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가 아이돌 출신 '배우'를 섭외하는 이유
최근에 무명 연극인의 죽음을 기사로 접했다(링크). 이 기사를 접한 뒤에 우울해졌다. 그리고 왜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골목 상권(?)에 진입을 하면 안되는 지에 대해 격렬하게 느꼈다. 그 아이들에겐 꿈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이들에겐 꿈을 넘어 생존의 문제다. 사실 아이돌의 골목 상권이 단순히 아이돌들의 꿈(dream)도 아니다. 돈벌이지.
캐스팅 디렉터들이 아이돌 출신의 아이들을 배우로 쓰는 이유는, 액션 영화에 전문 무술인을 섭외하지 않는 이유와 동일하다. 대중은 연기자가 연기만을 전문으로 하고 연기를 잘하는 지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다. 연기를 못한다면서 욕하면서도 주구장창 본다. 무술도 연기력과 마찬가지다. 대중은 배우가 현실에서 리얼로 잘 싸우는 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감독이 잘 알고 있다.
대중들이 전문 배우와 아이돌 배우(이 글에선 편의상 구분을 하자)를 구분하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TV에 나오면 다 그놈이 그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로듀서 입장에선 아무래도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있는 아이돌 배우를 더 선호한다. 그게 장사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막말로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배우를 섭외하는 것보다 아이유로 화면 채우는 게 장사하기에 좋다.
액션 배우도 마찬가지다. 멧 데이먼이 현실에선 성룡에게 5초도 못 버티고 깨갱할지라도 감독은 단기간의 훈련과 카메라와 편집만으로 멧 데이먼을 제이슨 본이라는 인류 최고의 병기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멧 데이먼은 성룡을 못이기지만, 제이슨 본은 성룡을 이길 수도 있다. 또한, 멧 데이먼은 연기가 된다. 이쯤되면 전문 무술인보다 액션도 가능한 연기자를 캐스팅하는 게 유리하다.
다만, 연극 배우 대신 아이돌 배우를 섭외하는 것과 무술인 대신 전문 배우를 섭외하는 것 간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 지상파에서 아이돌 배우를 섭외하는 경우엔 아이돌 배우의 인기에 시청률을 의지한다. 여기에 연출가의 역량은 딱히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무술인 대신 전문 배우를 섭외한다면 여기엔 무조건 연출가의 천재적 역량이 요구된다.
지상파 드라마를 내가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줄곧 외치고 있지만, 고정적인 시청률과 배우들의 인기에 기생해서 드라마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작가의 능력과 감독의 연출은 여기에서 전혀 기능을 못한다. 매번 똑같은 스토리(작가), 매번 똑같은 앵글(감독)로도 시청률이 나오는 이유는 고정적인 시청률과 배우들의 인기에 기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파 드라마에서 가장 필요한 건 인기 많은 아이돌 배우지 무명의 연극 배우가 아니다. 그 허접한 연출력을 덮어줄 거품.
무명의 배우로도 충분히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당연한거 아니냐고? 당연한 거 아니다. 미국의 채널 HBO는 무명의 영국 배우들로 드라마를 만든다. 여기에도 물론 자본의 논리가 개입한다. 영국 배우들이 미국 배우들에 비해 겁나 싸거든. 실제로 <왕좌의 게임>에 나왔던 배우들도 시즌1 때는 숀 빈을 제외하고는 그리 알려진 배우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HBO는 무명의 배우들을 막강한 연출력으로 포장해서 고퀄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우리나라 지상파는 다르다. 인기많은 아이돌을 데려다가 같잖으며, 다른 드라마와 비교해 개성도 없는 드라마를 양산해낸다. 하지만 인기 많은 아이돌을 출연시키고 고정적인 지상파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따위로 만들어도 장사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서로 쎄쎄쎄하는 사이에 무명의 배우들은 죽어나간다.
그 아이돌 배우들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배우의 지위를 얻을까? 아니면 인맥을 통해 그 자리를 가지게 될까? 우리나라 지상파 드라마에 오디션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드라마 현장을 묘사한 어떤 드라마에선 작가에게 잘 보여야 그 자리를 차지하더라. (<온에어>던가?) 그 드라마가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는 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그 드라마의 묘사를 반박할 어떠한 근거도 찾지 못하겠다. 공정한 경쟁인 오디션은 어디있는가? 무명 배우에게 기회가 주어지긴 하는가? 있다면 진지하게 부탁드리건데 내게 자세히좀 알려주시기 바란다.
무명 배우들에 대한 지상파의 역할
지상파 그중에서도 KBS는 수신료라는 이름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조선일보 사설에 의하면 2014년 기준으로 국민들은 6000억원의 수신료를 KBS에 내고 있다(링크). 그리고 TV가 없다면 수신을 거부할 수 있지만 전기료에 부가되기 때문에 사실상 세금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KBS가 세금으로 운영된다면 그 세금을 국민들을 위해 쓸 의무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들은 수신료라는 세금을 KBS에 낼 필요가 없다. 수신료의 가치는 무슨.
국민들을 위해 콘텐츠를 만든다면, 다양한 콘텐츠 생산을 위해서도 노력해야한다. 내가 <미생>에서 임시완을 섭외한 tvN을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는 tvN은 원래 장사꾼들이기 때문이다. KBS 역시 일정 부분은 생존하기 위해 장사꾼 마인드를 가져야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세금으로 운영된다면, 좀 더 이타적인 존재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나는 KBS의 역할이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연극배우들이나 영화배우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는 배수지나 윤아같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보다는 무명의 배우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콘텐츠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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