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젠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우 Jul 28. 2019

남성들은 여성들을 어떻게 후려치나?

이 글은 일간 박현우 15호, 7월 19일자로 배포된 글입니다. 최신 이슈와 함께 배포되기는 했는데, 이 게시글에 텍스트로는 첨부하지 않았습니다. 일간 박현우 15호 구독자들에게 배포된 구글문서나 PDF를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일간 박현우 샘플 링크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다른 샘플도 보실 수 있고, 글 외에 최신 이슈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간 박현우 샘플- http://bit.ly/DailyphwSample

8월 5일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일간 박현우 16호 구독 신청- http://bit.ly/Dailyphw016sub


PDF 파일



요즘 블루레이를 수집하고 있다. 스틸북의 질감이나 만졌을 때의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아직 4K 블루레이 플레이어는 없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 디스크를 스틸북에서 빼서 플레이어에 넣는 리츄얼이 꽤나 기부니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모으고 있다. 영화를 인터넷을 통해 보는 건 너무 편리하고 쉬워서 영화에 몰입하는 걸 은근히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제든 킬 수 있고 언제든 끌 수 있기 때문인지, 영화관 만큼의 몰입은 잘 되질 않는다. 영화관에서 영화에 보다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한 번 가는 것이나 극장에서 도중에 나오는 게 불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블루레이에는 영화관이나 유튜브 등에서 못 보는 자료들이 있기도 하니 연구하는 겸해서 사는 것도 있다(이런 명목이면 돈을 더 쉽게 쓸 수 있다).


내가 아는 한국에서 블루레이 정보가 가장 많이 올라오는 곳 인터넷 커뮤니티는 DVD Prime인데, 사이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곳은 DVD를 수집하던 사람들이 애초부터 소통을 하던 곳이다. 달리 말하면, 나이가 좀 있는 양반들이 이 공간에서 주로 활동한다. 지금의 1~20대들이 DVD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드니까. 


마블의 <캡틴 마블>의 블루레이 정보가 이 사이트에 올라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걸 수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영화는 별로였는데 MCU 블루레이를 다 모았어서 <캡틴 마블>이라는 한 조각을 비우기가 아쉽다는 거였다. 대부분 유저들이 이 의견에 동조했다. <캡틴 마블>이 재밌었고 이걸 꼭 수집하겠다는 게시글이나 댓글은 찾기 힘들었다. 다수 의견 때문에 의견 피력을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 사이트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의견을 가졌을 거라 보기는 힘들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캡틴 마블> 블루레이가 여러 쇼핑몰에서 정해진 시간에 예약 구매를 시작했고, 대부분 웹사이트에서 1~2분 만에 매진됐다. 예약 구매를 받고 찍어내는 게 아니라 일단 찍어낸 뒤 예약을 받는 시스템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정확하지 않다).


<캡틴 마블>이 이렇게 인기가 많을지 짐작 못했던 이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영화도 별로였는데 블루레이가 이렇게 잘 팔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유있게 몇 시간 뒤에 예약 구매를 해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손을 빠르게 놀리지 못한 이들은 <캡틴 마블>이라는 한 조각을 구하지 못했다. 한편, 이미 중고(?)거래 게시판에는 프리미엄이 붙은 <캡틴 마블>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는 왜이리 <캡틴 마블>이 인기가 있는지 분석을 하기 시작했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페미 때문에 이 영화가 인기가 많고, 페미들이 블루레이를 샀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거다. 아주 틀린 주장은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캡틴 마블>에 환호했고, 덕질에 있어 남성들보다 돈을 아낌 없이 쓰는 여성들은 <캡틴 마블>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었으니까.


그런데 그들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점점 여자들이 블루레이를 많이 구매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였다. 영화나 드라마 등을 ‘진정으로’ 즐기지는 않지만, 블루레이의 케이스가 이쁘기 때문에 구매하는 여성들이 전보다 늘어났다는 거였다(그건 난데). 즉, 남성인 본인들은 영화를 진정으로(?) 감상하는 자질을 가지고 있고 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블루레이를 수집하지만, 여성들은 겉모습만 보고 단순히 이쁘다는 이유로 블루레이를 수집한다 생각했다.


스포츠쪽에서도 이런 미소지니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남성들은 본인들이 정말 스포츠를 좋아하고 그런 이유로 스포츠를 관람하고 경기장에 간다 생각하지만, 여성들은 게임의 룰도 모르면서 선수들이 이쁘고 잘생겼다는 이유로 스포츠 관람을 즐긴다고 말한다. 한 때 국민스포츠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E-스포츠에서도 이런 내려치기, 후려치기는 있었다. <스타크래프트>의 룰도 모르고 종족도 모르면서 선수들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경기를 보러 오는 여성들이 대다수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음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남성들은 본인들이 대단한 미각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고, 그래서인지 맛집에 사람들 데려가놓고 ‘어때 나의 고상한 취향이?’라며 우쭐대는 경우가 흔한데, 여성들은 맛을 모르고 단순히 음식이 이쁘게 플레이팅 되어있으면 만족한다 생각한다.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맛도 모르는 여자들한테 맛집은 대체 왜 소개하나?


미소지니는 비단 여성들에게만 해로운 건 아니다. 미소지니가 가득한 남성은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하고, 이런 사람들은 인류에 해롭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는 고래회충이 섞인 삼치구이에 곰팡이 빵을 급식으로 배급했다. 이에 1, 2학년 학생 대표와 교사 등이 모인 상태에서 급식 관련 토론회를 열었는데, 여기서 교장 새키는 이렇게 말한다. “여학생들이라 비주얼만 따진다. 남학생들이면 훅훅 털고 먹었을 것이다.”(링크)


사실 나는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각종 분야에서 덕심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남성들이 영화 등의 콘텐츠를 더 사랑한다 생각하지도 않는다. 일단 영화, 드라마, 뮤지컬, 콘서트 등 문화 영역에서 여성들이 쓰는 돈은 남성을 압도한다. 덕질에 있어서 돈은 중요한 척도다. 대체로 돈을 더 많이 쓰는 자들은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덕심이 강하다. 돈도 잘 안 쓰는 남성들은 본질이 아닌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많다. 모터쇼에 가서는 차가 아닌 레이싱걸에 환장하고, 복싱이나 UFC를 볼 때는 경기가 아니라 라운드걸이나 링걸에 집착하고, 농구장, 야구장에 가서는 치어리더들에게 집착한다. 여성들을 찍기 위해 몇 백만원을 들여 본인들의 곧휴보다 크고 튼튼하고 길고 가치있는 카메라를 구입하기도 한다. 이들은 사진을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경기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저 헐벗은 여성들을 사랑하는 걸까? 경기는 언제 보나?


서양 게임에는 왜이리 이쁜 여자 캐릭터가 없다면서 징징대고, <스카이림>을 할 때는 굳이 이쁜 여자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모드를 설치하고, 그 캐릭터로 섹스를 하기 위해 섹스가 가능한 모드를 설치하고, <인어공주>의 흑인 인어공주가 충분히 이쁘지 않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남성들이다. 식당에 가서 음식만 먹으면 될 걸 종업원 성추행하고 성희롱하고 번호 따려고 하는 놈들도 대체로 남성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의무니가 들 수 밖에 없는 거다.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영화를 더 사랑하고, 게임을 더 사랑하고, 야구를 더 사랑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디에 있나? 복싱 경기장에서 라운드걸 빼자고 하면 가장 반발할 성별은 여성일까 남성일까? 야구장에서 치어리더 빼자고 하면 가장 반발할 성별은? <007>에서 본드걸 없애자고 하면 가장 반발한 성별은? 미스코리아 폐지하자고 하면 가장 반발할 성별은? 남성들은 일단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법부터 배워야한다. 여성을 사람으로 볼 줄 모르는데 영화 감상부터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여배우의 외모와 노출에만 집착할 밖에.

-

아래는 PDF를 이미지화한 것

구독하시면 첨부한 글과 같은 글 20편을 이메일, 구글문서, PDF 형태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글 한 편에 1천원, 구독료는 2만원입니다.

일간 박현우 전체 글 리스트- http://bit.ly/Dailyphwlist

8월 5일부터 4주간 연재를 시작하는 일간 박현우 16호 구독 신청- http://bit.ly/Dailyphw016sub



매거진의 이전글 여성에게 안전한 교통수단은 존재하나? feat.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