖에 할 줄 모른다. 그와는 다르게 티모시 올리펀트가 연기한 토마스 가브리엘은 주먹질과 총질은 하나도 못하지만 컴퓨터의 귀재다. 손가락 까딱해서 존 맥클레인의 연금을 사라지게 만들기도하고, 미국의 방화벽을 뚫어버리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도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보통신기술로 무장한 존재가 빌런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기억해두자.
이런 류의 주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대체로 정보통신기술에 암울한 미래를 투영한다. 인간에 의해 개발된 로봇은 제멋대로 날 뛰고, 결국에는 인간을 위협한다. 로봇이 탑재된 스텔스기가 등장하는 <스텔스>, 로봇의 반란을 그린 <아이로봇> 등등이 그렇다. 예를 들자면 너무도 많다. 그나마 인간적으로(?) 로봇을 바라본 작품은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가 아닐까 싶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로봇을 만든 건 인간이지만, 로봇을 열받게 만든 것도 인간이다. 하지만 <스텔스>나 <아이로봇>에서 로봇은 인류가 지구촌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로 각성한다. <블레이드 러너>의 로봇은 인간적(?)인데 반해서 <스텔스>와 <아이로봇>의 로봇들은 로보틱하다.
로봇이 된 존 코너가 의미하는 것
존 코너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스카이넷에 의해 로봇과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 육체적으로 로봇이 된 것은 그저 영화적 재미를 위한 것이다. 존 코너가 로봇이 되어야 터미네이터 아제랑 주먹다짐을 할 수 있잖나. 다만, 로봇을 전멸시키기 위해 반군을 만든 존 코너가 스카이넷을 찬양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존 코너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영웅이었던 혹은 영웅이 될거라 예견되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존 코너가 악당이 된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90년대 때 영화가 나왔을 때만 해도 로봇의 시대를 한 때 박살내려했던 자가 2015년에 개봉한 영화에 와서는 로봇을 찬양하고 나선다는 것.여기에서 나는 감독의 위기의식을 읽었다. 로봇을 위협으로 느꼈던 자들이 점점 적어지고 오히려 로봇의 시대를 찬양하고 있는 현 시대를 존 코너가 상징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여하튼 아직까지 확실한 것은 헐리우드에 로봇의 시대를 걱정하는 자들이 다수라는 것이다. 헐리우드가 대세를 꺾을 힘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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