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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Dec 07. 2015

'여성의 성적대상화'란 무엇인가?- 1


사회가 진보했다는 증거

'여성의 성적대상화'란 단어가 대중문화들을 평론할 때 자주 거론된다는 것은 사실 반가운 일이다. '여성의 성적대상화'란 단어가 자주 쓰인다는 것은 여성이 성적대상화된 콘텐츠들이 증가했다는 현상을 보여주기보다는 차라리 여성이 성적대상화된 콘텐츠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증가한 현상을 반영해준다. 


여성이 성적대상화된 콘텐츠들은 예나 지금이나 양적으로 크게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이런 경향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것들은 항상 거기에 있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제 문제제기가 시작되었다는 점. 이 점은 고무적이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이런 문제에 예민해졌다는 걸 보여주거든.




여기서 잠깐 사족, 어떤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런 표현을 금지하자"라는 주장과 동일하지 않다. 그러니 어떤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것은 주장에 대한 반박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표현을 법적으로 금지하자"라는 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표현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그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가능하며, 어떤 표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주장에 "표현의 자유"를 들이대는 것은 그냥 바보같다. 뭔 말이 필요하리. 바보다.


차라리 어떤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는 '자발적으로 그런 표현을 안하게끔 유도하는 것'에 목적이 있거나, '그런 표현이 시장에서 흥하지 않게끔 만들려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 글의 주제와 반드시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예를 들자면, 가수 아이유의 <제제>나 <스물셋> 뮤직비디오의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런 표현을 금지해야한다"라는 의도가 담겨있지 않은 이상 반박측에서 "표현의 자유"를 들고나와선 안된다. 이는 상대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없다. 이건 바보의 반박이다.


하지만 아이유 음원 유통 금지 서명 운동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를 들어 반박하는 것은 서명 운동측의 주장에 대한 정확한 반박이 될 수 있다. 어떠한 표현이라도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요?"라고 댓글다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굳이 사족을 달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다양한 맥락에서 쓰이고 있는 '여성의 성적대상화'

여성의 성적대상화라는 단어는 언제부턴가 유행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신생어(?)의 운명이 그러하듯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대학축제에서 대학생들이 좀 노출을 하며 주점 홍보를 하면 "여성의 성적대상화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룹 스텔라가 뮤직비디오에서 허리 흔드는 걸 보고 "여성의 성적대상화다!"라고 하기도 하고, SNL KOREA가 여성 아이돌들 섭외해서 가슴골 보여주게 하는 것을 "여성의 성적대상화다!"라고 하기도 한다. 모두가 답이 될 수도 있고, 모두가 답이 아닐 수도 있다. 굳이 방금 언급한 개별 사례가 '여성의 성적대상화'에 속하는 지를 이 문단에서 다루지는 않겠다. 어쨋건 확실한 것은 여성의 성적대상화라는 단어가 딱히 뚜렷한 기준 없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성적대상화'를 어떻게 쓸 것인가?

'여성의 성적대상화'를 어떻게 문장에 담을가에 관한 문제다. "저 회사는 여성을 성적대상화했다"라고 하면 이는 문장상 문제가 없어 보인다. 회사라는 주체가 여성을 (회사 지원서 등을 통해) 성적대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표현은 여성을 성적대상화했다"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어떤 표현이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것 역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여성을 성적대상화할 때 주체가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면, 회사가 주체가 될 것이고, 한 작품의 어떤 표현이 여성을 성적대상화한다면, 그 작품의 작가가 주체가 될 것이다(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애매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작가가 그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작품의 배포를 한 사람에게도 여성을 성적대상화한 것에 책임이 있나? 여성을 성적대상화한 작품의 배포에 기여했으니 여성을 성적대상화한 것에 대한 책임을져야하나?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저 작품은 여성의 성적대상화다", "저 표현은 여성의 성적대상화다"라고 하면 말이 이상하다. 이는 '여성의 성적대상화' 그 자체는 작품이 아니라 어떤 성향을 설명하기 위한 단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즉, "폭력적이다", "평화적이다"와 같은 단어와 대체될 수 있다. 초딩도 이미 알고있는 내용일테니 넘어가자.


자, 이제 서론 끝.

본론으로 넘어가자.




무엇을 '여성의 성적대상화'로 볼 것인가?

나는 이 글에서 여성의 성적대상화만을 다룰 것이지만, 남성 역시 성적대상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동시에 인지하고있다. 하지만 성적대상화의 대상이 주로 여성인 바, 여성의 성적대상화를 위주로 이 글이 진행될 것이다.


아래는 위키피디아의 '성적 대상화' 항목을 긁어온 것이다.


"성적 대상화(Sexual objectification)는 인간에 대해 인격을 배제한 채 성적 행위의 대상이라는 시각에 입각해서 생각하는 사고 체계를 말한다"


참고만 하시라. 나는 위키피디아의 정의에 완전하게 동의하지는 않는다. 내 의견도 참고만 하시라. 내가 위키피디아의 정의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인격을 배제한 채'라는 부분 때문이다. 나는 인격을 배제하지 않은 상태로도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사례가 너무 많다.


<왕좌의 게임>의 여성 성적대상화 사례
테온 그레이조이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5 6화에서 산사 스타크가 람제이 볼튼에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송출된 이후로 미국의 민주당 의원이 트위터로 보이콧을 하기도 했고, <왕좌의 게임>을 그만보자는 운동도 일었었다.



왜 문제가 되었을까?

이 장면에 대해 이해하려면 테온에 대한 설명이 살짝 필요하다. 산사 스타크가 람제이 볼튼에게 강간을 당할 때 그 장소에는 테온 그레이조이라는 인물도 함께 있다. 테온 그레이조이는 그레이조이 가문에서 스타크 가문에 포로로 맡긴 아들이다. 그래서 테온은 어렸을 적부터 스타크 가문의 자식들과 함께 성장했다. 산사 스타크와도 남매처럼 지낸 것이다. 그런데 스타크 가문이 지도자를 잃은 이후로 분열되었을 때 스타크 가문의 자식들과 테온은 흩어지게 된다. 흩어진 뒤에 여차저차하다가(여기에 많은 내용이 생략되어있다) 테온은 람제이에 의해 붙잡혀서 온갖 고문을 받다가 완전히 미쳐버린다(거세도 당한다). 그렇게 테온은 람제이에게 완전히 노예가 되어버린다.


산사 스타크


스타크 가문이 망할 때 산사 스타크는 예비 왕비로서 킹스랜딩에 있었는데 여자저차하다가(여기에도 많은 생략) 도망자 신세가 되고 여자저차하다가(또 생략) 람제이와 결혼하게 된다. 스타크 가문이 북부에 가지는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많은 가문들이 산사 스타크를 눈독들였다는 점을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산사와 람제이가 결혼하는 날 첫날밤을 보내게된다. 여기부터 문제의 그 장면이다. 같은 방에 있던 테온은 방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새디스트인 람제이는 테온에게 방에서 나가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테온을 방에서 나가지 못하게 한 뒤 람제이는 산사의 옷을 찢고, 침대에 엎드리게 한 뒤 강간을 한다.


그런데, 이 강간 장면에서 카메라가 비추는 장면은 강간을 당하고 있는 산사가 아니라 그걸 지겨보는 테온이다. 그래서 시청자가 보는 것은 강간을 당하는 산사가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테온이며, 시청자가 듣는 것은 산사의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소리다. 결과적으로 이 장면은 테온이 산사가 강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에 초점을 맞추었고, 여성 캐릭터인 산사는 그것을 위해 '소비'되었다. 이 장면이 집중하는 캐릭터는 강간당하는 산사 스타크가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테온 그레이조이다. 그렇게 여성 캐릭터는 성적으로 대상화되며 소비되었다. 전형적으로 여성이 성적으로 소비된 예다. 산사 스타크 강간 장면에 대해선 과거에 길게 쓴 포스팅이 있으니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여성 캐릭터는 성적으로 소비되고 수단화되었다.

<왕좌의 게임>의 강간 장면이 성적 대상화 사례인 이유는 여성이 단순히 성적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여성이 성적 행위를 하는 데, 그것이 타 캐릭터의 감정선을 설명해주기 위해 단순히 소비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간 내의 침대처럼 철저히 대상화된다. 다만 침대보다 좀 더 스토리에 영향을 끼칠 뿐이다.


만약 이 장면에서 카메라가 테온 그레이조이가 아닌 산사 스타크를 비췄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되었다면 그녀의 강간 피해는 적어도 '타 캐릭터를 위해 소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줬다면, 이 장면 역시 여성을 성적대상화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강간당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면, 굳이 그녀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길게 보여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옷을 찢고 엎드리게끔 하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곧 강간당할 것이라는 짐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불필요하게 한 (여성) 캐릭터를 '대상화'시키고 '수단화'시킬 필요는 없다.


작가의 입장에서  "그 장면을 길게 보여줘야 시청자들이 산사의 고통을 더욱 절감할거라 생각했습니다"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나는 아래와 같이 반박할 것이다.


"강간은 한 사람에게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주며 이에 대해서 시청자들 대부분이 무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강간 장면을 대놓고 다 보여줄 필요는 없고, 강간을 당할 것이라는 분위기만 조성해줘도 스토리는 전달이 된다. 작가가 강간 장면의 일부나 전부를 보여주는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만하는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작가가 강간 장면을 풀로 보여주는 것은 작가의 자발적 선택일 수는 있지만, 이는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시청자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떠나서, 한 사람이 강간 당하는 모습이나 소리를 들어야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스토리에 딱히 도움도 안되는데 시청자들이 작가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 괴로워야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 <왕좌의 게임>을 보이콧하며 아예 보지 않거나, 비판을 하며 앞으로 더이상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게끔 여론을 만드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참고로, 나는 후자에 속한다.


강간: 성적 대상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행위

강간이란 행위는 한 인격체에 대한 성적대상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발현된 형태다. 강간을 하는 시점에서 강간을 당하는 인격체는 이미 인격체가 아니라 성적으로 소비되어야할 대상으로 전락되어버린다. 이런 지점에서 생각해보아도 콘텐츠 속에서 강간을 다룰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는 아동에 대한 살인을 콘텐츠에 암묵적으로 그려내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보기에 너무도 끔직한 일이니까.


성적대상화는 결국 펜을 쥔 자의 문제

<왕좌의 게임>의 강간 장면이 왜 문제되는 지 이해한다면 몇가지 깔끔해지는 부분이 있다. 여성으로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이 야한 춤을 추는 것은 성적 대상화인가? 누구도 그녀들에게 그런 춤을 추라고 강요한 것이 아니기에 춤을 추는 행위 자체는 성적대상화라고보기 어렵다. 그들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주체적으로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춤이 어떤 카메라에 의해 젖가슴 부분만 잡힐 때 혹은 허리 부분만 잡힐 때 그녀들은 성적으로 대상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결국 성적대상화는 펜을 쥔 자, 카메라를 가진 자의 문제지, 펜으로 쓰여지는 자나, 카메라에 의해 찍히는 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뷰티플 군바리>의 배빵

지나간 이슈이긴하지만 <뷰티플 군바리>도 한때 이슈가 되었었으니 다뤄보자. 이 작품에서도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된 부분이 있다. 특히 논란이 되었던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다. 여성이 배를 맞는 장면이며, 오타쿠들 사이에선 "배빵"으로 통한다. 유사한 장면들은 구글에 "배빵"을 치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일본 예능에선 여성이 '쳐봐'라는 시늉으로 배를 내밀면서 배빵을 자처한다(아래 사진).




배빵은 일본 애니계에서 성적으로 서비스해주기 위해 많이 쓰이는 장치다. 오타쿠들에게 일종의 서비스로 배빵이 제공되는 느낌이다. <소드아트온라인>에서는 아스나라는 캐릭터가 촉수로 이루어진 괴물에게 괴롭힘당하는 장면이 있는데, 성적으로 괴롭힘당하는 여성 캐릭터를 서비스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여성을 성적대상화했다고 볼 수 있다.


<소드아트온라인>


쓰러진 여성이 흘리는 체액, 그리고 자세

배빵을 맞은 뒤에 여성 캐릭터가 쓰러진다. 그러면서 그녀는 침을 흘린다. 이 부분 역시 일본 애니계에서 자주 쓰는 장면이다(도무지 독창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아래의 만화를 보자. <앱솔로트 듀오> 11화의 장면이랜다(댓글로 파악한거라 확실친 않다).





배빵을 맞은 여성 캐릭터가 눈물을 흘리고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배를 맞았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은 일본 헨타이물에서 여성이 성관계가 끝났을 때 보이는 표정과 유사하다. 여성이 사정한 뒤에 주로 이런 표정들을 짓는다. 굳이 예제를 가져오진 않겠다. 직접 찾아보시라.


자세 이야기를 해보자. 쓰러질 때 자세가 참 묘하다. 이 자세 역시 많은 네티즌들이 다루었으나, 반복해보자. 미국의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이 포르노와 성관계가 삽입된 영화를 어떻게 분간하냐는 말에 "보면 안다"라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설명이 되는 게 있는 게다. 마찬가지로 지금 주인공인 '정수아'의 쓰러진 자세와 카메라의 앵글이 야리꾸리하다는 것에 이견을 보일 사람은 없을 게다. 보면 알잖나.


엉덩이는 뒤로 튀어나와있고 주인공의 '거대한' 가슴은 바닥에 눌려 있다. 똑같은 장면을 Bird Eye View로 그렸다면 이 장면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게다. 그런데 사람이 처맞는 장면을 그리는데 작가는 굳이 그것을 야하게 그렸다. 이건 <왕좌의 게임>보다 증상이 심한데, <왕좌의 게임>에선 강간당하는 자를 '섹시'하게 그려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뷰티플 군바리>는 폭력당하는 자를 '섹시'하게 그려냈다. 이 장면 역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훌륭한(?) 예제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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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는 너무 방대하므로 다음 글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일단 이 글은 여기에서 끝내고, 다음 글로 다른 측면을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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