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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Nov 12. 2024

20년 넘게 갇혀있던 구덩이에서 기어나왔다

한동안 타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여러 활동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봤지만 이렇다할 감정은 일지 않았다. 사람을 봐도 그냥 NPC로 보였다.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구나'의 감상 정도를 주는 사람. 더 알아보고 싶지도 않았고, 이렇다할 감흥도 주지 않았다.


사람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구에게 애정을 주거나 구애를 할 상태가 아니었으니. 그러니 누굴 봐도 감정이 일지 않고, 더 친해지기 위해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최근에 날 만난 지인은 내 과거를 회상하며 '그땐 지금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정말 어두웠다'고 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2024년 8월을 기점으로 '온갖 것'을 시도한 결과 몸과 마음이 상당히 건강해졌다. 한 때 80키로를 찍었던 더러운 몸은 66키로를 기록하고 있고, 거울을 보자면 몸도 이뻐졌다. 전에는 운동할 기력도 없었지만 요즘에는 매일 스쿼트, 푸시업을 하고 20분 이상씩 요가도 한다. 이것들은 평생할 것 같다. 몸을 이쁘게 만들기 위한 것도 있지만 정신 수양 목적이 더 크다.  


매일 20분 이상씩 명상을 하고 있기도 하고, 필요하면 절에서 배운 참선(좌선)을 1시간씩 진행한다. 이것들을 하고 있으면 확실히 강해지는 느낌을 받고, 실제로 나는 강해졌다. 오랜만에 이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쓰는 것도 내게 그럴 정신적 여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누가 읽기는 할까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런 것조차 이제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류의 글을 쓴지가 너무 오래돼 갈증이 있기 때문. 


여력이 생기다보니 이런저런 활동들을 참여하고 있다. 매주 주인 없는 고양이들이 30마리 모여있는 공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영화와 관련된 소모임도 여럿 참여하고 있다. 영화 관련 소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영화를 좋아하긴하는데 막상 주변을 둘러보니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광들을 주변에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맥락에서 커피 모임도 찾아서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흔히 '나는 커피 좋아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자면 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걸 두고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시간과 돈을 써서' 기꺼이 특정 카페나 공간으로 향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출근길에 있는 매머드 커피 자주 방문한 걸로는 내 눈에 '커피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들에게 커피는 오늘 하루를 버텨내게 해줄 각성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결말포함'이라면서 영화 요약하는 거 많이 보는 사람이 '영화 좋아해'라고 말하는 거 볼 때의 느낌이랄까.


많이 좋아졌고, 구덩이에서 기어나오는 과정 중에 대단히 단단해졌다고 느끼고도 있다. 쉽게 타격받지 않는 멘탈을 가지게 된 것 같달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에 공감을 못했었는데, 지금은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구덩이에서 기어올라왔고, 다시 아래로 미끌어질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서른 중반을 넘어 마흔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삶을 시작하는 느낌이다. 구덩이에 빠져본 적 없는 이들은 저만치 달려나가고 있다. 다만 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삶에 어떤 반드시 잡아야만하는 목적이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워졌다. 부처가 되고 싶긴 하다. 진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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