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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an 26. 2019

군대 동기

반가운 동기이자 고마운 동생.

반가운 사람을 오랜만에 보는 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저녁의 폭식과 폭음을 위해 출근을 택시로 하고 점심을 굶었다. 동네 맛집 목록을 추려 보내줬더니 다 좋단다. 나보고 정하라 해서 막창집으로 정했다.


2003년 1월 20일. 안 가도 되는 군대를 그것도 남들보다 늦게 갔다. 논산으로 입대했으나 빽이 없어서인지 운이 없어서인지 홍천의 야수교를 거쳐 악명 높은 양구로 배치받았다. 자살률과 탈영률이 1위라는 풍문이 도는 부대였다. 같은 강원도인 홍천에서도 산을 넘고 물을 건너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자대라는 던전에 먼저 와 있는 파티원이 있었다. 내 유일한 동기, 양광현.


광현이는 나보다 두 살이 어렸고 입대는 나보다 4일 빨랐다. 우리 중대에는 같은 달에 입대한 사람들끼리 동기를 먹는 룰이 있어, 우리는 동기가 되었다. 군에서의 동기란 아주 각별한 사이다. 우리는 함께 걸레를 빨았고 함께 얼차려를 받았다. 서로가 서로의 처지를 위로했고, 시간의 흘러감에 서로의 군생활이 풀리는 것을 서로 반가워했다. 우리는 똑같이 이등병이었다가 똑같이 병장이 되어 똑같이 제대했다. 


아... 제대가 아주 똑같지는 않았다. 나는 입대가 4일 늦었고, 거기에 영창 4일이 더해져 8일 늦게 제대했다. 제대하자마자 먼저 제대한 광현이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고깃집에 가서, 같이 고기를 먹었다. 더는 군인이 아닌 까닭이었을까?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광현이는 나를 형으로 불러주었다. 무슨 고기를 먹었는지, 고기 값을 내긴 했는지 조금도 생각나지 않지만(아마 안 냈던 것 같다.), 기분이 좋았던 것만큼은 기억이 난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다른 지역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가 다시 본 것이 4년 전. 광현이는 내가 서울 와서 한의원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한의원에 와주었다. 한의원과 내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커뮤니티에 추천해 주기도 했다. 많이 고마웠는데 바쁘단 핑계로 표현을 못했다. 두 살 어린 동생에게 받기만 했다.


지난달에는 어떤 환자가 상담 도중 자신에게 이 한의원을 소개해준 사람이 있다며 광현이 이름을 꺼냈다. 이름을 들으니 반갑다가, 함께 고생하던 시절이 떠올라 이내 짠해졌다. 그 분께는 한약을 필요 이상으로 잘 지어드렸다. 이튿날 광현이에게 전활 걸어 요즘 별 일 없냐, 한의원 홍보해줘서 고맙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다 약속을 잡았다. 그게 오늘이다. 12년 만의 한 잔이다.


글을 쓰고 있는데 마침 광현이한테 전화가 온다. 빈 손으로 올 수 없다며 직원들 줄 간식이라도 사 온단다. 거듭 말려도 소용이 없다. 아, 이 자식. 한결같기는. 막창만으로는 안 되겠다. 2차는 분위기 좋은 술집에 데려가야지.(2017.4.28.)

여기엔 나만 있고 광현이는 없다. 군인들은 왜 모자로 얼굴을 가린채 사진을 찍는가.
여기엔 광현이만 있고 나는 없다.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이라 같이 찍은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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