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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Nov 23. 2020

울릉도 여행기 4일 차

2020.8.17.

여덟 시 반 기상. 평소보다 기상 시간이 늦었다. 열 시 체크아웃이니 서둘러야 한다. 팡켠진배 순으로 씻었다. 나는 어제의 여행기를 업로드했다. 그걸 읽던 배가 말했다.

야. 너 어제 여행기에 나리촌 이야기 통으로 다 실었네?
어. 감동적이잖아.
아니 근데 이거 그냥 베낀 거잖아.
뭘 베껴. 인용한 거지. 직접 다 타이핑한 거야.
그게 그거지. 여행기 완전 날로 먹네?!

이건 뭐 완전히 편집장이 따로 없다.

열 시 반. 체크아웃. 시내로 가는 차 안에서 켠이 말했다.

야 너 어제 여행기엔 나리촌 이야기 완전 복붙 했더라?
복붙 아니고 직접 타이핑한 거야 임마!
그게 그거지. 좀 정성껏 써야 하는 거 아니냐? 내 사진도 좀 더 넣고! 응?

이건 뭐 완전히 언론 탄압이 따로 없다.

아침은 박가네 따개비칼국수.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적극적으로 자리를 잡고 주문했다.


칼국수 네 개 주세요.

같은 따개비칼국수지만 엊그제 먹은 태양식당과는 상당히 다른 비주얼이었다. 녹갈색 국물 안에 오직 하얀 면만 들어가 있고, 씹을만한 건더기는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따개비조차. 이 집은 따개비를 국물에 갈아서 넣는단다. 그렇다한들 얼마나 넣었을지 알게 뭐람.


따개비가 작은 전복처럼 생겼잖아. 근데 살뿐 아니라 내장도 전복처럼 생겼대. 그래서 통째로 갈아버리면 이런 색깔이 나온대네?

팡이 지식을 풀었다. 왠지 이 말을 듣고 나니 국물이 더 맛있어졌다. 다른 친구들 입에도 잘 맞아서, 넷 다 싹싹 긁어먹었다. 완전 흡족. 두 종류의 서로 다른 따칼이 모두 만족스러워서, 또 다른 맛의 따칼집은 없을까 궁금해졌다. 단언컨대 울릉도 최고의 향토음식은 따칼이다.


밥을 먹었으면 커피를 마셔야지. 사동 해수욕장 근처의 582화답이라는 카페로 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잔에 아몬드 아인슈페너 한 잔. 네 잔 다 '아아'다.


얘들아. 사진 찍게 좀 비켜봐.


켠이 손을 휘저으며 배와 나를 몰아냈다. 옆에 있던 팡도 카메라를 들었다. 도대체 어떤 사진을 찍으려고 이래라저래라 하나 지켜보았다. 오, 결과물이 꽤 그럴듯했다.


다음 목적지는 예림원. 해안도로를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와중에 켠이 뭔가 깨달은 듯 한마디 했다.

돌이켜보면 여기서 맛있게 먹었던 집들, 다 친절하지 않았냐? 오늘 칼국수 집도 그렇고, 어제 새우 집도 그렇고. 친절한 집들이 맛있네.
아니야. 칼국수집은 손님이 주문하려고 일어섰는데 일단 앉으시라고 면박 줬고, 새우 집은 새우라면 주문했는데 별다른 이유도 없이 안 해줬잖아. 서울 기준으론 불친절한 거지.
어, 그러네.

팡의 반박에 켠이 바로 수긍했다. 켠은 요즘 회사 일이 많아 피곤하다 했다. 울릉도 식당들은 전반적으로 불친절하다.

예림원 도착. 인당 오천 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예림원은 예쁜 식물원이었다. 데이트하기 좋은 곳. 물론 아저씨 넷이 가기에도 좋았다. 탁 트인 전망대 위에 서면, 끝도 없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발밑까지 이어졌다. 물이 맑아서 바닥까지 다 보이는 게 울릉도 바다의 매력.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동영상도 찍었다. 호박식혜와 마가목 차를 마시며 땀을 식히고 나왔다.


다음은 태하향목 관광 모노레일. 티켓 끊고 대기실에서 잠깐 기다렸다가 탑승. 모노레일 타고 올라가니 또 트래킹 코스가 나온다. 10분 정도 걸어서 향목 전망대 도착. 또다시 펼쳐지는 절경. 그런데 너무 많이 봐서인지 이제는 별 감흥이 없다. 뜨거운 햇빛 아래서 사진 몇 장 찍고 내려왔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바다에 훌러덩 뛰어들고 싶은 날씨다.


점심 겸 저녁은 동도항에 있는 99식당. 오징어내장탕 맛집이다.

오징어내장탕 둘에 오삼불고기 둘, 그리고 따개비칼국수 하나. 이렇게 돼요?
네. 돼요. 근데 총각들, 우리 밥 좀 마저 먹고 해 줄게. 그래도 되지? 참, 술은 안 드셔? 안주 먼저 내주게.
네, 그럼 막걸리 하나 주세요.

막걸리 하나를 시키자 안주로 나물무침과 땅콩절임, 두부조림이 나왔다. 그걸 다 먹을 무렵 오징어내장탕이 나왔다. 오징어뭇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이었다. 따개비칼국수는 이전에 먹었던 것들과 또 다른 형태였다. 칼국수에 무채를 넣은 건 처음 봤다. 무채 때문인지 국물이 시원했다. 오징어삼겹살은 서울에서 먹던, 익숙한 맛이었다. 익숙하게 밥까지 볶아먹었다.


밥 볶는 동안 사투리 쓰는 여자 사장님이 우리 테이블로 오셨다. 말을 놓고 등짝을 때리며 친근한 척 구셨지만 우리 입장에선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계산할 땐 현금 없냐고 타박하시더니, 계산 마치고 가려는 우리를 자기네 펜션에서 묵으라며 한참 붙잡으셨다. 아. 이것은 친근함인가 불친절인가.

이모. 저희 오늘 숙소 이미 잡아둬서요. 다음에 울릉도 오면 그땐 거기로 갈게요.

나중에 배가 말하길, 울릉도 오기 전에 숙소 예매할 때 봤던 펜션이란다. 너무 시설이 열악해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어딜 다녀오기엔 시간이 애매하다. 짧게나마 물놀이를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울릉다이버리조트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빌려서, 거북바위 주변 바다를 즐겼다. 바다 상태가 학포보다는 별로였지만 충분히 재밌었다. 나도 프리다이빙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켠진 셋이 물놀이하는 동안 팡은 혼자 카페에 다녀왔다.



물놀이했더니 배가 또 고파졌다. 세 번째 끼니는 보성식육식당. 칡소라는 토종소를 파는 곳이었다. 칡소 숯불구이 3인분과 칡소 양념불고기 2인분을 시켰다. 구이도 불고기도 무난했다. 불고기 먹고 나선 첫날처럼 밥 두 개를 볶았다. 배가 볶아준 밥은 맛이 없었던 적이 없다. 전반적으로 훌륭했다. 울릉도답게 조금 불친절한 것만 빼고.


숙소 체크인. 오늘 묵을 곳은 저동항의 포세이돈 모텔. 기대보다 상당히 깔끔하고 좋았다. 심지어 친절했다. 짐을 풀고 수영복을 널었다. 음료수를 냉장고에 넣고 에어컨을 틀었다.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부두에서 한 잔 하기 위해 위스키를 챙겨 나왔다. 편의점에서 컵과 과자를 샀다. 문득 아이스크림이 당겼다.

팡아. 너 아이스크림 먹을래?
어. 그러자. 스크류바 오렌지 파인애플맛이 있네? 이거 먹자.
그거 내가 먹어봤는데 별로였어. 딴 거 먹자.
어 그래?
아니다. 그래도 안 먹어본 거니까 먹어봐. 나도 한 번 더 먹어볼래.

팡이 한 입 베어 물더니 맛있단다. 나도 먹어보니 맛있다. 전에 먹을 땐, 같이 먹은 사람들이 맛없다 했었다. 그래서 맛없다고 느꼈다. 오늘 팡이 맛있어하니, 나도 맛있다. 어찌 보면 맛은 감각보다 인식이다. 친구들과 함께 먹는 음식들이 죄다 맛있는 것도 그런 까닭 이리라.


수산시장에서 오징어 회와 찜을 샀다. 바닷가를 거닐며 앉을 곳을 찾는데 도저히 마땅한 곳이 없었다. 갈매기와 파도 소리가 들리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부둣가를 상상했는데, 현실의 저동항은 그저 고요하고 더웠다. 이럴 바에는 에어컨이나 쐬자며 숙소로 들어왔다.


방이 선물처럼 시원했다. 오징어와 과자를 먹으며 싱글몰트와 맥주를 마셨다. 현지에서 사 먹는 오징어가 맛있긴 맛있었다. 배가 부른데도 많이 먹었다. 마지막 날답게 많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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